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이혼일지
창 밖의 겨울 산과 자는 아들을 보며 쓰던 어떤 날의 메모....
창 밖의 시퍼런 겨울 산이 의지 되던 때가 있었다.
곁에서 자는 아들 보며 끄적인 그날의 메모를 다시 읽어봤다.
기존에 가진 나의 태생.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것도 아니어서 어떤 존재가 되고 싶었다.
갖고 싶었다. 내가 갖지 못한 다른 것을.
그것이 계급이든 욕망이든 그랬나 봐.
내가 완벽하지 않으니, 결핍으로 충만하니 결핍 많은 누군가를 찾아야 했던가.
내가 훌륭하지 않으니 내가 가치가 별로 없기에 그런 사람이 눈에 쏙 들어온 건가.
허영이었다.
나는 아들에게 행복을 제대로 찾는 방법을 알려줘야 한다.
나를 스스로 사랑할 수 있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바른 선택을, 자신을 위한 정당한 선택을 할 수 있게 길러야 한다.
행복한 권리를 나로부터 배울 수 있게 알려줘야 한다.
나는 내 지난 10년을 뼈저리게 후회하지만, 아들아. 너만큼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되려 너로 인해 나의 가치를 깨닫게 되어 고맙다. 감사하다.
너는 나를 지탱하는 힘이다.
역설적으로 버겁게 소몰이하듯 나를 몰아치는 힘이자 내가 살아갈 이유다.
남은 내 생의 이유는 너이다.
나는 여자도 아니고, 이젠 엄마로 사는 게 내 삶이다.
훨훨 날아가줘. 너는 기필코 자유로워라.
좋은 날이 올 거야. 그럴 거야.
스스로 인생 피곤하게 살지 말자.
지난 일에 자꾸 연민을 두지 말자. 지난 것은 지나간 대로.
과거에 얽매여 사는 건 너를 병들게 해
노랫말에서도 지난 것 그대로 두라고 하잖냐.
나는 지금 죽고 싶어도 꾸역꾸역 살게 하는 힘이 있어.
그게 너야.
내 곁에 있다가 훨훨 날아가라.
멀리멀리 혼자가 되어줘라. 우뚝 서라.
너와 나의 건강한 관계가 소망이다.
너로 든든함을 느낄 게 아니라 각자 우리 우뚝 서보자.
일곱 달이 지난 지금 그날의 메모를 다시 읽으니 처절했고, 불안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시간아 빨리 가라 하지만 그 춥던 날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더운 요즘
감히 신성한 싱글맘네 집에서 번식력 자랑하며 짝짓기 하는 하루살이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나의 요즘.
꽤 밝아졌다.
어두운 터널.
시간은 흐른다. 잘 걸어가고 있다.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