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이 울리자마자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나기 전 팔다리를 쭉 뻗으며 스트레칭을 한다. 일어나서는 곧장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하고 입을 헹군 후 찬물을 한잔 마신다. 그리고 요가와 명상을 마친 후 남편을 깨운다. 남편이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면 남아서 침대 위 이불을 정리한다. 나의 아침 루틴이다. 회사에 다닐 때나 은퇴한 지금도 비슷하다.
밥을 먹은 후 바로 설거지를 하고, 갈아입은 옷은 바로 옷걸이에 정리한다. 해야 할 일을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 그것은 나에게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늘 그래 왔으니까. 집에서 독립하기 전에는, 내가 씻고 나오면 엄마가 늘 침대를 정리해주었다. 자고 일어나 어지러워진 침대 위 이불을 보는 것이 낯설어서 계속하는 것일 뿐이다. 이불을 정리하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내가 하려고 했는데, 네가 먼저 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네." 하며 아쉬움을 연기한다. 대신 그와 비슷한 무게의 다른 집안일을 처리한다. 함께 음식을 먹을 때면, 남편은 먹을 양의 개수를 정확히 세서 각자의 접시에 분배한다. "네가 내 것까지 다 뺏어먹을까 봐 그러는 거야."라고 말은 하지만 본인이 더 먹을까 봐, 내가 먹을 것을 챙겨주는 거라는 걸 안다. 서로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각자의 몫을 챙겨주는 것. 이런 성향은 둘 다 막내로 자라왔기 때문이다.
퇴사 후 내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은 없지만, 멍하니 있는 건 왠지 죄책감이 들어서 끊임없이 무언가 할 일을 찾고는 했다. 몸에 밴 직장인 모드. 퇴사 1년이 훌쩍 넘어서야 이 마음에서 해방되었다. 요즘은 몇 시간씩 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하루 종일 책만 읽기도 한다. 게을게을 모드 ON 상태다. 게으르게 보내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이 상태가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나 오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서 너무 행복해"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한 동안은 남편도 나의 이런 게을게을 모드를 칭찬해주었는데, 요즘 들어 구박하기 시작했다. 나 먹여 살린다고 결혼해놓고서는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고, 얼른 글을 쓰라고 말이다.
은퇴를 하면서 생각했다. 16년간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16년 간 회사 생활을 했으니 됐다고. 돈을 벌기 위해 투자한 시간만큼은 했으니 말이다. 첫 책을 출간하면서도 생각했다. 앞으로 딱 16년만 해보자고. 어릴 때 품었던 꿈이었는데, 노력조차 하지 않았으니. 내가 노력한다면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글을 쓴다. 아무튼 브런치가 아니라도 매일 어디선가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