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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Nov 17. 2023

우리가 음모론에 빠지는 이유

동기화된 추론


 한때 빌게이츠가 코로나19를 퍼트렸다는 가짜뉴스가 퍼지던 때가 있었다. 그 근거로, 음모론자들은 빌게이츠가 2015년에 강연한 TED를 예로 들었다. 빌 게이츠가 TED 강연에서 “앞으로 수십 년 안에 천만 명 이상이 죽게 된다면, 전쟁이 아닌 바이러스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는 이유다. 심지어 그가 인구 감소를 위해 전염병을 퍼트렸다거나, 백신을 통해 MS의 마이크로 칩을 사람들 몸에 심으려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어이가 없는 낭설이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사람들은 왜 말도 안 되는 거짓과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걸까?  물론 그들은 전체 인구 중 소수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도 별자리나 사주 같은 미신을 믿지 않던가. 맹신의 범위를 넓혀 가다 보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단 걸 알게 된다. 


 우리는 진실을 찾도록 진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간은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믿음이라도 끝까지 지켜내고 방어하도록 진화했다. 그게 생존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부족 사회에서 라이벌 집단과 경쟁하며 살아가던 선조들은 자기 집단의 가치 체계를 무조건적으로 따르고 방어해야 했고, 동시에 자신의 행동을 도덕적으로 합리화해야 했다. 정당화에 실패한 개인들은 무리에서 쫓겨나거나 배척을 당했다.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단결력이 뛰어난 개인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따로 노는 윤리학자 집단을 이겼고, 우리는 조상들의 심리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지성을 사용해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낸다. 이런 심리적 현상을 '동기화된 추론'이라고 한다. 


 '동기화된 추론' 가설에 따르면, 의식적 사고와 추론 능력은 진실을 발견하는 데 있지 않다. 타인과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성은 감정으로 얼룩진다. 무의식이 의식을 앞서는 셈이다. 덕분에 세상은 고집 센 독불장군, 꼰대, 음모론자, 스스로 선이라고 믿는 악인들로 넘쳐난다. 


 이를 증명하는 실험 결과도 쌓여 있다. 일단, 무신론자도 영혼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실험장에서 태어나 깨끗이 살균된, 열대과일 향이 첨가된 달콤한 바퀴벌레 주스를 거부한다. 10달러를 포기하더라도 말이다. 지능 검사를 한 후 낮은 점수가 나오면 서둘러 IQ 테스트의 신뢰성을 비판하는 기사를 읽어본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일치하는 기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읽지만, 반대 기사는 철저히 무시한다.  


 이렇듯,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는 서구 철학의 믿음에 위배되는 연구가 최근엔 쏟아지고 있다. 따라서 감정을 코끼리에, 이성을 기수에 비유한다면 고삐를 쥐는 것은 기수가 아닌 코끼리다. 코끼리라는 감정이 순식간에 방향을 정하고 나면, 기수가 목줄에 끌린 채 뒤따라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답정너' 사고방식을 지닌 채 태어나는, 고집불통인 종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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