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흥미로운 기사를 읽게 되었다. 서울시의 '모두의 학교'에서는 화장실 픽토그램 사진이 온라인 올라와 큰 이슈가 되었는데 픽토그램은 남성과 여성을 나누지 않고 '한 가지' 디자인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런 픽토그램 변화는 여성이 '치마'를 입는다는 성적 고정관념을 깨는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런 변화에 지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고 새로운 화장실 팻말에 불만을 표한 이들은 "화장실 팻말에까지 '성차별' 프레임을 씌우냐! 눈에 확 들어오는 게 가장 좋은 게 아니냐" 라며 불편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라고 기사에 쓰여있었다.
남녀 화장실 팻말에 대한 논란에서 알 수 있듯이 논쟁의 핵심은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할 때 차별과 구별을 구분하지 못한 부작용에 빠지게 된다.
두 가지 영역은 층위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면 결국 해답이 없는 평행선을 달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차별과 구별의 부작용은 과학계에서 크게 나타났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윈의 종의 기원을 비롯한 진화론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을 잠깐 설명하자면, 우선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 맬서스의 인구론이 있다. 맬서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식량 생산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생존 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인류의 기근 문제에 어차피 해결할 수 없으니 인류의 수가 자연스럽게 감소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하는 것이 자연의 섭리처럼 인식했다. 정서적으로는 화가 나지만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기에 주변에 큰 영향을 주었다(이런 모티브가 어벤저스의 타노스에게 보인다). 다윈도 이런 이론의 영향을 받아 인간 외에도 모든 종의 집단이 개체 수를 급격히 증가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인식하였지만 실제 자연에서 모든 집단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으므로 사망률도 높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으며, 생존을 위해서 경쟁한다는 점을 착안하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후 자연선택설은 유전학이 정립된 후 생물학 분야를 통합하여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자연선택설을 받아들였고 이후 다윈의 진화론은 생명과학 및 다른 과학 분야와 철학 등 여러 학문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유전학의 우성, 열성의 개념, 자연선택설, 적자생존, 집단유전학 등 그만큼 과학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론이 되었다. 문제는 이런 개념의 오개념이다. 유전학의 우성, 열성은 개체수가 많게 발현되는가? 적게 발현되는가? 의 개념이었지 우열함과 열등감의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런 개념을 우열이라는 힘의 논리로 받아들였고 더 확장하여 우생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차별과 구별을 구별하지 않은 인간의 욕망, 이기심, 지배욕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이런 과학적 개념이 인간과 사회에 깊이 영향을 주게 되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이 알려지면서 이를 나름대로 해석하여 확장하려는 시도들도 나타났고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사회 다윈주의’였다. 영국의 스펜서는 다윈의 적자생존을 받아들여 ‘환경에 가장 적합하다’는 특징을 가장 우수한 성질로 바꾸어 사람들 사이의 경쟁 또는 국가들 사이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존재는 그럴만한 특징을 가진 우수한 존재라는 방식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에 대한 지배에도 적용되어 생존 경쟁에 따라 인종 차별과 약육강식을 합리화하여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흑인 남성을 강제로 정관수술을 하게 만든 근거, 나치 치하의 독일에서는 인종 차별과 학살의 근거로 활용되었다.
과학교사의 눈으로 볼 때 남녀 화장실의 팻말 모습이 어떻게 생겼든 개인적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사람들의 인식 속에 틀림과 다름을 구분하지 못할 때 차별과 구별로 구분하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 갈등들은 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