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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아이와 어른

by 다운

아이는 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어른은 아이로 돌아가고 싶었다.


학교 미술시간, 자신의 꿈을 새하얀 도화지에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 꿈은 뭘까? 난 뭐가 되고 싶을까? 난 무엇을 좋아할까? 머릿속에는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TV 코앞에 앉아 즐겨 보는 애니메이션, 도서관 구석에서 몰래 숨겨 읽던 만화책, 영화관의 큰 스크린으로 보았던 만화 영화들.

아, 난 만화를 좋아하는구나. 그럼 나는 커서 만화가가 되어야지!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아이의 꿈은 여전히 만화가였다. 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엄마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공부나 하라며 핀잔을 주었다. 학교 수업시간, 노트에 낙서를 하고 있으면 선생님이 정신 차리라며 노트를 빼앗아갔다. 주변의 어른들이 자신의 꿈을 깎아먹을 때마다 아이는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가와의 팬미팅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만화가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꿈을 단단히 했다.


미술 대학을 졸업한 아이는 이제 사회에서 1인분을 해야 하는 어른이 되었다. 어른은 생각했다. 내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뭐지? 사회로 나가려면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떤 능력을 길러야 하지? 어떤 스펙을 쌓아야 하지? 당장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닥치는 대로 정보를 긁어모아 취업을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필수 자격증과 점수를 얻으려 아등바등했다. 간신히 스펙을 맞추고, 줄줄이 나열된 이름 모를 기업들에 이력서를 넣었다.


8할의 서류 전형에서 떨어지고, 2할의 기회를 간신히 붙잡았다. 어른은 초조한 마음을 붙들고 면접을 준비했다. 면접장에서 와들와들 떨고 있는 어른에게, 면접관이 물었다. '미술을 전공했던데, 어떤 이유인가요?' 어른은 생각했다. 어릴 적, 그토록 좋아하던 만화를 가까이서 그리고 자주 즐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파생된 만화가라는 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하지만 이런 대답은 질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음을 빠르게 깨닫고, 어영부영 대답을 뱉어냈다.


어른은 2할의 기회마저 놓쳐버린 것 같아 절망에 빠졌다. 과거 아이였던 자신을 후회했다. 왜 그런 이유로 만화가가 되겠다고 설쳤는지. 부모님의 잔소리, 선생님의 꾸중을 무시했는지. 성공한 만화가의 빛나는 모습에 홀려버렸는지. 어른은 생각했다. 아이로 돌아가고 싶다고. 다시 아이가 된다면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 비롯된 꿈 따위는 꾸지 않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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