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위에는 다양한 소리가 존재한다. 그 소리는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를 가져다준다. 위험을 알려주는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 피폐하고도 지루한 삶 속 한 순간의 흥겨움을 안겨주는 음악 소리,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의 대화 소리, 언젠가 어디에선가는 도움이 될 교수님의 말소리, 드라마 속 흥미진진함이 오가는 TV 소리, 자리를 뜨려는 카페에서 귓가를 간지럽히는 커플의 사랑싸움 소리.
대부분의 소리는 어디에선가 긍정 회로를 타고 필터링이 되는지, 나를 위한 소리로 귓가에 흘러들어온다.
하지만 나를 위한답시고, 내게 빨리 그것을 전해줘야 한다는 식으로, 회로에서 벗어나 직설적으로 내게 굴러들어 오는 소리가 있다.
첫 번째, 주변 소리로 인한 무선 이어폰의 음량 조절 기능.
이따금씩 길을 걷다 보면 대형차나 버스가 지나가는 소리에, 적당히 나에게 맞도록 조절되어 있던 음량이 훅 하고 커지는 현상을 겪은 적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고막에 꽂히는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 온몸이 곤두선 적 또한 있을 것이다. 제 딴에는 제 주인이 듣고 있는 것을 외부 소음으로부터 방해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친절한 기능이었을 테지만. 나에게는 그저 고막과 신경에게 주어지는 고통의 한 순간이었다.
두 번째, 기꺼이 뒷담화의 전달책이 되어주는 친구의 말.
언젠가부터 나를 대하는 태도가 차갑게 느껴지던 사람이 있었다. 그저 내 착각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다가가도 보고 넌지시 이유를 물어보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차갑다는 느낌뿐이었다. 결국 내 사람이 아니었다는 생각과 함께 쿨하게 인연의 끈을 놓았다. 그것으로 되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와도 그 사람과도 친분이 있던 지인이 있었다. 어느 날, 이미 내 손을 떠나 날아가던 인연의 끈을 굳이 굳이 쫓아갔는지, 그것을 손에 쥔 채 물었다. '걔가 너 안 좋게 이야기하고 다닌다던데. 알고 있어?' 그 끈을 놓아버린지가 언젠데, 내가 알 리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구나.' 손을 펼쳐 풀이 죽은 끈을 바라보며 지인은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그 한숨을 빤히 바라보다 물었다.
"그러면 너는? 걔가 하는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는데?"
지인은 당황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끈은 여전히 손바닥에 놓여있었고, 양쪽 끝이 손바닥에서 벗어나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다. 이미 제 힘을 잃은 주제에 멋대로 진자운동을 하는 것이 신경 쓰여, 입바람을 불어 그것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용기 내어 내뱉은 말은, 아쉽게도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머릿속 소음으로 남아 내 안을 헤집어놓았다. 내 손으로, 입김으로 버렸던 끈은 또다시 내게 돌아와 진자운동을 일으켰다.
그렇게 나를 위한답시고 제 소리를 크게 내는 것은 내게 혼란을 주었다. 무선 이어폰의 음량 조절 기능이야, 블루투스로 연결된 휴대폰으로 해제를 하면 그만이다. 구태여 뒷담화를 전하는 지인의 이야기도, 지인은 그 이야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 이야기를 믿으면 어떡하나, 나를 차갑게 대하던 그래서 떠나보냈던 그 사람은 무슨 연유로 뒷담화를 전해주었을까, 라는 생각도 꺼버리면 그만이다.
나를 위한답시고 제 소리를 크게 내어 나를 해하는 것은, 내 고막 속 필터를 통해 소음으로 간주해 버리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