딸아이 덕분에 티브이에 나오기는 했습니다만...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by Jina가다

영상 찍는다는 딸아이 부탁에 부지런히 부엌을 치웠다. 딸은 스테이크 재료들을 가지런히 나열하고서 요리 방송처럼 순서대로 설명하면서 요리를 시작했다. 잘 구워진 스테이크에 소스와 야채가 준비되면서 짧은 요리 영상이 만들어졌다. 영상 제일 마지막 장면은 투박한 내 손과 깨끗한 부엌. 출연자의 재미있는 취미생활이 영상을 탔다.


비 오는 아침, 딸아이를 태우고 우면동 EBS 방송국으로 향했다. 오전 10시 반, 방송국 주차장에서 딸의 파트너 친구와 가족을 처음으로 만났다. 방송 준비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방송국에서 건넨 봉투를 받았다. 근처 카페와 식당으로 향했다.

“딸 덕분에 방송국에서 준 돈으로 식사를 다 하네. 하하”

여유 있게 식사를 마친 후, 약속된 녹화시간에 맞춰 방송국으로 다시 향했다.


녹화장 커다란 공중 카메라 뒤로 푸른 화면이 보이고, 네 개 팀의 단상들이 준비되어 있다. 각 학교 교복을 입고 대결을 준비하는 여덟 명 아이들 표정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신영일 아나운서는 출연자 긴장을 풀어주면서 진행을 준비했다. 출연자들 가족들로 관객석이 채워지고, 드디어 방송 녹화가 시작되었다.


유일한 여자팀 우리 아이들은 결연하면서도 여유롭게 즐기는 것 같았다. 사자성어, 세계지리, 한국사, 외국어와 수학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주어지면서 점수판은 엎치락뒤치락했다. 옆에 앉은 남편 손을 꼭 쥐었다. 시간 내내 긴장되어 발에 힘을 꾹 주었다. 결국, 충남과학고 아이들이 결승에 진출하게 되었다. 끝까지 멋진 모습을 보여준 우리 아이들에게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보냈다.


얼마 후, 우리 가족들은 함께 모여 티브이로 방영되는 장학퀴즈를 시청했다. 친정과 시댁에도 전화를 넣고 동생들에게도 미리 연락했다. 온 가족들이 곳곳에서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는 시간이었다. 중간에 잠시 비친 응원석에서 우리 부부가 밝게 웃고 있었다. 딸아이 덕분에 티브이에 나오게 되다니, 남들에게는 관심 없고 잊힐 일들이지만 내게는 참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이었다. 티브이 출연이 참 큰 일인가 보다. 딸아이는 한 동안 도서관 봉사를 하며 만났던 동네 꼬마들에게 유명인사가 되었다. 남편은 우연히 티브이를 본 동료에게 부러운 인사도 받았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어릴 적부터 장학퀴즈를 시청하면서 함께 문제를 풀던 아이다. 꼭 그 프로그램에 나가겠다고 여러 차례 호언장담 했었다. 그런데 정말로 그 바쁘던 고2 시절에 추억 만들기에 도전했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소원이던 기회를 놓친다는 것이었다. 교장선생님의 응원까지 받으며 학교 이름 등에 업고 출전한 방송이었다. 친구들은 수업과 자율학습으로 바쁜데, 예선과 본선을 준비하는 아이가 어이없고 심난하기도 했다.


결승에 진출한 영광은 없었을지라도, 새로운 일에 즐겁게 도전한 아이의 포부는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지다. 겁 없이 도전한 두 여자 아이들은 악기 연주와 취미 영상까지 제출하며, 방송 분량을 잘도 사용했다. 방송을 통해 꿈을 즐기고 왔다는 생각이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여러 가지 실패와 좌절도 있었지만, 아이는 지금 또다시 새로운 도전 중이다. 후진국 여성들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고 진로를 준비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처음에는 무모해 보였다. 편한 길을 두고 겁 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아이를 말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 부부는 아이를 믿으면서 또 지켜본다. 이제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조언해 주고 격려해 주는 것, 그리고 슬플 때 위로해 주는 것밖에는 없으니 말이다. 바쁜 시간을 보내는 딸아이에게 그저 박수를 보낸다.


또 모른다. 아이 뒤에 든든히 서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다시 한번 화면에 잡힐 일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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