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증권가에 입사한 20대 청년은 달콤한 유혹에 휘말린다. 작전주 세력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거래대금 500억에 수수료 5억을 버는 거다. 자신의 통장에 진짜 믿을 수 없는 금액의 수수료가 찍힌 다음 거래는 거래대금 7000억에 수수료 12억. 이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 〈돈〉 속의 이야기다.
A사 주식. 코스닥에 상장된 게임주다. 난 게임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래서 게임과 관련된 주식은 사지 않는 편이다. 어느 날 지인의 ‘괜찮다’는 말에 덥석 산 것이 문제였다. 작전주일지도 모른다는 꺼림칙한 이야기를 흘려듣기는 했지만 나는 사실 작전주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주가를 조작해서 시세차익을 노리고 개인투자자들을 현혹하는 행위는 뉴스에 나오는 일로만 생각했다.
1주에 1,000원대라 잃어도 별 부담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마침 인터넷 뉴스 기사에는 관련 종목에 대한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영업적자 제표를 보면서도 신게임 출시에 대한 긍정적인 뉴스가 허황된 것이라는 걸 모르고 막연한 기대를 품는 동안 손실은 점점 불어났다.
결국 상한가에 사서 하한가에 팔았다. 상장된 기업이 4년 연속 영업 손실을 기록하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액션스퀘어는 관리종목 지정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런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것은 투자일까 투기일까. 아니, 주식 자체가 투기가 아닐까.
나는 예전에 내가 가진 주식의 가격이 오르면 내가 투자를 하고 있다고 자만했고 가격이 떨어지면 투기라고 비난했다. 투자와 투기는 이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다. 경제용어사전에 따르면 투자는 생산 활동을 통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고 투기는 생산 활동과 관계없는 이익을 추구하며 가격의 오르내림의 차이에서 오는 이득을 챙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내가 나를 경계하기 위해 정의한 투기는 이렇다. 누군가가 ‘괜찮다더라’라는 말을 듣고 산 주식, 신용 거래로 돈을 빌려서 사는 행위, 테마주 투자, 트레이더처럼 단기간에 사고파는 거래방식이다. 단기투자에 능해서 많은 돈을 버는 사람도 많다. 테마주도 시시각각 다양하다. 하루 만에 몇 배가 오르기도, 떨어지기도 한다. 선거철이 다가오면 정치인 관련 테마주가 난무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방산주가 오르고 코로나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 진단키트 주가 오른다.
나는 이런 종목들을 따라가기에 그렇게 빠르고 민첩하지 못한 데다가 급등하면 언제 급락할지 몰라 불안해야 하는 시간이 싫다. 비트코인 가격이 하늘을 찌르고 한탕 벌 수 있는 기회로 보이지만 매매의 기준이 보이지 않아 나에게는 깜깜한 어둠의 세계일 뿐이다.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일이 항상 통할까? 궁극적으로 큰돈을 벌 수 있을까? 만약 큰돈을 벌더라도 같은 방식으로 언젠가 그 돈을 허공에 뿌리지 않을까. 나도 이런 투기를 해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해서 돈을 번 적은 거의 없었다. 있다 하더라도 내 온전한 정신을 빼앗기고 마음고생을 수반하는 경험이었다. 그렇게 번 돈은 어디로 증발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투자 방식과 태도에 의해서도 투자라는 이름은 투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이제 나는 어떤 종목을 고르기 전에 먼저 투기와 투자를 명확히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최근에는 주식뿐만 아니라 다양한 경로로 돈을 벌었다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곤 한다. 비트코인을 사는 것은 투자인가. 정신을 가다듬는다.
가격의 오르내림에 차익을 노리는 행위인가? 그렇다면 내 정신건강을 위해 사양한다. 내 나름의 분석을 통해 성장 가치가 있는 기업의 주주가 되고자 하는 것인가?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단순해 보이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특히 무리하게 투자하려고 할 때 잠시 나를 멈출 수 있는 기준이 된다.
영화 〈돈〉에서 작전을 맡은 브로커는 칼을 맞고서 작전주 세력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묻는다.
“그 인간에게 한번 물어봐줄래요? 그렇게 벌어서 어디다 쓰려고?”
사실 그렇게 벌어도 쓸 데는 많지 않나. 누군가는 그렇게 벌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들 말한다. 누군가는 한 번만 그렇게 벌고 다시는 손대지 않겠다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기획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상을 할 때마다 독이 숨어있는 꽃으로 꿀을 먹으러 가는 벌이 된 것처럼 찝찝한 기운을 지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