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ㅂ. 아버지라는 빛이 있으라.

by 다운

광안리 밤바다를 거닐던 평범한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좋아하던 그의 노래를 듣고 싶었던 날이기도 했다.

바닷길 끝에서 끝을 걸으며, 짧은 건널목의 신호를 기다렸다. 한겨울의 추운 바닷바람을 느끼며, 이미 알고 있지만 재차 확인하고 싶은 하얀 입김을 뿜어내며, 그 입김이 하늘 위로 번지는 것을 올려다보았다. 눈높이보다 한참 위에서 반짝이는 동전노래방의 조명이 뿌옇게 사라지는 입김 뒤로 아른거렸다.


이끌리듯 그곳으로 올라갔다. 날이 추워서였는지, 주말에만 느낄 수 있는 흥겨움의 연장선이었는지, 이미 적지 않은 인파가 좁은 동전노래방의 복도에 줄을 길게 늘어서고 있었다. 광안대교를 든든한 뒷배로 둔 풍경을 온전히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창가쪽 방을 기대하며 10분 정도를 기다렸다. 내 기대가 담긴 소곤거림을 들어준 것인지, 그저 우연인 것인지. 해변가와 가장 가까운 창가쪽 방을 배정받았다. 잔잔한 파도처럼 평범히 흘러가던 날에 우연이라는 이름의 울렁임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대교의 낮은 스트레스와 소음을 낳는 출근길에 불과하지만, 해가 지고 밤이 오면 해변가를 거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순간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기억을 안겨주는, 아주 낭만적인 요소가 되곤 했다. 그 풍경과 함께 하는 그와 나의 노래를, 기억을, 낭만을 두 눈과 앨범에 담아내었다.


그리고 9시가 되었다. 모래와 먼지 알갱이가 바람에 휘날리는 바닥에서 자신의 차례를 얌전히 기다리던 녀석들이 일제히 불을 켜고, 줄을 맞추며 일어났다. 그들은 프로그래밍된 대로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 일사불란하게 광안리 바다의 공중으로 주저없이 날아갔다. 그리고 여러 형태의 사랑을 표현해냈다. 누군가의 프로포즈 메세지가 담긴 문구와 사랑스러운 연인. 친구의 우정을 온전히 품은 메세지와 맞잡은 두 손. 부모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의 말과 웃고 있는 네 명의 가족.


가족의 아버지로 보이는 어른 남자의 그림이, 그 얼굴에 담긴 미소가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모습도, 빛을 받아 반짝이는 바다의 일렁임도, 그것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환호성도, 내 옆에서 노래를 부르는 그의 목소리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삼아 반짝이는 아버지의 얼굴이, 이제는 내 곁에 없는 아빠의 모습과 겹쳐보였다.


속에서 울렁거리는 뜨거운 느낌과 촉촉해지는 눈가를 집어삼키려 숨을 참았다.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뿌옇게 번져버린 시야에 아빠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귀에 익어버린 그의 노랫소리가 그 순간만큼은 슬픔을 꽉 끌어안은 채 내 귓가에 들어왔다. 다독임과 위로를 받을수록 슬픔이 더욱 북받칠 것을 알기에, 창가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의 노래가 끝나길 기다렸다. 그 슬픔이 자연스레 지나가길 기다렸다.


잔잔한 파도처럼 평범히 흘러갈 줄 알았던 날. 그 빛들은 유성이 되어 내 마음의 파도에, 눈물을 가두어놓은 댐에 떨어져 큰 물결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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