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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 Dec 05. 2023

겨울에 들을까요.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엘리베이터에 탔다. 사장실에서 사장님과 언성이 높아져 대화를 거부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혜원은 오래전 써둔 자작곡이 대박 나면서 단숨에 싱어송라이터로 인기 스타가 되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함께 일해온 강 사장이 오늘 혜원의 속을 박박 긁어 버렸다. 강 사장은 묻혀 있던 혜원의 노래를 발견해 음반을 제작했고 그의 안목으로 혜원이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혜원은 그런 강 사장을 무조건 신뢰하며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다. 그런데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간 것은 이번 혜원의 자작곡 때문이다.

이번 자작곡은 사랑 노래였다.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인 혜원의 노래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표절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다. 음원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무명의 작곡가의 글이 블로그에 올라오며 일파만파 퍼지기 시작했다. 주내용은 혜원이 자신의 곡과 가사 일부분을 표절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가 어느 사이트에 올린 '소망'이라는 노래 중 남녀가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을 선택하며 마주 앉았을 때 나눈 대화를 표현한 음과 가사가 표절 부분이라는 것이었다. 혜원은 그 작곡가가 누군지도 몰랐을뿐더러 그 사이트 자체를 이용한 적이 없었다. 표절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나서야 그 작가의 곡을 처음 읽어 보았다. 아무리 봐도 표절이라기에는 곡의 흐름도 다르고 음도 전혀 달랐다. 비슷한 부분은 어느 이별 노래에나 등장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뿐이었다.


"아니 그럼 남자 여자가 헤어질 때 그동안 고마웠어,라고 말한 게 표절이라면 우리나라 이별 노래 절반 이상이 표절인 거 아니에요? 저는 그 작곡가 알지도 못하는데."

"지금 말이 너무 많이 나오고 있어. 기사까지 나오고."


남의 불행을 바라는 사람이 왜 이리 많은지. 표절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여기저기서 혜원을 씹어대는 글 밖에 없었다. 만난 적도 없는 사람들이 혜원의 친척, 지인, 친구라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악플을 달았다. 기자들은 기회를 포착한 전문가인 양 기사를 쏟아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꼬인 건지,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막막했다.

혜원은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표절이라고 난리 치던 작곡가의 음악을 다시 천천히 듣기 시작했다. 아무리 들어도 그와 혜원의 음악은 접근부터 달랐다.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고는 어떤 부분도 비슷한 것이 없었다. 당장에라도 그 작곡가를 찾아가 표절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해명하라고 하고 싶었지만 이미 팬들은 돌아선 상태였다. 이제와 해명하고 밝힌 들 달라질 건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강사장님과 다툰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강사장님은 무명작곡가가 거짓말하는 것이고 증거를 제시해 혜원의 누명을 풀자는 것이었고 혜원은 이미 엎어진 물이라 해명을 한다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는 입장이었다. 누구보다 혜원을 응원했던 강사장은 답답했다.


"아니 왜 그러는 거야. 상처받아서 그래? 유명 가수들 한 번씩 이런 일 생겨. 그 무명작곡가는 너를 그냥 저격한 거고. 어디 봐서 표절이야."

"표절 아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이 믿을까요? 유명 가수가 무명작곡가 죽이기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인터넷 보셨어요? 아니라고 이미 기사가 한 번 나갔지만 댓글들 보면 돈을 써서 기사 내보냈다는 댓글이 훨씬 많아요."

"그러니까 바로 잡아야지. 여기서 이렇게 포기하면 음원을 낼 때마다 달려들 거야."

"됐어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혜원이 대응하기를 포기한 것은 악플 때문이었다. 그녀의 음악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환호해 주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적으로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을 해대니 표절이라는 누명보다 독설들에 더 상처를 받았다. 그 악플들을 본 순간 두 번다시 곡을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예인의 숙명이라지만 이번은 자신이 사랑하는 음악까지 욕을 먹는다는 생각이 더 좌절하게 만들었다.

