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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 달님은 제 기분에 따라 모양을 달리한다. (2)

by 다운

홀로 대기실에 앉아있는 한 소녀. 천장에 맞닿을 듯 붙어있는 작은 TV에는 생방송으로 중계 중인 올림픽 현장이 비치고 있다. 대기실 문이 열리면, 비닐 소재의 옷을 입은 감독이 손짓하며 소녀를 부른다. 무릎에 가지런히 모아져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며, 주먹이 꽉 쥐어진다. 고개를 끄덕이고 감독을 따라 문 밖으로 나간다. TV는 여전히 현장을 비추고 있다.

바깥으로 발걸음을 디디면, 눈부신 햇살이 소녀를 맞이한다. TV에서 어렴풋이 보았던 풍경이 소녀의 눈앞에 펼쳐졌다. 대열을 갖추고 서 있는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소녀를 향해 있었다. 소녀는 여전히 힘이 잔뜩 들어간 주먹을 풀지 않은 채, 뚜벅뚜벅 자신의 위치를 향해 걸어갔다.

수많은 카메라, 사람들의 눈빛, 그리고 소녀를 바라보는, 낯선 파란색의 눈을 가진 경쟁자.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에 소녀는 더욱 무거워진 긴장감을 끌어안았다. 어젯밤 소녀는 달님에게 빌었다. 아무도 내 긴장을 눈치채지 않게 해 주세요. 긴장으로 실수한 내 모습에 돌팔매질을 맞지 않게 해 주세요.

소녀는 자신의 활을 들었다. 자신의 힘으로 당겨진 활시위는 마치, 소녀가 보았던 반쪽짜리 달님인 것만 같았다. 소녀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직접 소녀의 품에 뛰어들어 긴장감을 가벼이 만들어주었다. 반짝이는 활시위를 보며 미소를 지은 소녀는 줄을 놓았다.


"하아." 한겨울의 밤, 집 앞에 쪼그려 앉은 아이. 온기가 남은 입 안에서 자그마한 김이 뿜어져 나왔다. 세차게 온몸을 떨고 있는 아이의 눈동자는 저 멀리 내리막길 끄트머리를 향해 있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오는 엄마가 짠 하고 등장할 곳이었다.

미혼모인 아이의 엄마는 작은 집에서라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 새벽 일찍부터 집을 나섰고,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공장에서 단순 노동을 하며, 아이 외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다. 아이가 자란 햇수만큼 쌓인 피로로 방심한 찰나의 순간들은 엄마의 손에 그믐달 같은 자잘한 상처를 남겼다.

엄마가 집에 나설 때마다, 퇴근 후 집으로 들어올 때마다, 아이는 잠에서 깨어났다. 서둘러 밖으로 나서는 엄마의 뒤통수, 밤늦게 들어와 잠드는 엄마의 등 외에 다른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아이의 마음에는 슬픔이 사무쳤다. 그래서 아이는 지금, 엄마의 앞모습을 보기 위해 대문 앞에 앉아 찬바람으로 잠을 이겨내고 있다.

아이는 자신의 입에서 뿜어져 나가는 옅은 김을 올려다보았다. 엄마의 손에 새겨진 상처를 닮은 그믐달이 밤하늘을 약하게 비추고 있었다. 아이는 새빨개진 손끝을 뻗어 그믐달을 쥐었다. 온기가 거의 사라진 자신의 품 안으로 그 손을 쑥 넣었다.


모두가 같은 달님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 달님에는 많은 이야기가, 많은 기분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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