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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터뷰의 기쁨과 슬픔

by idle

책 출간을 앞두고 두려움이 밀려왔다.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읽게 된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졌다. 고민 끝에 편집자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 필명으로 출간하면 안 될까요?”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에세이는 작가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서 본명으로 나가는 것이 좋아요.” 그래, 내 이름은 요즘 흔하고, 유명한 연예인들도 많으니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위안했다. 하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케팅’이었다. 출간 일주일 전쯤, 편집자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작가님, 유튜브 인터뷰 괜찮으세요?”

“네, 유튜브요?”

“oooo 채널에 인터뷰 요청을 한번 넣어보려고 해서요.”

“저 얼굴 공개까지는 하고 싶지 않은데요.”

“저, 잠시 통화 가능하세요?”


그리고 이어진 긴 통화. 출판사 입장에서는 나에게 ‘투자’를 한 것이다. 에세이, 그것도 무명의 신인작가가 쓴 첫 에세이다. 마케팅을 위해서는 저자를 조금이라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건 이해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 유튜브 인터뷰 하나만큼은 꼭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책을 내면서 이상할 정도로 마케팅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내 이름이 찍힌 책이 나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뻤지, 많이 팔릴 거라는 생각도 기대도 없었다. 하루에도 수백 권의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신간이 서점 매대에서 누워있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몇 군데 서점을 제외하고는 책장 구석에 한 권 꽂혀있을 뿐이다. 이를 본 후 현실을 깨달았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나뿐 아니라 편집자님들 마케팅 담당자분들,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 내 이름이 찍힌 책 한 권이면 충분해 라고 생각할 일이 아니라, 저자라면 응당 ‘마케팅’에 협조를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출판사에서 꼭 성사시키고 싶어 하던, 그 채널에서는 거절 의사를 밝혀왔지만, 대신 다른 채널에서 연락이 왔다고 했다. 책 타깃으로 생각하고 있는 파이어족을 꿈꾸는 청년들이 많이 구독하는 채널이란다. 난 한 번도 내가 ‘파이어족’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은퇴를 결심하고 한참 후에야 우리와 같은 삶을 꿈꾸는 사람들을 미국에서는 ‘파이어족’이라고 부른다는 기사를 봤을 뿐이다. 우리는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아껴 쓰자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 다른 길이 보이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은퇴를 결심했다. 경제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투자 방법을 궁금해하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다행히 채널 담당자는 현실적인 방법으로 은퇴를 한 사람과 인터뷰를 원한다고 했다. 젊은 나이에 투자로 큰 성공을 이룬 것을 대다수가 비현실적으로 느끼기 때문에, 큰돈을 모으지 않고도 은퇴를 이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도 내가 얼마를 모으고 은퇴를 했는지 금액은 공개해야 한단다. 내가 무슨 공직자도 아니고.. 내 자산을 공개해야 한다니!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문제였다. 남편과 논의 끝에 우리의 현재 자산이 아닌 은퇴 목표 금액과 그렇게 정한 이유를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온라인 서점 예약판매가 이루어지던 날 인터뷰가 진행됐다. 16년 동안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한 말을 하면서 살아왔고, 우리가 충분히 고민하고 결정했던 이야기들이라 인터뷰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 인터뷰 후 5일째 되는 날 영상이 올라왔다. 그 채널은 구독자가 많지는 않지만, 머니투데이에서 운영하는 채널이라, 다음날 기사로도 공개가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도 별 생각이 없었다. 설마 몇 명이나 보겠어. 하지만……..


네이버, 조회수 75만… 악플 1,326개

다음, 조회수는 알 수 없지만 많이 본 기사 1위.. 악플 871개


대략 백만 명이 내 기사를 보고, 2000여 개의 악플을 달았다.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아래 다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된다.


파이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딩크족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외모 비하

유튜브 광고한다는 오해

국민연금을 주면 안 된다는 내용

난 유튜브를 운영하지 않는다.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다. 그동안 많은 돈을 세금으로 납부했고, 은퇴 후에도 세금과 국민연금은 계속 납부하고 있다. 아이가 없으면 그동안 내가 낸 국민연금도 받으면 안 된단 말인가! 인생에 정답은 없고, 모두가 원하는 삶은 조금씩 다르다. 왜 사람들은 조금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난을 퍼붓는 것일까. 연애 기사에만 댓글을 없앨게 아니라 이런 인터뷰 기사에도 댓글이 사라지면 좋겠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의 배설로 인해 한 사람이 받는 고통을 알까.


아무튼, 이렇게 고생을 해서 책 판매까지 연결이 되었을까? 그렇지는 않다. 그냥 배부르게 욕만 먹었다. 잠시 예스24 에세이 부분 순위 55위까지 올라가기는 했으나, 곧 조금씩 순위가 내려가더니 이제 네이버 ‘베스트셀러’ 빨간딱지도 사라졌다. 하지만 그 인터뷰가 다른 섭외로 이어져서 이후 몇 개의 인터뷰를 더 하긴 했다. 이 인터뷰들이 광고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각 매체들은 인터뷰이로 작가를 선호하고, 출판사는 작가를 알리길 원하니 서로를 위해 좋은 선택인 것이다.


어제는 머니투데이에서 인터뷰 출연료가 입금되었다. 잊고 싶은 기억이었는데, 입금된 돈을 보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돈으로 오늘 저녁은 남편이랑 맛있는 밥 한 끼 해야겠다.




책 표지에 ‘5년 만에 40대 조기 은퇴에 성공한, 금융맹 부부의 인생 리셋 프로젝트’라고 거창하게 쓰여있긴 하지만, ‘마흔 부부가 함께 은퇴합니다’는 은퇴자산 마련을 위한 재테크 정보를 풍부하게 담은 책은 아니다. 은퇴자금 계산 방법과 세금 이야기. 각종 연금 관련 정보를 얻을 수는 있지만, 투자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는 ‘경제적 여유’ 보다는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 은퇴를 결심했다. 이 책은 은퇴 결심 이후 불안을 극복한 방법이라던가,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준비했고,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에 대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출판사를 통해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 있어서 링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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