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을 통해 본 고3 담임들의 쓸데없는 걱정들
고3 담임으로 오랫동안 학생들을 대하면서 생긴 걱정들이 존재한다. 고3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자고 있을 때,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볼 때, 성적이 점점 떨어지는 것을 성적표로 확인할 때 발동하는 걱정들이다. “너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사회 나가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겠니?”, “지금도 학교에 제 시간에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사회 나가서 제대로 직장생활할 수 있겠니?”, “지금 자신의 진로를 잘 찾지 못하면 사회 나가서 어렵게 살아갈 수밖에 없단다” 등등
나 역시 고3 담임으로서 학생들과 상담할 때 이런 식의 걱정을 많이 했고 그런 걱정들 속에서 생성된 감정들이 학생들에게 전이되면서 가끔 폭발하며 학생들에게 몰아칠 때도 많았다. 이런 잔소리와 걱정들은 모두 교사로서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관심과 사회경험 속에서 발현된 정당한 생각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생각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정말 그러한가?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수업에 항상 지각하는 학생들, 자신의 진로를 못 찾고 놀기만 하는 학생들은 정말 미래에 낙오되고 우울한 삶을 살게 되는 걸까?
과학교사로서 이 현상을 양자역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하이젠베르크가 주장한 "불확정성의 원리"는 한입자의 위치와 운동성이 함께 정확하게 관측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물체는 파동처럼 움직이고 있고 물체의 질량이 커질수록 움직임이 두드러지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정지된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작은 입자들은 정확한 위치를 인지할 수 없지만 점점 질량이 커지면 물질의 움직임이 크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지점을 관찰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한 단계 더 들어가자! 관측자가 물질의 위치를 특정한다는 것은(정확한 지점을 인지한다는 것은) 빛이 물질을 부딪혀서 반사되어 눈의 망막에 맺히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런데 매우 작은 입자(양자까지 작을 때)에게는 빛이 부딪히면 큰 영향을 받아 이미 물질은 움직이고 그 빛이 눈으로 들어와 물질의 위치를 인지할 때는 이미 그 물질의 위치는 바뀐 이후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관측자는 매우 작은 미지세계에 입자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질량이 커지는 거시 세계에서는 물질의 위치, 운동성을 점점 더 정확하게 특정할 수 있어서 고정된 수로 여기고 이런 조건하에 학교에서 배우는 뉴턴의 법칙으로 계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미시세계의 관측과 거시 세계의 관측에는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이런 이론을 학생들을 바라보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10대 아이들은 그 미래의 가능성을 특정할 수 없는 미시세계의 물질과 같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30,40대로 갈수록 점점 불확정성이 떨어지는 거시 세계라고 보겠다. 그렇다면 지금 학생이 좀 공부를 못하고 사고를 친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학생의 미래를 특정할 수 없다!! 단, 이런 학생들을 바라보는 교사, 어른(관측자)의 시선, 빛이 물질을 부딪혀 영향을 주듯 학생들에게 고정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바라보고 대할 때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고 불안감을 갖게 되는 등 매우 큰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또한 과학적 태도에 대해 언급할 때 T.H. 헉슬리의 "불가지론" 이란 태도가 있다. 확실히 입증되지 않은 이론과 현상에 대해서는 결론을 짓지 않고 겸손하게 수용하는 태도이다. 그런데 어느덧 교사들이나 어른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경험치로 학생의 미래를 예측하는 기준을 절대화하여 학생들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확실히 검증된 지식과 생각이 아님에도 말이다.
나에게 이런 이미지와 같은 걱정들에 대해 깨트리는 몇 가지 사건이 존재한다. 이런 사건들로 인해 나의 인식이 바뀌고 좀 더 객관적으로 현실을 바라보게 된 것 같다.
몇 년 전에 인상적인 3명의 고3 학생이 있었다. 첫 번째 학생은 자신은 대학을 갈 생각이 없다며 고3 때 학교를 나오지 않았고 두 번째 학생은 가정사와 방황 속에서 학교를 나오지 않겠다고 했다. 세 번째 학생은 학교는 나오지만 아무 꿈이 없이 그냥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려고 나오는 학생이다. 그중에 학교를 나오지 않는 학생들의 집에 찾아가 상담도 하고 권면도 했다. "학교에서 잘 못한다고 사회에서 못한다는 법 없고 학교에서 잘한다고 사회에서 잘한다는 보장 없다. 하지만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사회에서 잘할 수 있을 때 출발선은 동등하게 맞출 수 있다. 그러니 힘들겠지만 학교는 나왔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집을 몇 번씩 찾아가며 많은 얘기를 했다. 그럴 때 그 학생들이 설득돼서 학교에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부는 하기 싫어서 그냥 7교시 수업이 끝나고 종례시간에 담임 얼굴 보고 인사하고 돌아갔다. 그렇게 겨우 졸업을 하게 되었다.
다음 해 스승의 날에 한 학생이 찾아왔다. 꿈이 없이 그냥 학교에서 재미있게 지내던 학생이었다. 그 학생과 얘기하던 중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찾아온 학생은 자신의 꿈을 발견하고 공부를 하고 싶다고 재수를 준비한다는 애기였고 방황했던 한 학생은 지인의 추천으로 대기업 쪽 공장에 취직이 되었다. 또 다른 학생은 일본어를 취미로 공부하고 컴퓨터 자격증을 땄고 알바를 해서 일본으로 여행도 다녀왔다는 소식이었다. 이런 애기들을 들으면서 내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했던 걱정들이 쓸데없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은 다들 자기 인생의 살 길을 찾아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나중에 교육대학원에 다닐 때 한 동료 선생님은 자기 꿈을 찾지 못해서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꿈을 찾아 지내다가 지금은 석사를 졸업하고 이제 박사과정을 밟게 되었다. 지금은 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에게 큰 영감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교사들은 잠재력이 높고 불확정성이 높은 학생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바라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