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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Dec 20. 2023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지는 일

 

 심리학자들이 붉은털원숭이 두 마리를 좁은 우리에 가두고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실험한 적이 있었다. 붉은털원숭이는 낯선 이방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상대로 그들은 처음 보는 상대에게 적대적인 반응을 보였고, 비명을 지르거나 털을 부풀리며 서로를 위협했다. 


 그러나 싸움은 일어나지 않았다. 조건이 다르기 때문이다. 두 원숭이가 숲 속에서 만났다면 서로를 무시한 채 지나가거나, 선제공격을 날리거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기싸움에서 지지 않으려 애쓸 수도 있다. 싸움을 말리는 친구가 있어 “야, 말리지 마”라고 말하며 마음껏 허세를 부릴 수도 있다. 탁 트인 공간에선 다양한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낯선 원숭이를 만난다 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좁은 철창에서 서로를 하루종일 마주 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포유류는 잠재적인 위험 상대와 만났을 때 '전투' 혹은 '도피' 전략을 사용한다. 도망칠 공간이 없다면 유일한 선택지는 전투뿐이다. 일단 싸움을 시작하면, 둘 중 하나는 죽거나 크게 다칠 것이다.


 그런 이유로 붉은털원숭이는 어떻게든 싸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공격성을 자제하려 애쓰는 것이다. 실험 결과 두 녀석 모두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무관심한 척하고, 구석에 처박혀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관찰되었다. 몸을 살짝 움직이기만 해도 싸우자는 의도로 비칠 수 있어서다.




 3초 이상 눈을 마주치는 것도 금기시된다. 영장류 세계에서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건 위협으로 간주된다. 그래서 감옥에 갇힌 두 원숭이는 허공이나 땅을 쳐다보거나, 철창 밖에 있는 무언가를 뚫어지게 응시하기도 한다. 마치 거기에 바나나가 어른거리는 듯 말이다.


 하지만 악랄한 과학자들이 실험을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압박을 받게 된다. 화해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원숭이는 이빨을 활짝 드러낸다. 이는 털 없는 원숭이들이 보기에 날카로운 이빨로 상대를 위협하는 듯 보이겠지만, 털 있는 원숭이들의 세계에선 머리를 긁적이며 화해하자는 어색한 미소를 의미한다. 이 이빨로 너를 물지 않겠다는 순종적인 의미인데, 영장류학자들은 이런 신호를 ‘겁먹은 웃음’이라 부른다. 


 일단 어색하게 웃고 나면, 털을 다듬어주거나 벼룩을 잡아주는 단계로 돌입한다. 상대의 몸을 다듬어주고 마사지해 주는 것은 긴장을 누그러트리기에 영장류들이 애용하는 방법이다. 털 골라주기가 시작되면 두 녀석은 서로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안심할 수 있다. 편안한 상태가 되어, 느긋하게 드러누울 수도 있다.


 그럼 인간은 어떨까. 붉은털원숭이에게 그랬듯이 죄 없는 인간을 갇힌 철창에 가둬놓을 수는 없다. 그런 짓을 한 심리학자는 고소를 당하게 될 것이고, 자신이 철창에 갇히는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유사한 상황이 매일, 수많은 사람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난다. 바로 엘리베이터 안이다. 


 사람들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붉은털원숭이 두 마리가 우리에 갇힌 것처럼 행동한다. 낯선 사람이 타면 괜히 어색하고 불안한 기분이 든다. 긴장을 감추기 위해 괜히 천장이나 바닥을 뚫어지게 쳐다보기도 한다. 닫힘 버튼이 고장 난 듯 강박적으로 누르거나, 최대한 구석으로 가 몸을 파묻는다. 어떻게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고, 인터넷이 터지지 않는 핸드폰을 괜스레 만지며 상대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리려 애쓴다. 진화 과정에서 이빨 웃음과 털 골라주기를 잊어버린 탓이다. 


 우리는 붉은털원숭이가 애용하는 화해의 방식을 사용할 수가 없다. 인간이 이빨을 훤히 드러내면 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는지 봐달라는 의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골라줄 털 또한 거의 없다. 겨드랑이나 다리에 난 털은 다 뽑아버렸다. 머리에 난 털이 있긴 하지만, 샴푸가 발명된 뒤로 벼룩은 더 이상 털 위에서 살지 못한다. 게다가 인간은 머리에 난 털만큼은 유난히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처음 만난 이의 머리털을 쓰다듬어 주는 행동은 역효과가 나기 쉽다. 수년 동안 털 손질을 연습한 전문가에게만 돈을 주고 머리털을 맡기는 것이 그 증거다. 머리에 더 이상 털이 자라지 않는 개체는 털 골라주기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대신 우리는 미소를 짓는 것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거나, 사회적 신호로서 음성 언어를 사용한다. 별로 친하지 않은 이웃과 함께 갇혀 있어야 할 때, 상대가 먼저 말을 거는 이유다. 


“날씨가 좋네요."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셨어요?"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붉은털원숭이와 마찬가지로 낯선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위험해지는 상황을 조상들이 반복해서 겪었기 때문이다. 두 원시인들이 토끼를 쫓다가 좁고 어두운 동굴에서 서로 마주쳤다고 생각해 보자. 한쪽은 너도밤나무로 만든 튼튼한 몽둥이를, 다른 한쪽은 부족 최고의 장인이 만든 날카로운 뗀석기 창을 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둘은 서로를 모르는 데도 무기를 내려놓고 아내가 점심으로 챙겨준 육포를 사이좋게 나눠먹을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선조들은 대부분 싸움을 택했다. 화석에 남아있는 깨진 머리뼈와 옆구리에 박힌 창 조각이 과거를 증명한다. 






 그러니 오늘 하루만큼은 엘리베이터 유리창에 말라붙은 모기 시체를 유심히 들여다보는 대신, 먼저 말을 걸거나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어보는 건 어떨까. 상대도 이빨을 드러내며 웃어줄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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