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군민으로 30년 넘게 살았다. 천전리나 신화리는 큰 맘을 먹지 않아도 가 볼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그 풍경들과 함께 한 잠깐의 여유와 평화로, 일상의 촘촘함과 다급함을 견딘다.
각석에 새겨진 신라 사부지 갈문왕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는 원문을 해석할 능력이 없어도, 천 년이 지나 읽어도 애틋하다. 초록이 무성하던 날, 문득, 마음이 동해 달려갔는데 계곡 저 편으로 날아가던 나비 한 마리를 만났다. 그날도 저 나비가 저리 날아서 그들의 눈길이 그 나비를 쫓았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나비를 바라보는 눈길이 그윽해지던 순간이었다.
KTX역 근처에 있는 팽나무는 신화리 도호마을의 할배 당산나무로 신라 시대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는 나무다. 그 근처 스타벅스가 있다. 우리는 그곳을 남의 동네 별다방이라 부른다. 가끔 쿠폰이 생기면 마실 가듯 그곳에 가서 앉았다 온다. 작년 가을 스타벅스에 갔다가 커피 한 잔을 들고 매장을 벗어나 저 나무 곁에 앉아 놀았다. 어떤 일에 매여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하던 시기였다. 사람이든 나무든 그만이 가진 기운이 있다고 믿는다. 그날 나무가 내게 준 것은 충만함과 초연함이었다. 나무처럼, 무언가를 나누고 싶던 가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