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살아남기
음.. 이 글을 읽는 분들께 미리 말씀드리면 1년 반 동안 내가 했던 업무들 중 눈에 띄는 성과는 없다.
늘 시도하려고 알아보다가 흐지부지 끝나버려서 해볼라 하면 다른 일로 넘어갔다. 그래서 해당 업무에 전문적인 지식이나 깊이가 없다.
블로그 홍보가 흐지부지되고 나에게 맡겨진 또 다른 업무는 실내 환경미화였다.
사무실이야 어차피 업무공간이니 신경 쓸게 없었지만 식당 공간이 문제였다.
대표님은 이곳이 인스타 사진 성지가 될만한 포토존을 만들길 원하셨고, 곳곳에 손님들에게 필요한 안내를 새로 만들어 붙이라고 하셨다. 문제는 대표님이 건축과 인테리어 관련해서 해박한 지식이 있으셔서 웬만한 건 셀프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다는 거였다. 중간에 식당 내부 리뉴얼할 때도 일부는 셀프로 진행하신 듯했다. 그리고 건물에는 늘 각종 설비를 고치러 다니시는 연세 지긋하신 팀장님이 계셨는데, 그분의 손끝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려고 하셨다.
내가 하는 환경미화는 초등학생 시절 담임선생님과 함께 교실을 꾸미고 청소한 기억밖에 없다.
인스타를 안 하니 최신 트렌드도 무지했고, 아이 낳고 사진 찍기를 멀리했으니 포토존은 아이들 예쁜 사진 찍어주는 장소로 밖에 취급을 안 했던 터라 어떤 포토존이 인기가 있는지부터 조사를 시작해야 했다.
자료를 수집하고, 필요한 재료를 계산하고, 견적서를 만들어 보고했다. 일단 콘셉트가 맘에 안 드셨고, 만드는데 가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덧붙이신 말씀이 주변 산에 떨어진 나뭇가지가 많으니 그걸 활용해서 해보라고 하셨고, 인터넷 최저가가 아닌 공장에서 직 매입 단가를 알아보라고 하셨다. 재료만 있으면 우리는 다 직접 만들 수 있다고 하셨고, 내가 모르는 용어를 설명까지 해주시며 추가로 몇 가지를 더 알아보라고 하셨다.
전혀 배경지식이 없으니 업체에 문의하는 것조차 망설여졌다. 심지어 사무실은 매우 조용해서 누가 무슨 통화를 어떻게 하는지 다 들릴 정도였다. 수화기를 드는 것에 겁이 났다. 그래서 최대한 업체 문의 게시판을 활용하다 보니 전화 한 통이면 끝날 일을 하루가 걸려 받는 경우가 많았다. 일이 점점 늦어지고, 새로운 지시는 계속 내려왔다. 물어볼 곳도 도움받을 곳도 없이 혼자서 너무 막막했다.
이번에는 사인보드 스티커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식당에 안내가 너무 부족하시다며 와이파이, 금연, 유아실 등등 필요한 정보를 어디서나 한눈에 볼 수 있게 곳곳에 붙이라고 하셨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제작 가능한 곳을 찾아 견적을 드렸더니 현재 간판으로 거래 중인 곳에서 해줄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셨다. 인쇄비용만 들이면 뽑을 수 있다고 하시며...
거래처 담당 과장님께 부탁을 드렸고, 처음에는 서비스 차원에서 종이값만 받고 해 주신다고 하셨는데, 생각보다 요구사항이 많아 죄송했지만 그래도 진행했다. 물건이 도착했고, 나는 하루 종일 건물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트지를 붙이고 다녔다. 그게 유일하게 그 건물에 남은 나의 흔적일 것이다.
낡은 현수막 대신 새로운 현수막을 달았고, X배너를 교체했으며, 층별 안내판을 달았다. 에어탑이라고 불리는 기둥모양의 홍보물을 제작했고, 로고와 명함을 새로 제작했으며, 각종 홍보 및 안내문을 제작했다. 겨울 시즌을 맞아 창문에 크리스마스 장식 시트지를 붙이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해나가는 와중에 포토존에 진행은 조용히 묻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은 내가 많이 봐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다며 근처 핫한 카페와 특이한 조형물들의 사진을 찍어 보내주셨다. 그래서 나도 한동안 외출을 하거나 여행을 가도 정보 수집하려고 사진을 찍었는데 100번의 사진보다 1번의 결과물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결국 대표님이 하시고 싶은 것은 설비담당 팀장님과 알게 모르게 하나씩 만들어 가고 계셨고, 카페의 어느 여름날 비 내리는 테라스가 완성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