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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a가다 Sep 22. 2022

안녕, 해운대!

한 달이 오 년으로 이어진 부산 살이

  

“하나님! 이곳 달맞이길에서 한 달만 살게 해 주세요.”     


달맞이길 도로변에 늘어선 단풍 든 벚나무길을 걸으며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속삭였다.  부산에 잠시 방문한 가을날이었다.     


경주에 살게 된 1년 동안 도심이 그리워 부산을 자주 찾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봄날 달맞이길 아파트에 이사해 3년간 바다를 보며 살았다. 달맞이길을 산책로 삼아 자주 걸으면서도 한참 후에야 그 소원 같은 기도를 기억해냈다.    

 

5년 전, 남편의 직장을 따라 갑작스레 부산으로 이사했다. 해운대 관광의 중심이 된 해운대시장 근처인 구남로를 지나치며 우연히 식당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문구를 발견했다.     


“안녕, 해운대”     


해운대 구민이 된 내가 손을 흔들며 딱 그렇게, 도시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세월이 흐르며 간판은 사라졌지만 가끔 해운대시장을 지나칠 때면 귀여운 글씨체로 반짝이던 멕시칸 식당의 모퉁이를 기억한다.  



    

수도권에 사는 동안 바다가 너무나 그리운 날이면 토요일 이른 새벽에 제부도나 인천까지 차를 몰았었다. 그랬던 나이기에 이사 온 바로 다음날부터 아침바다를 보기 위해 해운대 모래사장으로 출근했다. 달맞이고개 초입에 살던 나는 슬리퍼를 신고 미포를 내려와 해운대 해변으로 산책을 떠났다. 모래사장에 들어서면 손가락 두 개에 슬리퍼를 하나씩 끼우고 맨발로 해변을 걷는다. 발가락 사이로까지 침투하는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기분도 괜찮다. 


어떤 날은 찰랑거리며 잔잔한 물결의 바다를 보여주고 또 어떤 날은 성난 맹수처럼 파도로 해수면을 부딪쳐 흰 거품을 쏟아내는 해운대 바다였다. 매일같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하늘과 바다의 모습을 부지런히 핸드폰에 저장했다   

  

저녁이면 퇴근한 남편의 손을 잡고 해운대 바닷가로 내려가곤 했다. 미포에서 시작해 동백섬까지 걷는 동안 제일 신나는 일은 사람 구경이다. 코로나가 있기 전이라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지나다 보면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와 러시아어 그리고 알 수 없는 동남아의 언어들까지도 들려오는 신세계가 펼쳐진다.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과 비슷한 기분을 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행을 위해 가장 멋지고 세련된 옷차림으로 해운대를 찾는 내국인들과 외국인을 보는 내 두 눈은 분주하다. 이방인의 외로움을 잠시 던져버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어쩌면 북적한 사람 속에서 위로를 얻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주 보며 걸어오는 여성들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심히 관찰하다 보면 올해의 유행과 색감 그리고 패턴까지도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에 펼쳐진 런웨이를 구경하는 듯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다양한 모자와 멋진 원피스 그리고 손과 어깨에 걸친 핸드백과 가방까지도 멋스러운 구경거리들이다. 물론 파도치는 바다에 마천루가 들어선 해운대 도심이라 한 층 더 멋지게 어우러진 무대가 된다.     


밤이면 해운대 모래사장 곳곳에서 다양한 버스킹을 무료 관람할 수 있다. 주말이면 많은 젊은이들이 꿈과 끼를 펼칠 수 있는 작은 무대를 찾는다. 주위에는 수많은 인파로 환호와 웃음이 가득하다.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이들, 큰 스피커를 장치해 두고 멋지게 팝송을 부르는 이들, 마술공연 그리고 각양각색의 악기 공연까지 누릴 수 있는 유럽의 거리와 비슷하다.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임영웅 씨도 무명시절에 해운대에서 버스킹을 했다고 한다. 어쩌면 바닷가 무대에 서 있는 이들이 나중 유명한 스타가 될 수도 있겠다.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라도 꺼내어 해변의 예술인들에게 건넬 수 있다면 좋겠다. 길거리 공연의 감동을 누릴 줄 아는 멋쟁이가 될 것이다. 간혹 관객들 중에는 통 크게, 푸르거나 노란색 지폐를 꺼내어 모금 박스와 빈 기타 케이스에 넣어주는 이들도 있다. 지인들에게 호기를 부리거나 또는 진짜 큰 감동이 되었을 수 있겠다. 10년 전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버스킹을 처음 접해 어색했다. 길거리 공연 중에 모금함을 들고 다니던 이에게 1달러 주기를 주저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른 아침이면 동백섬을 걷고 뛰고, 바다를 보며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는 해운대...

미포 철길을 걷다가 해변열차를 타고서 송정역까지 해안선과 푸른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해운대...

달맞이 오르막길을 걸어 송정해수욕장까지 도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코스들로 다양한 곳이 해운대다. 

젊은 아들의 말대로 콘텐츠가 가득한 부산이다.   



해운대의 낮과 밤...
일출과 함께 바다수영을 하는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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