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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Nov 15. 2023

침팬지 다과회


기원전 300년 전, 한 철학자가 인간을 두 발로 걸어 다니는 털 없는 동물로 정의했다. 훗날 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플라톤이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털을 뽑은 닭을 들고 와서는 “여기 플라톤이 말한 인간이 있다”라고 외쳤다. 난감해진 플라톤은 ‘넓적한 손톱과 발톱을 가진’이라는 주석을 황급히 추가했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특징을 웃음으로 정의하며, 세상은 스칼라 나투라이(scala naturae, 자연의 사닥다리)로 이루어져 있다고 외쳤다. 당연히 그 꼭대기에는 인간을 위치시켰다. 


그렇게 인류, 특히 서구 문명은 이천 년 전부터 인간과 동물 사이에 벽을 쌓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스스로를 자연과 독립된 존재로 위치시켜야만 동물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 때문에. 그래서일까? 우리는 자기 얼굴만 비칠 만큼 작고 편협한 거울을 들고 와서는, 이렇게 묻곤 한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종이 누구니?”



 침팬지 다과회도 그런 목적에서 생겨났다. 1926년 런던 동물원에서 처음 시작된 침팬지의 티파티(Tea Party)는 인간과 닮았지만 절대 인간이 될 수 없는, 동물의 열등함을 재확인하고 싶어 하던 유럽인들의 유흥거리였다. 그곳에서 침팬지는 관람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장을 입고 식탁에 둘러앉아 차를 마셨다. 물론, 명확한 행동 강령이 있었다. 


"인간의 행동을 흉내 내되, 절대 인간의 자리를 넘봐서는 안 된다"


 훈련을 맡은 영장류학자 데즈먼드 모리스는 일부러 티파티를 난장판으로 만들도록 침팬지를 훈련시켰다. 너무 완벽하게 차를 마시고 주전자를 사용하는 유인원을 보고 관람객들이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사실 침팬지 정도의 지능을 갖춘 동물에게 차 마시는 방법을 배우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모리스는 공으로 목표물 맞히기, 자판기에서 음료수 뽑기 등 다양하고 복잡한 행동을 보여주고 싶어 했지만, 플라톤의 정의에 길들여진 대중이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침팬지는 처음에 잘하는 가 싶다가 어느 순간 동물의 열등함을 보여주도록 훈련받았다. 테이블 위에 올라가고, 찻주전자에 입을 대고 마시고, 티스푼을 집어던지고...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공연을 보고서야 사람들은 웃으며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엔 침팬지 다과회를 보고 많은 침팬지 새끼가 입양되었다. 우리를 닮은, 엉뚱하고 사랑스러운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에. 공연을 한 어린 침팬지가 사실 밀렵꾼이 부모를 죽이고 데려온 새끼들이고, 성년이 되면 인간보다 7배 이상 힘이 세지고, 가끔 화가 나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점은 아무도 몰랐지만. 


 결과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모든 침팬지가 파양 되었다. 인간 부모는 그들을 애완동물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과 닮아서 호기심은 가지만, 책임은 지기 싫은 애완동물. 그렇게 침팬지와 인간 부모 모두를 잃은 침팬지들은 한 평 남짓 되는 콘크리트 우리에서 평생을 살아가거나, 의학 실험 도구로 이용되었다. 선별된 엘리트 침팬지는 우주로 보내는 훈련을 받았다. 그것도 아니면 아무런 준비 없이 야생으로 방생했다. 당연히 그들은 야생의 침팬지 무리에 적응하지 못했고, 많은 침팬지가 목숨을 잃었다.


 이런 사례들을 마주하는 날엔, 플라톤의 정의를 이렇게 고쳐 쓰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오만하고 잔혹한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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