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장에 가서 바벨을 잡을 때까지 나에게는 많은 훈련이 필요했다. 남자들이 20kg짜리 동그란 원판을 양쪽에 꽂고 번쩍번쩍 드는 동안 나는 매트를 깔고 팔굽혀펴기도아닌 팔 뻗기 스트레칭을 했다. 공원에 있던 것과 비슷한 운동기구들을 찾아다니거나 런닝 머신 위에서 시간을 보냈다.
바벨이 있는 영역은 건장한 남자들이 갈 곳이지 내가 가까이 갈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등, 하체, 팔, 복근 운동을 해도 몸의 중심이 탄탄하지 않아 코어 운동을 수 개월 동안 반복해야 했다. 내 체력과 근력보다 더 욕심을 내서 운동할 때는 목이나 허리 통증이 오는 걸 느꼈고 며칠이라도 운동을 게을리하면 원래 내 몸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바벨을 드는 일에 비하면 주식을 사고 파는 것은 아주 간단하고 쉬워 보인다. 주수를 입력하고 매수나 매도 버튼을 누르면 된다. 요즘은 주린이(주식+어린이)를 위한 친절한 책과 방송이 넘쳐나서 개인 트레이너가 내 옆에 여러 명 있는 거나 다름없다. 주식매매의 기본 원칙도 꽤 상식적이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면 된다.
그러면 돈을 버는 것이다. 이렇게 벌면 일할 필요도 없이 주식만 하고 앉아있으면 될 것만 같다.
왜 부동산으로 돈 번 사람은 많아도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은 별로 없다는 말이 있을까. 물론 코로나 이후 요즘 같은 강세장에서는 벼락거지보다 벼락부자가 많다는 소리가 더 많이 들린다. 주식거래는 아주 상식적이고 간단해 보이지만 나의 경험상 충분한 스트레칭과 코어 운동이 필요하다.
남들이 하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다가는 경제적, 정신적 부상을 당하기 쉽다.
내가 주식시장에서 쌓은 근력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 나름대로 훈련해온 것이다. 11자 복근을 만들어두었다고 해서 매일 선명하게 복근을 유지하기 힘들 듯 내 나름의 원칙을 지키는 데 단련되었다고 생각해도 주식거래를 하면서 갈대처럼 흔들릴 때가 수도 없이 많다.
내가 처음 주식거래를 할 때는 모든 것이 막연했다. 기대하는 수익률도, 종목을 선택하는 일도, 매수와 매도 타이밍도. 시간이 지나고 15 퍼센트의 수익이 나면 팔자는 원칙을 세웠다. 그만큼 수익이 나자 욕심이 생겨서 팔지 못했다. 15 퍼센트의 손실이 나면 팔자는 원칙을 세웠다. 10 퍼센트까지 가기도 전에 무서워서 팔았다.
“우리 부부는 최악의 주식 콤비야. 이 사람은 고가 매수를 잘하고 나는 저가 매도를 잘하잖아.”
얼마 전 지인 부부가 하는 말을 듣고 옛날 생각이 나서 피식 웃었다.
모두가 흥분할 때 같이 흥분하던 나는 고가에 매수를 실행했다. 모두가 공포에 질릴 때 나는 뭉크의 ‘절규’를 떠올리며 저가에 매도했다. 그렇게 생각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반복하면서 나는 인간의 행동심리와 인내의 힘에 대해 생각했다.
수년간 주식거래를 하면서 내가 몸에 체득한 가장 어려운 트레이닝은 떨어질 때 사고 오를 때 파는 일이었다. 또 매도의 유혹이 올 때마다 참고 견디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어려웠다.
이건 기술이 아니고 심리이기 때문이다. 내 심리를 컨트롤하는 것은 누군가의 조언으로 될 일은 아니었다.
“LG화학, ESS 배터리 화재 원인 찾는 중.”
“LG화학, 전지사업부 불확실성, 목표가 하향.”
“기관, LG화학 9일째 팔아.”
“LG화학 vs SK 이노베이션, 끝나지 않는 배터리 갈등.”
기사를 볼 때마다 흔들렸다. 확신을 가지고 매수했다가도 악재 사건이 터지면 모두 팔았다. 사고가 잠잠해지면 다시 샀다. 증권가의 목표가 하향, 분기 실적 어닝쇼크, 외국인과 기관의 매도세를 보면 또 일부 팔았다. 며칠이 지나면 팔랑귀를 후회하며 오기로 또 샀다. 이제 정말 굳게 마음을 먹고 꽤 보유하고 수익률도 올라갔다.
어느 날, 남편에게서 카톡이 왔다. 기사 캡처와 함께 한 마디를 남겼다.
“배터리 보고 투자했는데...분사? LG 화학 주주들 뿔났다”
출처 : 머니투데이 네이버
“LG화학 팔아야 할 듯.”
‘난 누가 뭐래도 안 팔아.’
주가를 확인했더니 역시나 무섭게 떨어지고 있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굳건히 가지고 있으려던 종목이었다.
‘진짜 팔아야 하나?’
결국 심리적으로 동요된 상태로 우선 10주를 팔았다. 배터리 화재사고로 주가가 떨어졌을 때도 흔들리지 않고 팔지 않았는데 소중한 내 소지품을 판 기분이었다. 팔지 않는 것이 답은 아니다. 단지 투자자로서 나만의 룰을 가지고 지켜나가는 것이 생각보다 꽤 어려웠다. 과거에도 어려웠고 아직도 흔들리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주식거래를 할 때 스스로 행동을 바꾸는 트레이닝을 해보기로 했다.
1단계. 주가가 떨어지면 추가매수하고 올라도 팔지 않는다.
2단계. 단기적인 등락이나 이벤트,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3단계. 기업의 가치가 흔들리지 않으면 팔지 않는다.
그렇게 나의 잔고는 점점 달라졌다. 체력과 근력이 쌓였다 생각될 때 투자금액과 종목 수를 조금씩 늘려갔다. 그동안 연습한 인내력과 시간의 힘을 빌려 50 퍼센트에 가까운 손실율도 회복하는 경험이 늘어갔다.
100 퍼센트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종목도 점점 늘어갔다. 내 계좌에 100 퍼센트의 수익률이 찍힌 종목이 있는 것은 내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시장이 패닉되었을 때 싼 가격에 사서 시장의 상황이 급격히 상승해서 신고가를 찍었기 때문이다.
다만 수익률이 20퍼센트가 되었을 때도, 50퍼센트가 되었을 때도, 80퍼센트가 되었을 때도 팔지 않고 인내를 발휘했을 뿐이다.100퍼센트의 수익률일 때 또 한 번 유혹을 이겨낼 뿐이다.
한 번 참아보면 두 번째는 덜 흔들린다. 주식계의 명품은 누군가에게 중고로 팔지 않고 꼭 쥐고 있는다. 더 저렴한 새로 떠오르는 가방들은 주기적으로 사겠지만 명품은 한 번 팔면 고가에 다시 사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갑을 끼고 스트랩을 두 번 감아 바벨을 잡고 내 몸에 가까이 붙여서 들어올릴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거울을 보며 기본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들 수 있을 때 5kg, 10kg짜리 원판을 더 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