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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들의자 Sep 06. 2022

#11. 술꾼 회사 상무들 (초면엔?! 술 대결!!)

(직장 내)소시오패스가 만연한 시대, 고군분투 직장 생존기  Vol.2

이 글은 소시오패스 직장상사 밑에서 오늘도 온갖 고초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직장인 분들에게 드리는 위로와 공감의 글이 아닌, 제 스스로가 겪은 지옥 같은 직장생활에 대한 기록이자, 그들의 만행을 잊지 않고 그들과는 같은 길을 걷지 않겠다는 '타산지석의 사료'임을 밝힙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 등에 유사함을 느낀다면, 당신 상사도 소시오패스 입니다. 
**극 중 등장하는 인물/단체/사업/사연은 모두 허구입니다만, 일부 경험담에 기반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4월 초, 벚꽃이 피는 시즌이다. 날씨도 좋고 눈길 닿는 곳마다 꽃도 만개하는 계절이라, 으레 마음도 덩달아 들뜨는 게 당연한 계절이지만, 지금 우리 팀 구성원들은 아무런 감흥이 없다. 여의도에 근무하면서도 그 흔한 벚꽃 구경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노예처럼 야근 생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뜨기 전 출근해서 늦은 밤 달과 별을 보며 퇴근하는 생활의 연속이라, 광합성도 부족하고 이로 인해 생동하는 계절과는 맞지 않게 심리적 우울감이 극에 달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팀의 이러한 우울한 생활과는 달리 『사업부장-기획팀장 세트』는 날이 좋으니 매일매일 새로운 술자리를 만들어가며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오늘은 강남 이자카야, 내일은 상수동 막걸리집, 모레는 종로 와인바 등 술 종목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관대함과 유연함을 보이는 조 상무였다. 덩달아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이 팀장도 이 집, 저 집 따라다니며 맛있는 술과 안주를 맛보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꽃이 피는 계절에 술이 맛있지 않다면 그건 마음이 병들었다는 증거라는데, 요새는 잠들기 전 마시는 맥주 한 캔조차 그냥 쓰디쓴 걸 보면 분명 어딘가 망가져 가고 있는 게 분명했다.




 봄을 만끽하듯 서울 전역의 술집 탐방을 하던 조 상무가 오늘은 이상하게 건물 지하 일식집을 예약했다. 그는 항상 불편한 술자리, 싫은 사람과의 술자리는 지하 일식집으로 예약하고는 했다. 오늘의 술자리 또한 누군가 불편한 사람과의 자리이겠거니 추측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다른 계열사에서 전입 온 경영기획담당 임원과의 술자리가 잡혔다고 한다.   


4월 초 날씨 좋은 어느 날, 오후 6시 (지하 일식집)
"최 상무님, 처음 뵙는 자리인데 아직 안주가 나오기 전이지만 가볍게 한잔 하시지요. 저희 회사에서 첫인사는 '끝장 주'로 하는 게 예의입니다. 글라스로 한잔 가득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괜찮습니다, 조 상무님. 저도 어디 가서 술을 빼는 타입은 아니라서요."

 조 상무는 첫 대면부터 소주를 맥주 글라스에 가득 따른 '끝장 주'로 대접했다. 통신계열사에서 새로 전입 온 경영기획담당 최 상무도 첫 대면에서 질 수 없다는 듯 잔을 빼지 않았다. 두 술고래 사이에 낀 이 팀장까지 '끝장 주'를 받고 나자 그 둘은 주저 없이 원샷을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두 눈 휘둥그레 뜨고 지켜보던 이 팀장도 분위기를 깨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로 그 둘을 따라 원샷을 했다.  


"최 상무님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역시 술이 쎄시군요. 어떻게 한잔 더 하시겠습니까? 전 오늘 목이 좀 타는 거 같아 한잔 더 해야겠네요."

"좋습니다, 조 상무님. 저도 한잔 더 주세요. 가볍게 원샷하시지요."

 세 사람 모두 두 번째 잔까지 '끝장 주'가 채워지자, 주저 없이 원 샷을 했다. 그리고 10초 뒤, 이 팀장은 벌떡 일어나 부리나케 화장실로 사라졌다. 애초에 소주 반 병 주량의 이 팀장이 '끝장 주'를 2잔이나 원샷한다는 건 누가 봐도 오버페이스였다. 


"허허, 이 팀장도 참. 죄송합니다, 최 상무님. 제가 데리고 있는 사람이지만 술이 약해서요."

"하하, 괜찮습니다. 체질적으로 술이 약한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제가 한잔 따라 드려도 되겠습니까?"

 조 상무의 연이은 도발에 맞수를 둔 최 상무였다. 그렇게 세 번째 '끝장 주'가 채워질 무렵, 드디어 첫 안주인 모둠회가 테이블에 놓였다. 그리고 그게 원샷 신호가 된 듯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세 번째 잔을 원샷했다. 


"최 상무님, 어떻게 안주가 나왔으니 한잔 더 하시겠습니까?"

"좋지요, 오늘 안주도 좋고 술도 단 걸 보면 이 자리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허허."

 회 한점 먹고 두 사람은 다시 '끝장 주'를 주고받았다. 네 번째 잔까지 원샷을 한 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노려 볼 뿐이었다. 그리고 약 1분 뒤, 최 상무는 양해를 구하고는 자리를 떠나 화장실로 사라졌다. 자리에 남은 조 상무는 홀로 득의양양한 미소를 띠면서 사라져 가는 최 상무의 뒷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첫 술 대결은 조 상무의 승리로 끝이 났고, 이어진 2차 자리에서는 서로 선배님, 후배님 하며 얼싸안고 노래까지 부르는 광경을 회사의 여러 사람들이 목격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그날의 승전보를 최 상무는 모든 팀장급 이상 회의 때마다 자랑스레 떠들어댔다. '숫자 만지는 사람이 그렇게 술이 약해서야 쓰겠냐는 둥', '앞으로 우리 일 많이 도와주기로 했으니 편하게 예산 타오라는 둥', '회사에서 계급장 떼면 내가 술로 이기지 못할 사람은 없다는 둥' 그는 틈만 나면 맨 정신에도 자랑스레 무용담을 늘어놓곤 했다.




 술로 승자와 패자가 가려진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승자인 조 상무는 이후 많은 편의를 누리게 된다. 신규 유통 사업을 준비하며 발생하는 초기 투자성 자금들에 대해 견제해야 할 역할인 최 상무는 별다른 반대 없이 대부분의 투자 심의/결재 건을 승인해주었다. 그리고 큰 금액의 투자가 승인된 날이면 두 사람은 어김없이 함께 술자리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두 상무가 함께하는 자리라면, 이 팀장은 자연스레 자리를 피하곤 했다. 


 주량이 임원의 기본 덕목이라 외치던 조 상무는 매번 어떤 술자리에서건 본인이 얼마나 기본 덕목을 갖춘 임원인지를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술이 과한 다음날이면 본인이 생각하는 임원의 기본 덕목은 갖추었으나, 기본적인 인격은 파탄 난 사람임을 모든 구성원에게 몸소 보여주었다.    


 

이전 에피소드가 궁금하다면:https://brunch.co.kr/brunchbook/sociopath


이미지 출처:Photo by The Creativv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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