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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양이 Dec 27. 2023

길들여진다는 것은

 네가 나를 길들이면 정말 놀라운 일이 생기게 돼. 금빛 밀밭을 보면, 네가 생각날 거야. 나는 밀밭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오후 네 시에 네가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더 행복해지지.
네 시가 되면,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하게 돼.  
행복의 대가가 어떤 건지 알게 되는 거야!

                                                            - 어린왕자 중에서 -

                         




 1868년, 다윈은 <길들이기에 따른 동물과 식물의 변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서 다윈은 길들여진 포유류가 처진 귀, 흰 반점과 하얀 얼룩, 말린 꼬리를 갖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당시엔 유전학이란 학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윈은 길들여진 가축이 왜 몸이 작아지고 귀가 접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후대의 생물학자들은 이 현상'길들이기 증후군(domestication syndrome)'이라 부른다. 그리고 현재 '길들임'은 생물학계에서 가장 관심받는 주제이기도 하다. 가축화된 동물이 높은 지능과 공감능력, 친화성을 가진다는 증거가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설에 따르면, 인간의 뛰어난 인지능력은 도구를 만들거나 언어를 사용해서가 아니다. 스스로를 선한 존재로 길들여서다. 



 아이디어는 구소련의 한 여성 과학자에게서 시작되었다. 러시아 생물학자 드미트리 벨라예프는 가축화된 동물의 꼬리가 말리고 아기처럼 귀엽고 동글동글해지는 것을 보고 직접 실험해 보기로 한다. 우선, 친화성이 높고 순한 개체는 신체 또한 달라진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야생 은여우 중 순한 녀석만 교배시켰다. 보호장갑을 물지 않고 머뭇거리는 여우들만 선택해 짝을 지어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변화를 볼 수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4세대 만에 꼬리를 흔드는 새끼가 태어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을 보고 오줌을 싸며 반기는 여우가 탄생했다. 새로운 여우는 꼬리가 말리고 개처럼 귀가 접힌 채 송곳니가 뭉뚝해졌다. 사람이 나타나면 철창을 긁으며 만져달라고 애달프게 울었다. 


 50세대가 지난 후, 새롭게 탄생한 여우는 행복 호르몬이라 불리는 세로토닌이 야생 여우보다 5배 더 많이 분배되었다. 스트레스도 덜 받았다. 다 큰 여우는 청소년기에 머물러 있었고, 공격성을 표출하는 대신 노는 데 더 집중했다. 얼굴 역시 개처럼 둥글둥글 해지고 순해졌고, 지능 역시 높아졌다. 


 그리고 현재 벨라예프에 의해 교배된 여우는 애완용으로 분양되고 있다. 


 길들여진 대가로, 사람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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