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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들의 탐험

영혼을 지키는 나만의 주식 라이프 (3)

by 김세인

“척후 개미 중의 하나가 칠칠지 못하게 어떤 벌레잡이 식물에 접근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그렇게 개미가 스러져 가고 있다. 그런 일은 원거리 파견을 나선 개미들이 흔히 겪는 불상사의 하나로서 사전에 예측할 도리가 없다. 다만 그 천연의 덫 가장자리에 주의! 위험이라고 표시를 해두는 일이 남아 있을 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 중 일부분이다.


인간 세계에도 과거 시대의 개미들이 위험을 표시해놓은 곳이 있다. 개미들이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접근하지 말라고 페로몬을 내뿜는 곳, 바로 주식시장이다. 여기는 과연 개미들에게 얼마나 위험한 곳일까.




부동산 불패, 주식 필패.

주변 어른들에게 흔히 듣던 얘기였다. 나는 여덟 살부터 이십 년이 넘게 광주의 한 아파트에서 줄곧 살았다. 집을 중심으로 왼쪽 길로 쭉 걸으면 초등학교, 건너편으로 중학교, 오른쪽 길로는 고등학교였다. 부모님은 내가 서른 다섯이 될 때까지 한 곳에 살았으니 거의 삼십 년을 산 셈이다. 서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졌겠지만 나는 입지가 크게 중요하지 않은 지방의 한 아파트에 살았으니 부동산 불패를 경험할 일이 없었다.


아빠의 주식 필패는 어렴풋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때였다. TV에 나오는 주식 시세판의 수많은 종목들이 화면에 가득했고 빠르게 움직였다. 나와 동생은 행여 아빠가 산 종목을 못 보고 넘어갈까봐 눈을 크게 뜨고 집중했다.


주식이 어떤 건지 잘 몰랐지만 중요한 건 화살표가 위로 올라갔는지 아래로 내려갔는지 살피는 일이었다. 화살표가 위로 올라가고 옆에 뜨는 숫자가 클수록 우리는 마냥 좋아했고 그런 날은 통닭을 시켜 먹기도 했다. 아빠는 주식으로 돈 좀 벌어본 선배 동료가 추천하는 종목을 샀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때가 아니었고 개인투자자에게 정보가 충분한 시절도 아니었다. 결국 부모님은 일희일비하다 주식 필패에 격하게 동감하는 사람들로 남았다.


“아가, 증권에는 절대 손대면 안 된다. 우리 친정아버지가 모아놓은 재산, 주식으로 탕진했다. 열심히 벌고 정직하게 모으면서 살아도 충분하다.”

“네, 어머니.”


시어머니는 우리 집에 주식과 관련된 책이라도 보이면 깜짝 놀라 나에게 당부하셨다. 아빠 선배처럼 SK텔레콤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도 있었지만 주변에 주식으로 많은 돈을 잃었다는 사람이 더 흔하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을 포함한 내 주위 어른들은 내가 주의하도록 주식시장에 위험 팻말을 세우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10년 전쯤, 직장을 얻은 사회 초년생일 때 주식을 산 적이 있다. 내가 처음으로 산 회사의 주식은 삼성화재였다. SK텔레콤과 삼성전자 주식 덕분에 일찍 명예퇴직을 하신 아빠의 선배가 추천해준 종목이었다.

“삼성화재 사놓고 사고팔고 하지 말고 일이 년 정도 가만히 놔둬라.”


주식초보자인 나는 손해가 나기 시작하자 몇 달 만에 수익 없이 주식을 팔았다. 공부 없이, 애정 없이 남의 말을 듣고 이후에 산 주식들도 예금 이율은커녕 마이너스만 안겨주었다. 수시로 시세판을 들여다보는 일, 증권사 직원과 통화하는 일은 점점 내가 해야 하는 일들에 방해가 되기 시작했다. 어설픈 재테크 정신으로 들어간 주식시장에서 얼마되지 않는 내 재산을 모두 철수했다. ‘역시 적금이 최고지.’ 생각했다. 그러나 출근할 때 입을 옷을 사는 재미에, 주말이면 이십 대의 밤을 불태울 맥주와 함께, 적금에 들어가는 돈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결혼 후, 시어머니의 말씀을 따르려던 나와 달리 남편은 주식에 투자하고 싶어 했다. 우리 부부가 처음 주식을 사기 시작한 오년 전 쯤, 바이오 종목들이 몇 배씩 오를 때였다. 종자돈이 없었던 나는 절대 빚내서 투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반대했다. 남편이 빚이라도 내서 투자해야 한다고 말한 그 종목은 단기간에 세 배까지 올랐다.


‘괜히 말렸네. 투자했으면 우리한테 있는 빚 갚고도 남았을 수익인데. 아무튼 나는 투자랑은 안 맞나봐.’

장밋빛으로 가득해 보이는 세계로 다시 나는 진입했다. 이번에는 다른 종류의 페로몬이 느껴졌다. SK 하이닉스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반도체 산업과 바이오 산업은 주식시장에서의 거품과 더불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전과 달리 찾아가기 쉽고 말끔하게 잘 포장된 길이 펼쳐진 것 같았다. 인터넷 기사로 내가 투자하고자 하는 기업의 정보도 찾아보기 쉬웠고 여기저기서 꽤 큰 수익률을 거두는데 성공한 개미들의 스토리가 들려왔다.


인터넷 기사와 나름대로의 감각에 따라 주식을 매수했다. 그리고 또 감각에 따라 매도했다. 어떤 방식으로 늘릴지, 잃을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은 전무했다.





부동산에 관심을 쏟으면서도, 그 부동산에서 어떻게 삶의 희로애락을 쌓아 올릴지에 대해서 냉담한 우리 모습을 얘기한 김영민 교수의 말처럼. 그때의 나는 그랬다.



그 후로 몇 년간 주식시장에서의 경력을 쌓아가는 중이었다. 경력이란 어떤 일을 익숙하게 처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위기가 왔을 때 대처하는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하다. 나는 어깨에 힘깨나 주기 시작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전 세계로 퍼져나갈 조짐을 보였다. 내가 샀던 주식은 폭락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산 종목이 아니라 모든 종목이 무섭게 떨어졌다. 그 날, 식당에 갔다가 미국 다우지수가 얼마나 폭락했는지 그래서 한국 코스피는 얼마나 떨어질지 예측하는 뉴스를 보고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책에서 배운 대로라면 매수한 주식을 팔지 않고 지켜야 한다. 오히려 지금은 공포 속에서 모두가 내던질 때 반대로 내가 담아 주울 용기를 가져야 할 때였다. 연일 공포를 불러오는 뉴스와 손실율을 보며 흔들렸다. 그동안 많이 연습하고 훈련해서 패닉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교과서와 실전은 달랐다. 마음에 다시 두려움이 일었다.

결국 나는 칠칠지 못한 척후 개미 중 하나일 뿐일까. 100명 중 한 사람이 우연으로 성공하는 것이라면 여기는 카지노나 다름없지 않은가.


외국인과 기관의 큰 손들이 움직이는 주식시장에서 작고 수많은 개미들의 탐험은 결국 실패로 귀결되도록 설정되어 있는 걸까.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내 자녀에게 위험이라고 표시해두고 떠나는 것이 최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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