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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형제님의 영혼을 위하여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13)

by 김세인

“주님, 이 형제님의 영혼이 부디 물욕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남편이 비트코인 이야기를 하며 ‘아’를 연발하는 아침이면 나는 장난기를 가득 담아 남편의 머리를 붙들고 이렇게 성호경을 긋는다.


“테슬라 살까?”

“너무 많이 올랐어. 진정해 여보. 곧 폭락할 거야.”


이쯤 되면 진정할 만도 한 테슬라는 ‘나에게 조정이란 없다’고 선언하듯 우상향 했다.

언제 사도 늦지 않는, 그야말로 ‘달리는 말에 올라타라’는 격언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테슬라 주가를 확인할 때마다 나는 관심 없는 듯 회의론을 펼쳤다.

주가가 오를수록 나는 다른 곳을 쳐다보며 남편의 째려보는 듯한 눈초리를 피했다.


‘아니, 그렇게 사고 싶으면 사지 왜 나를 원망해.’


테슬라가 100달러에서 800달러까지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만 하던 남편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무섭게 치솟는 종목을 보면 더 불안하다. 돈을 벌어서 좋을 법도 하지만 언제 폭락할지 모르니 매도의 불안이 있고, 매도하고 나서 더 오르면 괜히 팔았다고 후회하느라 심기가 매우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돈 앞에서 사람의 평소 모습이나 성향은 돌변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주식거래를 하며 종종 느낀다.


우아하게 주식 거래를 하기란 쉽지 않다.


우리 부부는 몇 년간 함께 주식 투자를 하면서 팀워크를 다지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내 이름으로 증권계좌를 가지고 있을 때 나는 매수와 매도 결정을 할 때마다 남편과 전화통화를 해야 하는 소모전에 시달렸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부부는 귀가 팔랑팔랑 한 채로 매매를 자주 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의사결정을 하는 데 있어 우리만의 근거와 철학도 부족했다. 서로 의견이 맞지 않거나 투자 결과가 좋지 않을 때는 잘잘못을 따지며 다투기도 했다.




내가 봐온 많은 부부가 반대 성향을 가지고 있듯 우리의 투자 성향도 달랐다.


『월가의 영웅』 『지금 당장 주식투자에

선물 옵션을 더하라』

『현명한 투자자』 『재무제표를 알면

오르는 주식이 보인다』

『투자의 가치』 vs. 『차트분석 무작정 따라하기』

『왜 주식인가』 『제로금리 시대가 온다』

『돈의 속성』 『최고의 주식 최적의 타이밍』


왼쪽에 언급한 책들은 내가 산 책들이고 반대편은 남편이 산 책들이다. 그 책들을 읽는다 한들 존 리, 피터 린치, 벤저민 그레이엄처럼 되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들처럼 뭔가 소소한 일들에 정신이 휩쓸리지 않는 초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현명한 투자자』의 저자 벤저민 그레이엄의 개념을 빌리자면 나는 ‘방어적 투자자’이다. 심각한 실수나 손실을 피하고 싶은 사람, 수고나 골칫거리, 빈번한 의사결정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다.


남편은 민첩하고 꼼꼼한 편이다.

재무제표를 공부하고 경기변동이나 수급에 따라 나보다는 종목을 민첩하게 바꾸는 유형의 투자자다. 내가 종이신문을 스크랩하는 동안 남편은 빠르게 인터넷으로 여러 기사를 캡처해 카톡으로 나에게 전송한다. 나보다 새로운 종목 발굴도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다.

나는 엉덩이가 무겁고 둔한 곰 같은 타입이고 남편은 통통 튀는 토끼 같은 타입이다.


때로는 곰의 우직한 전략이 잘 통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토끼의 민첩한 전략이 나을 때도 있었다.


우리는 이제 계좌를 따로 가지고 있다.

큰 그림은 같이 그리지만 나름대로 독립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운영한다.


곰과 토끼는 팀을 이루면서도 각자 계좌의 수익률에 은근히 신경 쓰며 경쟁심을 가지기도 한다. 곰이 토끼를 놀리는 날은 열심히 발굴한 종목을 머리를 굴리며 팔고 나서 몇 배가 더 가는 상황이다.


“으이그, 팔지 말고 좀 놔두지 그랬어.”


그럴 때 토끼의 영혼은 맥주와 함께 어딘가로 탈출한다.


토끼가 곰을 놀리는 날은 엉거주춤하다가 살 타이밍도, 팔 타이밍도 놓칠 때다. 그럴 때 곰은 우격다짐을 하며 다시 경제신문을 펼쳐 든다.


곰은 조금씩 토끼가 가진 장점을 배우고 토끼도 곰의 성공사례를 취합한다.




하지만 어떤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일확천금보다 서로의 영혼이 혼탁해지지 않게 돌봐주는 것이다.


비트코인으로 100억을 벌어 집 사고 건물 샀다는 건너 건너 누군가의 말을 들어도.

어제 매도한 종목이 오늘 미친 듯이 오르더라도.

주식보다 역시 부동산이 최고라는 말을 들어도.


앞으로도 이 형제님과 나의 영혼을 어떻게 지켜나갈지 늘 되새기는 것이 나의 임무다.


여보, 우리 너무 애쓰지 말자.

찰스 부코스키가 묘비명에 썼대.


‘Don’t 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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