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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dle Apr 06. 2023

이슬람과 가톨릭과 정교회 사이

 그리 밝지 않은 가로등이 드문드문 켜진 거리를 지났다. 멀리 산 위에는 오렌지빛 조명이 거대한 십자가를 비추고 있다. 우르릉 우르릉 소리를 내며 흐르는 네레트바강 건너편에는 뾰족하게 솟은 미나렛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슬람 사원이다. 사원을 오른편으로 돌아 조금 더 걸어가니 호스트가 알려주었던 건물의 이름이 보였다. Happy Apartment. 


 에어비앤비 숙소는 사진으로 봤던 것과 비슷했다. 사진으로는 알 수 없는 거리의 소음, 화장실에서 올라오는 퀴퀴한 냄새, 잘 작동하지 않는 난방기 리모컨. 이런 것들이 조금 거슬리기는 했지만 괜찮았다. 침실이 분리되어 있고, 작은 거실과 주방이 있는 숙소를 하루 4만 원 정도에 구했으니. 이 정도면 행복하지. 


 여행지의 첫날은 늘 동네 산책으로 시작한다. 해가 진 이후에 도착했으니, 동네가 어떤 모습인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산책할 만한 공원이 있는지,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마트와 카페는 있는지 봐두어야 했다. 걷다가 호기심이 생기는 골목이 있으면 돌고 돌아서 아주 긴 산책을 해야지.


 우리는 집을 나섰다. 우와! 눈앞에 거대한 하얀 코끼리 같은 산이 서 있었다. 우와! 우와! 시야가 얼마나 좋은 거야.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거친 바위의 표면과 그 틈에서 자라고 있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보였다. 이런 곳에서 살면 시력이 좋아질 것만 같다.


 모스타르의 거리는 내전 때 생긴 총알 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는 채였다. 곳곳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묘비에는 대부분 1992~1995 사이의 숫자가 쓰여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1950년 6.25 전쟁이 있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서 그렇지 우리에게도 익숙한 상처였다. 70년쯤 지나면 이곳도 괜찮아 질까. 우리도 과거에는 이런 모습이었겠지.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직 내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시에는 총알 자국을 가리려는 듯 화려한 벽화가 여기저기 그려져 있었다.

총알 자국과 벽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오랫동안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이곳 모스타르는 오스만 시대에 지어진 마을과 스타리 모스트로 불리는 다리로 알려졌다. 1556년에 지어진 다리는 내전 때 파괴되었으나 오랜 공사 끝에 2008년 복원되었다. 다리를 복원하는데, 튀르키예,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등 여러 나라의 지원이 있었다는 안내가 쓰여있었다.


 같은 인종이지만 이슬람을 믿는 보스냐크,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이제는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아잔 소리(이슬람에서 신도들에게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고, 이어서 교회의 종소리가 울린다. 히잡을 쓰건, 쓰지 않건 사람들은 함께 앉아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스타리 모스트는 이제 국제적인 협력과 다민족, 다종교의 공존, 화해의 상징이 되었고, 그 상징성 때문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지정되었다고 한다.

 

모스크와 정교회 건물이 한눈에 보인다.

 여행을 오래 다니다 보면, 어디서 본 듯한 성당, 어디서 본 듯 한 중세시대의 성. 어디서 본 듯한 로마시대 유적들 하며 시큰둥해질 때가 있다. 종교와 문화의 모자이크로 불리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그런 면에서 색달랐다. 한 나라에 담겨있는 여러 가지 문화. 그 대표적인 상징이 수도인 사라예보의 중심가 사라치 거리에 있는 ‘Sarajevo Meeting of Cultures’가 아닐까 싶다. 이 선을 기준으로 동쪽에는 오스만식 건물이,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시대에 지어진 건물들이 서있다. 전혀 다른 문화가 고작 선 하나를 기준으로 나뉘는 것이 신기했다.


 우연히 세르비아 정교회 예배를 본 적이 있다. 나지막이 달려있는 커다란 둥근 조명이 이슬람 사원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교회 안은 의자하나 없이 텅 비어 있어 의아했는데,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며 의문이 풀렸다. 예배 중간중간 사람들이 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의자가 있으면 불편하지. 이슬람 사원도 카펫만 깔려 있었다. 이것도 어쩌면 두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이 아닐까. (그냥 짐작이다. 확실히 알고 싶어 검색해 봤으나 찾을 수 없었다.)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사이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한 나라 한 민족 국가가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식의 교육을 받았었다. 학생의 미덕은 튀지 않음이고, 모두가 함께 어우러짐을 강조하던 시절이었다. 유행하는 옷차림을 따라 입고, 맛있다는 음식을 찾아 먹고, 좋다는 학교나 회사에 들어가는 일을 성공으로 여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어 갔다. 굳이 모두가 똑같이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문화가 이렇게 다 다른데. 이런데.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과도한 동질성의 강조가 끔찍한 전쟁이나 인종청소로 이어지는 결말을 역사는 보여준다. 과거 보스니아의 내전이 그렇게 일어났고, 전쟁이 끝난 이후에야 서로 공존하면서 평화를 찾았다. 같으면 옳고, 다르면 틀리다는 생각은 그렇게 위험해질 수도 있는 거다. 이런, 너무 깊게 생각했나. 아무튼, 지금은 평화의 시대니까. 우리는 행복하다.   



이번 매거진은 민현​​​​ 님과 함께 꾸려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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