혜원은 답답함에 서울을 잠시 떠나야겠다 생각했다. 가방에 노트북과 여벌옷 몇 벌을 챙겼다. 외투는 롱패딩 한 벌로 버텨보기로 했다. 여차하면 목적지에서 새로 사도 되니까. 우선은 최소한의 짐만 챙겨가자. 혜원은 종종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차박 캠핑을 했기 때문에 어지간한 건 차에 준비되어 있었다. 추위를 조금 견뎌야겠지만 숙소를 못 찾아도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짐을 대충 챙기고 난 후 차에 앉아 내비게이션을 눌렀다. 혜원은 포항 구룡포로 목적지를 정했다. 그곳으로 정한 이유는 지난번 방송에서 본 후 가보고 싶어 몇 번 검색해 보았던 곳이었고 한 번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혜원은 휴게소에서 구룡포와 반대인 포항 영일대 쪽에 방을 예약했다. 젊은이들이 많이 온다는 영일대와 조용하지만 감성이 넘친다는 구룡포. 한 지역의 완전 다른 두 바닷가를 경험해 볼 생각이었다. 혜원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포항으로 향했다. 피곤하면 휴게소에서 눈도 붙이고 밥도 먹으며 천천히 그녀만의 여행을 시작했다. 낮에 출발한 혜원은 한 밤이 되어서야 도착했다.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선글라스를 쓰거나 모자를 푹 눌러쓰면 오히려 더 이상하게 쳐다볼까 봐 마스크와 안경으로만 얼굴을 가렸다. 잠시 후 예약했던 영일대 호텔에 도착했다. 호텔이라기보다는 모텔이랑 비슷한 듯했지만 깨끗하고 혼자 조용히 있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고 7층으로 올라갔다. 혜원이 예약한 방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창이 있는 곳이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은 바다와 영일대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 마음 같아서는 혜원도 달려 나가고 싶지만 매니저도 없는 상황에서 사고라도 생기면 지금 상황에서는 재기를 꿈꿀 수 조차 없게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조용히 식사만 배달로 받아 방 창문으로나마 함께 즐기기로 했다.

오는 동안 무음으로 돌려놓고 쳐다보지도 않았던 휴대폰을 들었다. 부재중 23통. 강사장님 전화 15통. 그 외 기자분들과 동갑인 동료 가수 몇 명이었다.


- 야!


전화를 받자마자 강사장은 고성을 질렀다.


-어디야! 집에도 없고 전화도 안 받고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게 생긴 강사장님의 목소리가 어쩐지 떨리는 것 같았다. 울먹거린다고 해야 하나.


-저 지금 포항이에요. 잠시 바람 쐬고 가려고요. 사람들 잘 피해서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포항 어디! 지금 민석이 보낼게.

-그냥 조용히 며칠 쉬다 가려고 해요.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으휴. 대신 전화는 꼭 받아. 경찰에 신고할 뻔했잖아! 여기 일은 내가 수습해볼 테니까.

-사장님.

-왜!

-우셨구나?

-쿨럭, 끊어 인마!


사장님의 걱정이 왠지 싫지 않았다. 부재중으로 들어온 친구들 전화에 문자로 연락을 대신하고 혜원은 배달 어플을 열어 회와 물회, 소주를 주문했다. 그래도 바닷가인데 회는 먹어야지.

다들 혜원이 슬퍼하고 있거나 지금의 이슈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오히려 혜원은 포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에서의 근심은 싹 잊었는데.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도착하고 혜원은 창 너머의 바다를 벗 삼아 소주를 들이켰다. 직접 가서 먹지는 못했지만 물회는 최고의 맛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배경. 혜원은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혜원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휴대폰으로 방금 불렀던 노래를 녹음해 두었다. 그날 밤 혜원은 기분 좋게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 날, 너무 이르지 않은 시간 혜원은 숙소를 빠져나왔다. 이상하게 아침부터 허기가 져 근처 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점심시간 전이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혜원은 해장국 하나를 시켜 국물까지 싹 들이켰다. 포만감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혜원은 차에 올라타 구룡포를 네비에 검색했다.


"음 오늘 저녁은 대게?"


