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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단타 하는사람 아닙니다.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14)

by 김세인

주식에서 10루타라는 용어를 사용한 건 미국의 전설적인 펀드매니저 피터 린치다.

투자자가 10배의 수익률을 기록한 종목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주식에서도 홈런보다는 안타를 꾸준히 쳐서 홈런만큼의 점수를 쌓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코인으로 벼락부자 또는 벼락 거지가 되기보다는 금과 주식을 사서 곳간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싶다. 18일 동안 20배 상승한 삼성중공업 우선주보다는 10년 동안 매년 우상향 한 LG생활건강이 좋다.


며칠 전 나이키 운동화를 주문했다.

나이키 조던 시리즈는 농구를 하던 남자가 아니라도 인기가 많다. 투명굽이 장착된 에어맥스도 시즌마다 잘 팔린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호가에도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10년 전 20달러 이하였던 나이키 주가는 현재 136달러다. 모든 주식이 10년이 지난다고 해서 10루타를 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15년 전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도 지금도 사람들은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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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가족끼리 가까운 해변을 찾아가는 길에 풍력발전기들이 보였다.

아이들도 인상적이었는지 바람에 돌아가는 저 큰 기계가 무엇인지 물었다. 순간 생각나는 종목이 있었다. 풍력발전 설비와 기술을 개발하는 회사 ‘씨에스윈드’였다. 일 이년 전부터 신문에 부쩍 자주 나와 눈여겨보고 있던 종목이었다.


그때만 해도 주가는 만 원대였다. 인터넷으로 주가를 찾아봤다. 2014년에 7천 원에 상장해서 2021년 주가는 9만 원까지 치솟았다. 83명의 직원을 가진 중견기업이 나에게 생소한 풍력발전이 이렇게 발전할지 몰랐다.


아, 10루타 종목을 놓쳤다.


“이거 연료전지 기업인데 괜찮을 거 같아. 수소가 앞으로 대세일 거란 말이지.”

“수소라.. 지금 주가 얼만데?”

“이제 상장한 지 몇 달 안 됐는데 지금 주가는 5000원이야.”

“상장한 지 얼마 안 된 종목은 등락이 커서 불안한데.”


남편이 말한 연료전지 기업은 두산 퓨얼셀이었다. 우리가 본 주가는 1년도 안 된 사이에 10루타를 넘어섰다. 남편은 10루타 종목을 발굴한 적이 꽤 있다. 다만, 발굴에는 능하나 매도하는 데 민첩해서 문제다.




요즘에는 지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주식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많다. 며칠 전, 남편의 선배 부부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듣고 보니 그는 종잣돈으로 봤을 때 10루타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천만 원으로 1억을 만들었다고 했다. 곧 그의 영웅담이 시작되었다.


“제수씨, 내 포트폴리오 볼래요?”


누군가의 포트폴리오를 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투자금액과 수익률이 모두 공개되기 때문이다.


“우아, 종목이 다양하네요. 대한항공, 신한지주, SK이노베이션, 삼성전자,...

이거 마이너스가 2천만 원인데 아직도 가시고 계시네요. 저 같으면 무서워서 팔았을 텐데.”

“나는 중장기로 종목을 갖고 있는 편이에요. 대한항공은 코로나 터져서 저점에 들어갔어요. 나는 저점이다 싶은 종목에 과감하게 들어가죠. 단타로 하실 거면 A 약품도 괜찮아요. 만 원 아래로 떨어지면 샀다가 2만 원 언저리에서 팔고. 그 박스권에서 움직이는 주식이니까.”


사실 A 약품 같은 주식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 중의 하나이다.

근거 없이 가격의 오르내림에 베팅하는 식의 매매는 돈을 번다 해도 나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그렇게 세 번 성공했을지라도 네 번 성공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웬만한 사람의 주식 영웅담은 잘 믿지 않는 편이지만 나는 대단하다며 추임새를 넣었다.

그의 포트폴리오에서 배짱과 뚝심을 읽었기 때문이다. A 약품과 같은 종목은 십 퍼센트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종목들은 자신만의 근거와 철학을 가지고 매수한 자신감이 보였다. 자신이 선택한 종목이 손해가 커지더라도 쉽게 팔지 않고 믿고 기다린다는 것이 보였다. 맥주잔을 부딪히며 속으로 말을 삼켰다.




‘저, 단타 하는 사람 아닙니다. 하하. 5년, 10년 기다려서 10루타 만루홈런 칠 겁니다. 그땐 저도 영웅담을 얘기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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