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상에 첫발을 내딛고 싶던 순간(3)
전부터 봐오던 모집공고가 다시 떴다.
시간도 황금시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다.
사이에 점심도 준다 하고, 사무보조란다.
아이 엄마에게 이런 꿀 타임 알바가 어디 있나 싶어 호기롭게 이력서를 내보기로 했다.
첨부된 이력서 파일을 열어 하나씩 입력하다가 순간 경력에서 멈췄다.
경력을 써야 하나?
그냥 빈칸으로 내야 하나?
이미 10년 전 경력이 돼버린 직장생활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을 했다.
알바에게 알바 경력이 없는데 뭘 써야 한다는 말인지.
배식 도우미 알바는 현장업무니 사무직에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바이럴 마케팅으로 재택알바를 한다고 쓰기도 부끄러웠다. 결국 고민 끝에 마지막 직장만 한 줄 적어내고, 두 번째 고비가 왔다.
자기소개서......
내가 직장을 구하던 시절에 한참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취업준비생들이 모여 스터디도 하고, 심지어 너무 화려하게 쓴 나머지 자소설이 되어버린 얘기도 있었다. 나는 대기업에 대한 욕심도 없었고, 능력도 안됐던지라 자기소개서가 딱히 중요하지 않은 직장으로 취업을 했었기 때문에, 사실 제대로 된 자기소개서를 써본 적이 없었다.
내가 자기소개서를 쓰던 시절에는 늘 이렇게 시작했다.
"저는 ㅇ남ㅇ녀의 ㅇ째로 태어났습니다. ㅇㅇ하신 아버지와 ㅇㅇ하신 어머니 아래서 행복하고 바르게 성장했습니다......"
나중에는 이것이 절대로 쓰면 안 되는 자기소개서 형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취업을 한 이후라 딱히 쓸 일이 없어 신경을 안 썼다.
자기소개서는 나의 강점을 명료하게 서술해야 한다고 하는데, 도대체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생이 자기소개서에서 무엇을 장점으로 내세워야 할지 막연했다. 그렇다고 집에만 있던 경단녀라는 것을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최대한 솔직하게 하되 재택 아르바이트하던 것으로 양념을 쳐보기로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적어낸 몇 줄의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연락 오기를 기다렸다.
이력서를 낸 사실을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떨어지면 창피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연락이 왔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제사가 있어 아침부터 시댁에 들어가 음식을 해야 했지만, 시부모님께 양해를 구하고 면접을 보고 왔다. (그 덕에 온 가족이 내가 이력서 낸 사실을 알게 됐지만)
면접을 본다고 최대한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 오랜만에 화장을 하고 나섰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좀 있다가 대표님이 오셨다.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10년 전에 했던 일에 대해 궁금해하셨고, 지금 하고 있는 재택알바에 대해서도 궁금해하셨다. 그리고 아직도 기억에 남는 한마디를 들었다.
"이미 석기시대로 가버린 옛날 경력 말고, 지금 어느 정도 할 수 있는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
그렇지... 나는 경단녀였지... 내가 기억하는 화려했던 시절은 벌써 10년이나 흘렀는데,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쩌면 나는 그곳에서 시간을 멈추고 혼자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롭게 시작해야 했는데, 아직도 향수에 취해 내가 아직도 그때의 나인 것처럼 생각을 하고 살았던 것이다. 순간 울컥한 마음에 살짝 눈물을 비추기도 했지만, 면접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다.
시댁에 돌아와 음식을 하는데 아버님이 농담처럼 "누가 너 뽑겠냐?"라고 하신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때 당시 내 마음에는 '집에서 애만 보다가 살찐 뚱뚱한 아줌마를 누가 쓰겠냐?'라고 들렸다. 서운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그저 묵묵히 음식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다음 주부터 출근해달라고, 사무직은 맞으나 업무형태에 변화가 있어서 3번 정도 따로 오티가 필요하다고 했다. 딱 그 순간에 출근 전화라니, 내가 합격이라니, 너무 신나고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