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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고생 예약합니다

by 김세인
“내가 그래서 주식을 안 한다니까 언니, 맘 편하게 살아야지.”



습식 사우나 안이었다.

냉커피 한 사발과 뜨거운 온기 속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자녀들의 성적, 다양한 성격의 남편들, 돈 자랑은 하면서 커피 한 잔 안 사는 언니, 제철 재료로 요리하는 다양한 레시피, 사방군데 아픈 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토론.... 그곳에서 나는 눈을 감고 안 듣는 척하며 꽤 밀도 있는 이야기들을 엿듣게 된다. 귀가 시끄러우면서도 조용하면 섭섭한 엄청난 스펙트럼의 이야기들이 매력적인 탓에 나는 가끔 습식 사우나에 들어가곤 한다. 그날의 주제는 아마도 주식투자였던 것 같다.


주식투자와 마음고생의 연관 관계.

익숙한 이 두 단어의 상관성은 나도 일찍이 경험해 봤다. 초등학생 때였다. 어느 날부턴가 엄마 아빠가 보는 TV 화면에 글자가 가득한 화면이 나타났다. 단어 옆에는 세모 화살표가 위로 솟거나 아래로 향했다. 특정 단어의 화살표가 위로 올라가고 숫자의 단위가 클수록 나는 엄마 아빠의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발견했다.


나는 멋도 모르고 엄마에게 어떤 단어를 찾으면 되냐고 묻고 눈이 뚫어져라 그 회사 이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화살표가 위로 올라가면 그날 통닭을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맛있게 먹었던 양념통닭이 다음 날 무색해질지 그때는 몰랐다.


그 당시 아빠의 직장 선배는 SK텔레콤과 삼성전자 주식을 산 덕에 일찍 퇴직하셨다. 아빠는 분명 선배가 추천하는 종목을 샀을 테지만 매수, 매도 타이밍이 안 맞아서인지 지금 같은 인터넷 정보가 부족해서인지 접근 금지 팻말을 꽂고 주식시장에서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일반인의 주식필패를 증명한 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다.




펀드와 주식거래가 성행하던 사회 초년생 시절, 나는 아빠의 뒤를 따르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주식을 샀다. 사놓고 가만 놔두라는 아빠 선배의 조언은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 별 공부 없이 증권사 직원이 추천해 준 종목을 샀다가 손해만 보기를 반복했다. 엉덩이가 들썩들썩해서 오르면 좋아서 흥분했다가 떨어지면 팔았다. 어설픈 재테크 정신으로 들어간 주식시장에서 나는 얼마 되지 않는 내 재산을 모두 철수했다. 무엇보다 온전히 건강한 정신으로 일하기 어려웠다.


결혼 후, 우리 집 책장에 꽂힌 주식 책을 본 시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씀하셨다.


“아가, 절대 증권에 손대면 안 된다. 우리 친정아버지도 모아놓은 재산, 주식으로 탕진했다. 성실히 모으면서 살아도 충분하다.”


어머니의 말씀이 맞다고 동의하면서도 지금 주식시장은 전과 달리 찾아가기 쉽고 잘 포장된 길이 펼쳐진 것 같았다. 인터넷과 유튜브로 기업의 정보도 얻기 쉬웠고 여기저기 꽤 큰 수익률을 거두는 데 성공한 개미들의 스토리가 들려왔다.


나와 남편은 살짝 팻말을 뽑았다. 그때와 지금은 다를 거라는 믿음으로. 우리는 신약개발을 한 제약회사 주식을 사서 몇 주만에 백 퍼센트 수익을 내기도 했다. 큰 수익이 났는데도 내일 더 오를지 모르니 기다렸다가 팔지, 욕심을 버리고 오늘 팔지 둘이서 손을 덜덜 떨었다.


유치원 등원 시간인 아침 9시, 나는 버스에서 엄마에게 손을 흔드는 아이의 밝은 미소 대신 핸드폰 화면에 몰입해 있는 나를 발견한 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주식을 사고팔며 내 영혼까지 팔지 않는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그러다 코로나가 터져 뉴욕증시 폭락 뉴스가 나왔다. 황급히 돈을 보따리에 챙겨 주식시장을 나왔다. 그렇게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한 경험들이 쌓여갔다.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패닉에 무감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눈곱만큼 익숙해지긴 했다. 남편이 아침에 일어나 계좌에 얼마가 날아갔다고 코가 빠져 있으면 나는 태연하게 말했다.


“여보. 아마추어처럼 왜 이래.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일이지. 오르면 내릴 테고, 내리면 또 오를 테고.”


그렇게 말하고는 정작 나는 무서워 내 계좌를 열어보지도 못했다.


금융이라는 학문은 수학적으로 최적의 투자 전략을 찾아내는데 매진한다.
그러나 내 생각에 현실 세계의 사람들이 원하는 전략은
최대한 밤잠을 잘 수 있도록 해 주는 전략이다.
- 『돈의 심리학』 중


주식 시장에 머무른다는 것은 마음고생을 예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언제 예약할지 기약이 없을 뿐. 『돈의 심리학』 저자는 금융에 관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 냉철하게 이성적이 되려고 하지 말고 ‘꽤 적당히 합리적인’ 것을 목표로 삼으라고 말한다. 그게 훨씬 현실적이며 장기적으로 고수할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나는 우아하게 주식거래를 하고 싶지만 가능하지 않다는 걸 인정한다.


사실 나는 그리 냉철해질 수 있는 사람도, 차트와 회계를 분석할 수 있는 사람도, 내 계좌의 폭락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이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황소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나는 잠이 많은 사람이라 밤잠을 설치고 싶어도 푹 잘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민첩하지 못한 낙관주의자라 지지부진함도 버틸 수 있다. 이제 조금은 덜 흥분하며 시장을 바라볼 수 있고 눈물을 닦으면서도 시장을 떠나지 않을 수 있다.



한참 적금과 당근마켓에서 판 물건 값으로 모으던 비자금에 정체기가 왔다. 나는 슬슬 주식을 사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을 손해라도 보면 어쩌나. 가만히 앉아 시간과 인내, 정보만 가지고 통장을 불리는 데 대가가 없을 리 없다. 모든 것에는 대가가 존재한다.


오늘 저녁에 남편에게 살짝 물어봐야겠다. 미국 주식시장은 어설픈 나보다 엔비디아의 성공 신화를 이룬 이에게 묻는 게 이로울 테다.


“여보, 요즘 어떤 주식 사?”


남편은 대답 대신 책을 한 권 건네주고 떠났다.

『챔피언처럼 생각하고 거래하라』.


가족끼리 이러긴가.

자기야 라고 할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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