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싶던 순간 (2)
나는 왜 돈을 벌고 싶어 했을까?
육아를 하며 떨어진 자존감,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기분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단지 집에서 애만보며 노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쓸모 있고 사회에서 경제적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외벌이 하는 남편이 지고 있는 어깨의 무게를 덜어줄 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내가 쓰는 용돈 정도는 벌어 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가던 직장인이었는데 지금은 집에 갇혀 아이만 보는 현실에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살도 많이 찌고 아이도 어리니 꾸미는 것은 꿈에도 못 꾸고 맨날 검은색 긴 티셔츠와 레깅스는 피부처럼 입고 다녔던 시기였다.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니고 둘째는 아직 어려 아기띠를 메고 다닐 때였다.
어린이집 하원 후에는 코스처럼 단지 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이 일상이었다.
단지 내 놀이터는 아이들만 노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온 엄마들의 친목 장소이자 정보교류의 장이었다.
같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보내는 엄마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육아, 남편, 시댁 등의 이야기를 한바탕 쏟아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어느 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들 중 집에서 나름대로 과자값 정도는 벌고 있는 엄마들이 있는 것을 알았다. 원래 전문직이어서 부업 삼아 의뢰받아 가끔씩 하는 엄마들도 있었는데 그 부분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그저 부러워만 해야 했다. 그런데 한 엄마는 자기 분야도 아닌데 재택근무로 집에서 한두 시간 컴퓨터로 일하고 돈을 번다고 했다. 내가 찾던 이상적인 재택알바를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수입도 괜찮았다.
그때 당시 재택알바라고 유혹해서 엄마들 주머니 쌈짓돈 투자하면 몇십 배로 불려준다는 'oo드림'이런 사기가 판칠 때여서 재택알바를 알아볼 때마다 늘 조심스러웠는데, 그 엄마는 그런 것도 아니라고 했다. 자리가 생기면 나도 소개 좀 시켜달라고 부탁을 하고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자기가 둘째 출산으로 일을 못하게 돼서 나에게 일을 넘겨준다는 것이었다. 이런 좋은 찬스가!!
대신 처음 하는 사람은 서울 본사로 하루 교육을 받으러 갔다 와야 한다고 했다.
둘째를 맡길 곳이 없어 애를 데려간다고 양해를 구하고 함께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서울 본사에 갔다.
그 건물에 아기띠를 메고 누가 봐도 아줌마 행색을 하고 온 사람은 나뿐이었다. '저 아줌마가 왜 이런 곳에 왔지?'라고 느껴지는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했다. 잠시 회사 다니던 시절의 추억이 떠올랐으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OT는 약 1시간 정도 이루어졌고, 간단하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일주일 뒤부터 시작을 했다.
내가 하는 일은 피부 미용시술 전문 병원의 블로그에 대신 홍보글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한때 파워블로그에 도전해 볼까 하고 호기롭게 블로그를 개설했었지만 방치한 채 제대로 운영도 못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컴퓨터에 앉아 타자를 치며 글을 쓰려니 무슨 말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고, 꾸미는 것에 워낙에 관심이 없었던 관계로 미용시술 관련해서는 정말 무지해서 용어를 익히는 것도 힘들었다. 친구는 1~2시간이면 끝난다는데, 첫 주에 나는 길게는 6시간까지 걸려서 늦은 새벽까지 잠 못 들고 하기도 했다.
그래도 집에서 재택으로 근무하고 매달 아이 간식값 정도 벌 수 있다는 기쁨에 너무 즐거웠다. 다행히 회사도 급여가 밀리지 않고 매달 정확하게 정산해서 주니 뿌듯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며 재택알바를 한 지 6개월 정도 지났을까? 내가 하는 일이 '바이럴 마케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병원 쪽 바이럴 마케팅이 문제가 많았는데, 자기가 받지도 않은 시술을 해봤다고 거짓으로 후기를 올리고 과대 홍보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내가 속한 업체는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고 단순한 업체 정보만을 올려달라고 해서 꾸준히 이어서 할 수 있었다.
사람이 요령이 생기면 욕심이 늘어난다고 할까?
나는 재택알바에 요령이 생기자 낮에는 학교 배식 도우미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재택알바를 하며 한 달에 최대 70만 원까지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돈이 생기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는 늘 빠듯해서 수시로 남편에게 돈이 필요하다고 말해야 해서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이제는 내가 첫째 유치원비도 내고, 생활비도 여유가 생기니 돈으로 남편과 부딪힐 일이 줄었다. 대신 몸은 피곤했다. 애들 재워놓고 12 시가지 나기 전에 재택알바를 마무리 지어놔야 해서 졸면서도 한두 시간 동안 일을 했던 것 같다.
나의 재택알바는 1년이 좀 지나, 담당자가 여러 번 바뀌고, 마지막에 바뀌었던 담당자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면서 삐그덕 거리다 마무리가 되었다. 그래도 아쉽진 않았는데 난 그때 당시 오전 10시에 출근해서 3시에 퇴근하는 꿀 타임 알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시에서 3시는 유치원생 엄마들이 선호하는 꿈의 시간인데, 아이들이 대부분 9시에서 9시 30분에 등원을 하고 3시 반에서 4시 정도 하원을 한다. 그러면 아이가 유치원에 다녀오는 시간에 엄마가 알바를 하면 아이도 케어할 수 있고 돈도 벌 수 있어서 엄마들이 가장 희망하는 시간인데 그런 시간대의 일을 구하기가 힘들다. 대부분 출근시간이 맞으면 퇴근이 늦거나, 퇴근이 맞으면 출근이 빠르거나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현장근무도 아니고 사무보조로 꿀 타임 시간대 자리를 구했으니, 주변 엄마들의 부러움을 한껏 받으며 출근을 했다.
그렇게 나는 알바의 범위를 스스로 진화시켜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