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혼 일지 : Prologue
Day 1.
드디어 D-day다.
곰이 마늘과 쑥을 먹고 동굴에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길 갈망하는 심정으로 나는 나 스스로 나를 헐값에 던져 넣었던 나의 10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참 예의도 바르지. 5분 거리에 사시는 시아버지의 생신 날 이틀 뒤로 탈출의 날을 정하다니......
나름 효부스럽고 발칙한 날이었다. 누군가에겐 같이 살던 와이프가 희대의 빌런으로 기억될 치욕스러운 날이었을지도.
날이 참 차갑던 1월이 어느 날이었다.
우아하게 송중기와 송혜교의 방식처럼 깔끔하다는 조정 이혼 신청서를 접수하고 우아하지 못하게 대낮의 야반도주 꼴로 용달차 두 대에 지난 1년간 쌓아 온 나의 처절한 복수심을 욱여넣었다. 솔직히 이 하루만큼은 뒤통수 맞아 얼굴이 사색이 되어 어쩔 줄 모르는 그놈의 얼굴만 생각하며 얼마나 이 날만을 기다려왔는가.
그러기에 이 자식아. 1년간 네 몸만 나가라 양육권은 없다 재산분할도 없다 나한테 헛소리를 말았어야지.
아이를 볼모로 아이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엄마라 최대한 몸 낮춰 불화를 영혼 없는 웃음으로 포장하며 버텨오던 날들...... 이젠 내가 가엾어서 그 짓도 못하겠어서 선택한 것.
이.혼.이.었.다.
숨죽이며 참을 수밖에 없던 나에게 무자비했던 그놈을 친절한 금자 씨처럼 처단하는 듯한 날이었다.
새끼야. 꼬숩다. 그러니까 있을 때 잘해야지.
도박, 폭력, 외도도 아닌 말 그대로 성격차이의 이혼이지만, 그놈의 이혼사유...
성격차이가 아이만 생각하면 늘 51:49 이혼한다, 안 한다로 매일같이 꽃잎 따기 점치는 의식이라도 치르듯, 어느 날은 살만하다가 어떤 날은 피가 거꾸로 솟던 그런 파도타기 하던 나의 결혼 생활이었다.
점차 우리라는 테두리엔 아무 꿈도 미래도 없이, 눈 뜨면 내일 요단강 건널 할머니가 간절히 되고 싶을 정도로 나는 천천히 말라죽어가고 있었다.
남들이 보기엔 행복하고 단란해 보이던 한 가정.
누군가에겐 돈 걱정 하나 없이 젊은 나이에 다 가졌을 거라 보이던 쇼윈도 너머 파국을 치닫던 그 가정.
속은 시꺼멓게 곪은 빛깔 좋던 개살구로 살아온 나의 처절하게 우아했던 서래마을의 생활이 그렇게 마침표를 찍던 날이었다.
어떤 날은, 그래 너 죽을 때까지 기다려서 내가 너네 집 재산이라도 내 새끼 생각해 물려받는 날 칼 가는 심정으로 기다려볼까 했지만 그러기엔 내가 아직 너무 젊고 싱그러웠다.
잘 있어라. 나는 간다. 우리 이제 가정법원에서 만나자.
그렇게 그 날 만큼은 홀가분하게 나의 진흙탕 이혼의 폭죽을 터뜨린 날이었다.
2023년 1월 12일 오후 2시 40분.
그렇게 나의 새롭지만 두려운 삶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