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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피아 Apr 15. 2021

내가 알바를 고집했던 이유

세상에 나가고 싶은 엄마, 영원히 품 안에 있는 아이

내가 초등학교 3~4학년 정도 되던 해에 아빠가 대기업을 관두고 사업을 하신다고 하셨다.

유능한 영업사원이셨던 아빠는 자신의 인맥이라면 사업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작을 엄마와 함께 하셨다. 아빠는 영업을 하고 엄마가 사무 경리를 보고.

갑자기 예고 없이 시작된 두 분의 맞벌이에, 엄마는 나에게 용돈을 주고 동생을 챙기라고 하며 가셨다.


첫째 아이가 늘 물어본다. 엄마는 어릴 때 뭐하고 놀았냐고.

사실 기억이 없다. 학교 다녀오고, 엄마가 식탁 위에 올려놓은 용돈을 챙겨 동생이랑 간식을 사 먹고 집에 있다 보면 조금 늦은 저녁이 돼서 부모님이 오셨고,  같이 저녁을 먹고 또 다음날이 되었다.

집에 엄마가 없는 쓸쓸함은 딱히 불편함이 없었는데, 동생을 챙겨야 하는 것은 매우 귀찮았다.

남매 사이가 웬만해서 돈독하기도 힘들고, 동생은 나름대로 혼자 집 앞 놀이터에 나가서 놀고, 나는 비디오 대여점에서 만화영화를 빌려다 봤던 것 같다.


일하는 엄마를 둔 가장 아쉬운 부분은 갑자기 비가 오는 날이었다.

그때 당시 우리 집은 학교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였지만, 학교는 언덕 위에 있었고, 아이 걸음에 비를 맞고 집까지 뛰어오는 것은 어쩌다 한 번이면 모를까, 반복되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을 들고 다녀서 엄마랑 통화를 할 수 있던 것도 아니었고, 집 전화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데리러 오는데 나는 엄마가 올 수 없으니 일단 비를 맞고 집으로 뛰어왔다.

사실 달리기도 안 좋아해서 아마 비를 맞고 걸어왔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그 뒤로 나는 결혼 후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기 전까지 가방에 하루도 빠짐없이 3단 우산을 넣고 다녔다.


그래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항상 아이들이 마음에 걸린다. 집에 엄마가 항상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가 어릴 때나 그렇지 좀 더 크고 사춘기가 되면 일하는 엄마를 선호한다고는 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다 보니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졌다. 알바를 찾아다녔던 이유도 그래서 였던 것 같다.


한창 우울감이 심했을 때 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아이들 때문에 일을 선택하는데 고민이 된다는 내 생각을 듣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건 엄마 생각일 뿐이에요. 엄마가 짧은 시간 일하면서도 큰돈을 벌 수 있는 일( 베이비케어, 청소도우미 등)을 안 해보았잖아요.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가셔야 해요. 지금 집에서 이러고 있으니 우울한 거예요."

아르바이트하면서 많이 내려놨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직업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마음속에 화이트칼라의 마인드가 새겨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고 따뜻한 곳에서만 일하고 싶었던 이기심이 들켜버린 기분이었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게 되면서, 그 핑계로 일을 그만두었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대외적으로 가장 둘러대기 좋은 이유였기도 했다.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안정적이지 못한 일을 계속 찾아다니는 것보다 진짜 내가 좋아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순간 알바를 하며 허비했던 3~4년의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시간에 나를 위한 공부를 했더라면 지금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아이도 돌보고 생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이 모두 남편 탓인 거 같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일을 시작하더라도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이 되면 또 멈출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딱히 좋아하는 게 뭔지, 내가 뭘 잘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하다 보니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의 끝이 '나는 누구인가?'였다.

그렇게 시작된 두 번째 사춘기가 마음의 방황을 불러왔다.


목표를 정하고 그 길을 향해 가는 것만이 올바른 걸까?

지금은 정해진 목적 없이 놓인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더디 걸리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도 괜찮다고, 그저 보이는 것 때문에 나를 맞춰 가지 말고, 이제야 제 나이에 맞게 차곡차곡 나를 쌓고 있는 중이라고 나를 위로해본다. 나는 진짜 성장을 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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