대게를 생각하며 웃음 짓다가 갑자기 현실 감각이 확 돌아왔다. 혜원은 휴대폰을 열어 기사를 검색했다. 혜원 쪽에서 반박을 하지 않자 표절이라고 우겼던 그 작곡가는 미쳐 날뛰고 있었다. 작정을 하고 뺏겼다느니 지금까지 작곡한 모든 곡이 표절이라는 어이없는 말을 한 인터뷰들이 쏟아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자신의 말이 틀렸다면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까지. 그동안 악플에 마음 상하고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참으려 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이런 무식하고 못된 사람 때문에 자신이 숨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혜원은 차를 몰아 구룡포로 향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 한산한 바닷가로 차를 몰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수욕장 옆 작은 바닷가를 발견했고 혜원은 차를 세워두고는 내렸다. 

차가운 바람에 얼굴이 베이는 듯했다. 하지만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혜원은 바다를 동영상으로 담았다. 낯선 바다, 낯선 도시, 낯설지 않은 감성. 찬 바람에 반해 마음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크게 심호흡을 한 후 다시 차에 올랐다. 혜원은 저녁에 대게를 먹겠다는 포부를 접어두고 그대로 다시 서울로 향했다.


그날 저녁, 혜원은 라이브 방송을 켰다. 방송을 켜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기 시작했고 혜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노래를 시작했다. 첫 곡은 자신의 이번 신곡이었던 노래였다. 청아한 혜원의 목소리 때문에 이별 노래가 더 아프게 들렸다. 노래가 끝나고 혜원은 다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댓글창에 욕을 써대던 사람들이 혜원의 새로운 노래를 듣고는 더 심한 악플들을 달고 있었다. 표절하더니 노래 만드는 실력도 죽었다며 그녀를 조롱했다. 노래가 끝나고 혜원의 말이 이어졌다.


"안녕하세요. 첫 곡은 모두 아시다시피 현재 표절 시비에 휘말려있는 곡입니다. 두 번째 곡, 혹시 어떤 곡인지 아시나요?"


댓글 창에는 모르겠다는 말들 뿐이었다.


"이 곡은 현재 제가 표절했다고 우기고 있는 작곡가님의 노래입니다. 바로 그 노래요. 정말 표절인가요? 같은 노래였어요?"


맞다 아니다는 말이 엇갈리다 댓글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혜원을 옹호하는 댓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들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코드도, 음의 흐름도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비슷한 건 가사 한 줄 뿐이죠. 그런데 이것 좀 보시겠어요."


혜원은 자신의 컴퓨터를 비추었다. 그곳에는 총 86곡에 해당하는 노래들의 가사 일부분이 적혀 있었다.


"이렇게 많은 곡들이 비슷한 가사를 쓰고 있어요. 왜냐면 남녀가 이별하면서 생기는 마음, 정서. 그건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한 줄의 가사로 저를 표절 가수로 낙인찍고 온갖 언론 플레이를 하는 그 작곡가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뒤에 부른 노래가 어떤 노래인지 모르셨죠? 당연히 다른 노래니까요. 어느 한 부분이라도 비슷했다면 다들 눈치채셨을지도 모르죠. 전 그 작곡가님이 어떤 말을 해도 참으려고 했어요.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그런데 어제 여러 기사를 보면서 제가 숨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박할 거면 찾아오라고 하셨죠? 이 영상이 제 반박입니다. 앞으로 표절이라고 한 번 더 억지. 를 부리신다면 법적 조치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믿어주신 팬 분들, 사장님 모두 감사합니다."


혜원은 팬들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고 방송을 종료했다. 혜원의 방송 이후 편파적이던 언론은 갑자기 혜원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두 곡을 컴퓨터로 비교하며 전혀 다른 음악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고 결국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 작곡가는 끝까지 우겼지만 결국 관심을 끌기 위해 혜원을 이용했다며 혜원보다 더 심한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후에 알게 된 이야기지만 그 작곡가는 혜원의 가사를 보자마자 자신의 가사를 바꾸었고 인지도를 얻기 위해 혜원을 이용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결국 자신의 욕심에 무명이었던 그를 더 무명으로 만들어 버렸다. 

혜원은 포항에서 흥얼거렸던 음을 다듬어 신곡을 발표했고 그 후 더 단단한 음악으로 최정상에 올랐다. 그리고 그 곡은 오랜 시간 명곡으로 남아 사람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만약 그때 혜원이 모두 포기하고 해명하지 않았다면, 아니 답답함에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혜원을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그 곡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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