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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서 챔피언이란

by 김세인
트레이딩은 나 자신과 두려움을 극복하는 평생에 걸친 수련 과정이다.
- 『챔피언처럼 생각하고 거래하라』 중


『Think & Trade Like A Champion』.

남편이 나에게 추천한 책이다. 검은색 표지에 넥타이를 맨 한 남자의 사진이 보였다. 전형적인 자기 계발서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와 남편의 책 고르는 취향은 비슷한 편이 아니라 한동안 책장에 꽂아놓기만 했다. 내가 그 책을 들춰보기라도 한 건 그의 이름이 귀여워서다.


“여보, 그 사람 이름 뭐더라. 미니미니?”


그의 이름은 마크 미너비니다. 1997년 미국투자챔피언십 우승자. 한 분기의 손실과 5년 연속 평균 220 퍼센트의 연수익률을 낸 투자자. 단 몇 천 달러로 시작한 개인 계좌를 몇 백만 달러로 만든 개인 투자자.


그의 책에는 33년간 주식시장에서 쌓아온 자신의 트레이딩 기술이 담겨있다. 차트 분석과 기술 전수라면 다른 책에도 얼마나 많던가. 전수해 준다고 넙죽 받아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텐가. 진심 어린 조언을 주고 싶은 마음을 전하는 첫 몇 페이지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읽지 못했을지 모른다.


거래 이전에 끈기와 올바른 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이 좋아 나는 가방에 책을 넣었다. 그날 이후, 자투리 시간이 나면 조금씩 그의 책을 읽었다. 투자서를 전투적으로 읽기에는 나의 수준과 맞지 않기도 했다. 그는 전문적인 트레이딩에 관한 지식과 중간중간 정신적으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방법까지 꼼꼼히 일러주었다.


사실 나에게는 거부감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보다 신고가를 경신하는 종목을 눈여겨보는 접근이라든가 적당한 수익을 내는 행위를 반복하는 방식은 내가 해오던 방식과 맞지 않았다.

별표와 밑줄이 격하게 표시된 부분을 보고 나보다는 남편이 공감할만한 책이라 생각했다.




남편이 민첩한 다람쥐라면 나는 세월아 네월아 하는 곰 같은 편이다. 투자할 때도 각자의 성향은 여실히 드러났고, 서로 의견이 맞지 않거나 투자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다투기도 했다. 나는 심각한 실수나 손실 정도만 피하면서 크게 수고와 골칫거리를 안아가면서까지 주식투자를 하고 싶지 않은 안일하고 방어적인 투자자에 가깝다. 일확천금의 수익이 아니어도 되니 내 영혼까지 팔지는 않겠다는 식이다.


남편은 경기변동이나 수급에 따라 민첩하고 꼼꼼하게 대응하는 편이다. 적극적으로 새로운 종목 발굴도 하고, 매일 경제책을 읽는 능동적인 투자자다. 투자에도 교수님이 있다면 A 성적을 받을만한 학생이랄까.


그러나 투자의 세계는 똑똑하고 열심히 하는 이에게 보상을 약속해주는 곳은 아니다. 때로는 곰의 우직한 전략이 잘 통할 때도 있고, 때로는 토끼의 꽤 민첩한 전략이 수익을 내는 데 빛을 발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는 몇 년간 함께 주식 투자를 하며 팀워크를 다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토끼는 곰이 열심히 발굴한 종목을 머리를 굴려가며 팔고 나서 몇 배가 더 가는 날에 놀리며 우쭐해한다. 엉거주춤하다 사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는 곰을 보며 토끼는 그러다간 돈을 못 번다고 핀잔이다.




서로의 성향과 전략, 수익률이 정반대일만큼 다르지만 우리는 투자대회에서 챔피언을 거머쥔 미너비니에게서 배운 것이 있다. 그가 자신의 원금과 수익을 지키기 위해 단단하게 울타리를 치고 방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 그는 철저히 ‘계획’을 세운다는 것을. 감정에 휘말려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지 않도록, 자존심과 실수를 만회하려다 성급히 매수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강세장에 취해 수익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지 않도록.


돈은 치밀한 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한 결과 또는 부산물로 쥐어집니다. 반대로 돈이나 결과에 초점을 맞추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돈은 계획을 실행한 후에 따라옵니다.
- p.322


그도 주식을 시작한 처음 7년 간은 그냥 해보기만 했다고 한다. 그저 그런 결과를 내다가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주식 트레이더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후 달라졌다고 했다. 가난하게 성장한 그는 정신적인 가난까지 딛고 올라서는 방법을 배워야 했고, 주식시장에서 스스로 옳은 규칙을 갖추고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하루하루 충실한 계획을 세우고, 행동과 신념이 일치하도록 자신을 통제해 왔다.


‘챔피언’이라는 단어를 곱씹어보며 생각했다.


주식시장에서의 챔피언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생각하는 주식시장에서의 챔피언은 말이다.


경기장에 진정 오래 머무르는 자, 산전수전 겪으며 떠나지 않는 자이다.

몇 번의 행운으로 텐베거의 수익을 내는 자가 아니라, 평균적으로 괜찮은 수익을 내는 자다.

감정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계획과 자신만의 신념으로 대응하는 자다.




“소주 한잔하고 올게.”


미국주식 시장에서 롤러코스터를 타다 피로감을 느낀 남편은 동네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내일이면 또 진정하고 오를 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내 말은 크게 위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 형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주식 경력이 20년쯤 되는 분이다. 아모레퍼시픽이 100만 원까지 돌파하는 데 함께 했던 것은 그의 뚝심이었다. 그는 자신만의 기준과 신념이 확고했다.


주식을 다 팔아야겠다던 남편은 형님을 만나고 와서 기분 좋게 코를 골며 잠들었다. 형님이 자신의 계좌 원금이 3분의 1까지 폭락한 적도 있었다는 옛날 얘기를 해주신 걸까.


우리 동네에 마크 미너비니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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