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지금 안 사면 놓칠 거 같아. 26평이라 엄마 혼자 살기도 좋고 이모랑 같은 아파트니까.”
“얼만데?”
“피 1억 붙어서 3억 4천 9백만 원.”
“뭐? 1억? 그걸 지금 바로 사겠다는 거야 엄마. 좀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지 그래.”
황당했다.
엄마는 갑자기 마트에서 계란을 사듯 아파트를 샀다. 엄마가 과감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분양권 프리미엄 1억 정도는 보통으로 주고 산다지만 대출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다 비싼 값에 사는 것 같아 마음에 걸렸다. 나라면 몇 번을 생각하고 이리저리 재어보다 아파트를 놓쳤을 것이다. 엄마는 자신의 육감대로 일을 진행했다.
이사하는 날, 전보다 아담해진 새 집 거실에 앉아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2년 전 아빠가 돌아가신 후 혼자 살 집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고 했다. 투룸으로 갈까, 임대아파트로 갈까, 딸 옆으로 가서 전세로 살까... 나는 엄마의 외로움과 막막함을 헤아리지 못하고 비싸게 주고 산다며 핀잔만 했던 게 미안해졌다.
몇 주 후, 엄마는 핸드폰과 신분증을 내밀며 나에게 증권계좌를 만들어달라고 했다. 의아했다. 내가 주식거래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엄마가 걱정스러워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20년 전, 아빠가 주식으로 2천만 원 가까이 손해 본 후로는 주식의 ‘주’자도 꺼내지 말라고 했던 엄마다.
그런데 지금 엄마는 증권회사 앱을 켜고 돈은 어디에 입금하면 되는지 매수와 매도는 어떻게 하는지 수익률은 어디를 누르면 나오는지 나에게 묻고 있었다. 엄마는 관심 종목에 삼성전자만 넣어달라고 했다.
“엄마, 조정 올 거니까 천천히 사. 지금 너무 많이 올랐어.”
“아니, 나는 지금 사련다. 옛날에 네 아빠는 싼 동전 주식을 사서 그렇게 손해만 봤지. 삼성전자는 안 망해. ”
“아무리 좋은 주식도 타이밍이 중요한데.”
“나는 이삼 년 묵혀둘 거니까 언제 사도 상관없다. 요즘 같은 시대에 예금에 넣어놓으면 뭐하겠어. 삼성전자 같은 회사에 투자해야지. 진작 내가 이렇게 경제에 눈을 떴으면 얼마나 좋았겠니.”
그렇게 엄마는 거침없이 집 다음으로 삼성전자도 매수했다. 4만 원대부터 사기 시작해서 5만 원 가까이 갈 때까지 엄마는 매일 조금씩 주식을 매수했다. 아들의 미래 결혼자금이자 엄마의 유일한 현금 비상금은 남김없이 망할 일 없는 삼성전자로 투입되었다.
60대로 보이는 남자분이 자신의 주식거래 경험과 건강한 투자 그리고 노후를 이야기하는 유튜브 방송은 엄마의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그 유튜버는 엄마의 멘토가 되어 있었다. 삼성전자를 사라는 말과 팔지 말고 기다리라는 조언을 엄마는 철썩 같이 따랐다.
엄마는 청약 저축을 해약하고 보험은 최소한도로 줄여서 점점 주식 수를 늘려나갔다.예전 같으면 겨울 코트를 고르러 같이 갔을 엄마가 이번 겨울은 그런대로 넘기겠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의 믿음에 보답하듯 삼성전자는 흔들림 없는 곡선을 그리며 매일 신고가를 기록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엄마가 산지 몇 달 만에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엄마가 내 말 대신 엄마의 유튜버 아저씨 말을 듣길 잘했다 싶었다.
그 후로 엄마는 남동생과 이모를 만난 자리에서 두 사람의 신분증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신분증 사진을 찍고 인증번호를 입력하고 그들의 증권회사 계좌를 만들어야 했다. 엄마는 두 사람에게 삼성전자 주식을 2주씩 선물했다.
대신 절대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아들에게 나중에 검사할 테니 꼭 쥐고 있으라고, 돈이 생기면 추가 매수하라고, 주식은 사고 파는 게 아니라고 엄포를 놓았다.
내가 몇 년 만에 습득한 주식거래의 기본태도와 철학을 엄마는 몇 달 만에 습득한 것 같았다. 주식을 사는 법은 배웠지만 파는 법은 배우지 않았다는 존 리(메리츠 자산운용 대표)가 나타난 줄 알았다.
두 사람에게 간 삼성전자 주식 2주가 손해를 볼지 이익을 볼지 모르지만 이래나 저래나 돈으로는 별 가치가 없을 것이다. 몇 주 안 되지만 아들과 동생에게 돈 대신 주식을 사 준 건 엄마가 느낀 무언가를 전해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영혼까지 돈을 끌어다 모아 주식에 투자한다는 ‘영끌’이 이상하게 엄마에게는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과거 아빠와 함께 했던 투자실패는 철학이 부재한 거래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매달 황금알을 낳는 연금도 좋지만 좀 더 능동적으로 노후의 주머니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눈빛으로.
노동으로 벌 수 있는 돈뿐 아니라 회사의 가치와 성장을 믿는 대가로 얻을 수 있는 자산도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손짓으로.
고인 물에 돈을 두기보다는 파도에 휩쓸릴지언정 흐르는 물로 보내는 게 낫지 않냐는 확신으로.
“엄마, 어디야?”
“응. 이모들이 밥 사라고 해서 점심 먹으러 왔어.”
“뭐 좋은 일 있어?”
“삼성전자 오늘 많이 올랐다고 밥 사라 하잖니.”
전화기 너머 이모들의 수다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뒤였다. 엄마가 쓴 밥값이 무색하게 축포를 올린 뒤부터 삼성전자는 조정 국면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