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샘 Jan 07. 2024

글쓰기 장려 프로젝트 (2)

함께 쓰는 즐거움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절대 쓰지 않겠다는 소재가 있었다. 그건 남편의 험담이나 시댁 이야기. 

내 인생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면 물론 나도 글의 소재로 쓰겠지만 한 번쯤은 참고 넘어갈 수 있고, 대화로 풀 수 있는 이야기라면 절대 글의 소재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만약 내 남편이 혹은 내 시댁이 나에 대한 안 좋은 글을 올렸다는 걸 안다면 나 역시 분노할 테니까.

그런데 이번 글에 시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처음 만났을 때 자주 어머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여느 남자들과 똑같이 "우리 엄마는 안 그래."라고 말하는 걸 보고 처음에는 마마보이인가, 얘도 어쩔 수 없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었다. 왜냐면 시댁과 남의 편에 대해 쏟아지는 글들을 보고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항상 내 편에서 먼저 생각해 주는 모습과 결혼 후에도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박혀버렸던 편견들을 쫓아낼 수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님이 월간지 여러 권을 남편을 통해 보내주셨다. 많은 양의 책이었기에 놀란 나는 물었다.


"이거 어머님이 주셨다고?"

"응. 너 책 좋아한다고 하니까 주셨어."

"어머님도 책 좋아하시는구나."

"책도 좋아하고 글쓰기도 좋아하시고."

"감사드린다고 전해죠."


그때는 많은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어머님과 책이나 글쓰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어보지 못했다. 그리고는 한참을 어머님이 주신 책에 대해서는 잊고 있었다.

그러다 브런치에 활발히 글을 쓰고 있을 때 문득 '어머님도 글쓰기 좋아하시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느 어머님들의 삶과 똑같이 어머님도 가족을 위해 사셨으니 글쓰기에 도전해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거란 마음에 어머님을 찾아가 갑작스러운 제안을 했다. 어머님이 일을 쉬고 계시기도 했기 때문에 무료한 시간들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머님. 제가 가끔 글을 써서 공모전에 내보는데 같이 해보실래요?"


어머님께 공모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리며 같이 써보자고 했다. 


"니도 떨어지는데 내가 쓴다고 되겠나?"


어머님 역시 처음을 두려워하는 우리의 모습과 같은 대답을 하셨다.


"어머님 저도 떨어져도 그냥 내요. 어머님 글 쓰시는 거 좋아하셨다면서요. 떨어지면 어때요. 조금씩 써서 3,4월이나 내년 연말에 같이 공모전 내볼까요?"


한참 아무 말씀이 없으시던 어머님은 사실은.. 이라며 말을 꺼내셨다.


"사실은.. 내 일기 쓴다. 시를 써본 적은 없는데.. 한 번 써볼까."


그 말을 하시는 어머님 모습이 솔직히 이뻐보이셨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기도 글이죠 어머님. 고부 시인! 고부 작가! 좋잖아요. 솔직히 공모전 입상하기 엄청 힘들기는 하지만 도전했다는 거에 의미를 두고 같이 해봐요. 저도 조금씩 쓸 테니까 어머님도 쓰셔서 저 주세요. 그럼 제가 컴퓨터로 정리해서 같이 낼게요."


그래! 그래보자! 

이때부터 어머님은 시를 쓰시기 시작했다. 사실, 어떤 플랫폼에 글을 올린다던지 어떤 성과가 눈에 보이는 작업이 아니라 혼자 쓰기만 해야 되는 시간들이라 계속하실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재촉하지 않고 어머님이 쓰고 싶은 시간에, 쓰고 싶은 내용이 생각나시면 언제든 쓰시라는 말씀만 드렸다. 

그리고 일주일 후 안부 전화를 하는 중에 넌지시 여쭤보았다.


"어머님. 시 쓰고 계세요?"

"생각이 잘 안 나서.. 시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대충 끄적이고는 있다."

"그게 어디예요! 그게 모이면 시죠. 저 얼마 전에 공모전 낸 거 떨어졌어요."

"떨어지면 어때. 우리가 뭐 상 타자고 하나. 도전한다고 하지."

"그렇죠? 어머님 우리 50편씩 써서 모아봐요. 요즘은 개인적으로도 책 낼 수 있어서 혹시 어머님 하고 저하고 분량이 많이 모이면 기념 삼아 내 보는 것도 좋잖아요."

"알겠다."


그 후에 글을 쓰시는지 여쭤보지는 않았다. 괜히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에. 

어머님이 흥미를 가지시고 재미있다고 하시면 플랫폼들도 알려드리고 더 적극적으로 도와드려야겠다 생각했다. 

며칠 전, 집에 있던 시집 두 권을 들고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어머님 한 권은 유명한 시인분이 쓰신 글이고 한 권은 자신이 쓴 글을 모아 개인적으로 출간을 하신 분의 책이에요. 괜찮으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어머님은 읽어보겠다고 하셨다. 이것도 부담을 드리는 걸까 몇 번을 생각하다 용기 내 전해드렸는데 흔쾌히 읽어보시겠다고 하시니 괜히 마음이 뿌듯했다. 

요즘은 종종 통화를 하며 서로 글은 쓰고 있냐는 말을 하곤 한다. 어떤 형식이냐, 얼마나 썼냐 깊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쓰고 있냐는 말 한마디가 서로를 독려하는 말처럼 되어버렸다. 

어머님께 말씀드렸듯이 어머님의 글과 내 글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자비 출판을 해볼 생각이다. 브런치 북으로도 만들고 또는 소량의 책만 만들어 추억을 남겨보고 싶은 마음이다.

글쓰기에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지만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 쓰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더 성실해졌고 조금 더 진지해졌다. 그리고 자꾸자꾸 궁금해진다.


어머님의 글 속엔 어떤 세상이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