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면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 다른 나라들의 증시 상황이 뜬다. 위를 향한 빨간색 삼각형과 아래를 향한 파란색 역삼각형 그리고 소수점과 퍼센트를 동반한 숫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빨간색을 보면 왠지 흥분되고 파란색을 보면 불안하다. 주요국가들의 증시등락 퍼센트가 표시된 지도가 보인다. 호기심과 여행을 향한 설렘으로 보던 세계지도는 이럴 때 내 돈에 영향을 끼치는 하나의 점으로 보일 뿐이다.
계좌에 돈만 들어있다면 주식을 주문하는 것은 너무 간단해서 무서울 때가 있다.
‘현금매수 주문을 처리하시겠습니까?’
이 말에 동의하는 확인 버튼을 한 번 누르면 주식 주문을 완료하게 된다. 주문을 넣는다고 다 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확인 버튼을 누르고 나서 마음이 바뀌면 재빨리 정정 버튼을 눌러야 한다. 물냉면과 비빔냉면 중 고민 끝에 주문한 후 변심했을 때 서둘러 사장님을 불러야 하듯. 가끔 실수로 매수와 매도 버튼을 반대로 누를 때도 있다. 숫자를 잘못 누르면 10주가 100주가 되어 버릴지 모른다. 신용 버튼은 보기만 해도 무섭다.
여러 종목들의 가격을 확인하고 주식 주문창을 연다. 내가 사려고 했던 종목이 오르는 중이다. 매수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 순간 500원, 1000원, 3000원, 5000원...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순식간에 오르는 가격을 따라 매수 버튼을 누른다. 손목과 눈이 아플 지경이다. 10시가 되면 피로감이 몰려온다. 후회도 밀려온다.
‘아까 과감하게 살 걸.’
‘미쳤어. 좀 참았어야 했는데.’
9시와 10시 사이는 주식 가격의 변동성이 큰 시간이라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9시 10분에 폭등했던 종목이 10시부터 진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9시에 사서 10시에 팔게 되는 것이다. 9시 10분에 큰 폭으로 떨어지고 있던 종목이 10시쯤이면 원래 가격으로 돌아서는 일도 많다. 모든 것은 불확실하고 예상을 빗나갔다.
증권 계좌는 내 이름으로 만들어 매수매도는 내가 담당했다. 남편과 나는 한 팀이 되어 움직였다. 30여 년 전, 엄마와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어제 신문에서 봤는데 이 종목 오를 거 같아. 오전에 자기가 매수해.”
“몇 주 정도, 가격은 어느 정도에 사게?”
“뭐 상황 봐서 조금씩 쌀 때 사면 되지.”
이틀 뒤, 다시 그 종목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의 기사가 떴다. 남편이 말했다.
“아 불안한데, 파는 게 나을까?”
“벌써?”
상황을 봐가며 산다는 것은 꽤 애매했다. 기준 없이 순간순간 혼자 판단하기가 어려웠고, 왜 그 가격에 샀느냐 안 샀느냐 하며 때로는 남편과 의견이 달라 다투기도 했다. 오르락 내리락 하던 그 종목은 결국 우리가 매도한 뒤 꾸준히 올랐다. 내가 매수한 종목이 떨어지는 것도 스트레스지만 매도한 종목이 오를 때 배 아픈 스트레스도 못지 않았다.
몇 년 전, 나는 가격이 오르면 오르는 가격을 쫓아가서 매수했고 떨어지면 무서워서 매도했다.
내가 산 기업의 호재 기사가 나오면 사고 악재 기사가 나면 팔았다.
외국인이 사면 따라 사고 외국인이 팔면 따라 팔았다.
증권사 직원이 괜찮다고 하면 사고 10일 지지선이 무너져서 파는 게 좋겠다고 하면 팔았다.
그렇게 사고 팔면서 나는 정신적인 피로감을 느꼈다. 아무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시장에서 도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주식시장에서 이성과 합리성, 마음의 평온은 온데간데 없었다. 내 정신은 점점 매몰되고 있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9시에 사고 10시에 파는 트레이딩에는 돈이 불어날 시간과 공간이 없었다.
주식 투자에 대한 나만의 철학도, 투기에 대한 경계도 없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아침을 계속 보내다가는 신경성 두통에 시달릴 것만 같았다. 다른 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돈의 가치에 점점 무뎌졌다. 카지노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칩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