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음악을 내 삶에 깔면, 내 무드가 달라진다."
삶의 동기부여를 얻고 싶을 때나, 책 읽는 행위를 소홀히 할 때, 나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싶을 때마다 즐겨보던 자기 계발 유튜버의 한마디이다.
스마트폰에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거리는 유선 이어폰, 아슬해 보이지만 귀에 잘 안착해 있는 무선 이어폰. 어떤 형태이든 상관없다. 그저 언젠가 카페에서 들은 노래, 지나가던 길거리 속 문이 열린 매장에서 흘러나오던 노래, 친구가 노래방에서 맛있게 부르던 노래들을 저장해 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곧이곧대로 내 귀에 꽂아주기만 하면 된다.
일상에, 삶에 지친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음악만이 우리나라에서 허락된 유일한 마약.' 즐거움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일상, 목숨을 걸고 불법 마약을 유통받을 수 없기에, 우리는 이어폰으로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음악으로 활기를 띄워본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무슨 노래 듣고 계세요?'라고 묻는다면, 모두가 다른 답변을 내놓는다. 차분한 일상을 바라는 사람은 잔잔한 발라드 한 곡을, 신나고 활기찬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K-POP 신곡을, 순간의 일탈을 바라는 사람은 웅장한 비트가 깔리는 외국 힙합 음악을 듣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스타일과 저 스타일이 뒤죽박죽 섞인 리스트를 듣고 있을 수도 있다.
아무튼 자신의 선호도가 가득 담긴 플레이리스트를 듣다 보면, 몸 안에서는 어느새 감각 하나가 꿈틀거린다. 내 몸 안에 지렁이 한 마리가 들어왔나,라는 착각을 할 정도로 간질거리는 감각이 심장에서 튀어나와 팔다리, 머리와 허리로 전도된다. 그 감각에 취한 채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리듬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리고 움찔한다. 내가 설마 길을 걸으면서 춤과 유사한 몸짓이라도 뱉어버린 것은 아닐까. 괜한 민망함에 달아오른 얼굴의 온도를 식히며 빠른 발걸음으로 그 거리를 떠났다. 하지만 그 순간 거리를 걷던 사람들도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에 빠져 힘겹고 우울한 삶을 위로받고 있었다.
사무직은 업무의 추진력을 얻기 위해 이어폰 한쪽을 귀에 꽂은 채 적당히 흥겨운 노래를 듣는다. 몸을 쓰는 현장직은 파워를 얻기 위해 빠른 비트의 음악을 듣는다. 글을 쓰는 작가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작품 속 무드에 어울리는 팝송을 듣는다.
그렇게 모두는 자신의 삶을 위로받기 위해, 자신의 일상에 활기를 위해, 자신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그들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