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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한솔 Nov 14. 2023

생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

-네 그렇게 하시죠^^ 다 가능합니다!


전공의 트레이닝을 받았던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은 항상 지옥처럼 힘들었지만, 또 항상 재미있었다.  그냥 단순한 경환질환 환자들 보는 것 말고, 중증질환의 환자, 심정지 환자, 심정지 이후 자발순환회복되어 긴 시간 케어가 필요한 환자들 보는 게 너무 재미 있었다.


권역응급센터인 만큼, 각양각색의 환자들이 매일 누가 더 재미 있는 환자인지 대결이라도 하는 것처럼 몰려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환자 혹은 보호자에게 문진하고 생체활력지수를 보며 예후를 예측한다.  초 응급상황에서의 술기들을 배우는 것은 물론, 필요한 오더를 넣으면서 검사 결과가 나옴에 따라 달라지는 치료법과 타과와의 의견조율을 통해 배우는 것이 너무도 재미있었던 것 같다. 


모니터에 보이는 갑작스런 심전도의 변화, 뚝뚝 떨어지는 혈압과 산소포화도를 보며 윗년차에게 혼나고, 또 윗년차가 되어 아랫년차를 혼낼때 괴롭기도 하고 즐겁기도 했다. 


왜 그렇게 멍청하고 대충 환자를 볼까 자괴감에 사로잡혔던 아랫년차 때라면, 반대의 상황이 되어 상급년차가 되어 아랫년차를 혼낼 때에는 되게 엄하게 했던 것 같다. 신나게 털려야 뇌리에 박힐테고 그래야 다음에 똑같은 상황에 마주쳤을때에 실수를 안할테고, 그래야 또 그 의국 후배가 상급년차가 되었을 때에 아랫년차를 교육 할 수 있을 거라 확신 했기에, 가르쳐 준 것을 뚝딱뚝딱 해내던 아랫년차 후배들을 보면 흐뭇한 미소를 지을때도 있었다. 



전쟁을 겪은 부대원이 어떨 때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처럼, 한달에 스무번 이상 씩 마주치는 후배들도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경환을 볼 때에는 딱히 혼나고 혼낼 것도 없다. 경증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중증이었던 환자, 혹은 애초에 중환으로 분류된 환자들이 우리에게는 스승님 그 자체였다. 이 환자분들 덕분에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응급의학 지식을 쌓게 되었다. 




막상 대학을 떠나 로컬, 그것도 서울과 한참 떨어진 지방에서 근무를 하다보니 서울과 다른 점이 많다. 이대목동병원을 중심으로 반경  10km 내에는 수개의 응급실이 존재 하였지만, 이곳은 야간에는 양양 고성 인제 모두 응급실이 없다. 유일하게 열려 있는 곳이 여기 속초 의료원이다. 속초에 또 하나의 응급실이 있지만, 무슨 병원인지 모르게 중환 안받고, 소아 안받고, 발열 환자 안받고 ... 여튼 이상한 병원이 하나 있는 것은 유명무실하다고 봐도 되겠다.


응급실을 찾는 절대숫자는 서울보다 훨씬 적지만, 중환 비율은 더 높은 것 같다. 병을 갖고 버티고 버티다 안좋아질대로 안좋아진 환자들이 많이 오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절대 숫자가 적기 때문에  서울에서의 중환 숫자보다는 훨씬 적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전공의 때 경험한 '재미와 흥미'는 많이 줄어 들었다. 


문제는 '경환'이다.




우리아이가 10분전부터 배가 아파요, 3시간전부터 열이 나요, 손가락을 칼에 베어 찢어졌어요 등의 환자들이 대다수이다. 응급의학과라는 학문상 중환/경환 가리지 않고 모든 환자를 일차적으로 처치할수 있게끔 공부하고 트레이닝 받지만, 많은 의료진이 24시간 불을켠채 스탠바이 하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경환을 받기 위함이 아니다.(다소 헷갈릴수 있을테니 응급의학과 의사가 구별하는 중환, 경환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지금 적절한 검사와 처치를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한 환자라고 보면 된다.


경환은 1차의료기관이 문을 연 날이면 의원급에서 진료를 봐도 되고, 밤 혹은 새벽이라면  다음날 외래에 가서 진료를 봐도 되는 정도이다. 우리는 이들의 진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법이 명문화 되어 있지만 현실적으로 진료를 거부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진료를 거부하는 순간 그 ‘경환’들의 보건소,  청와대 신문고,보건복지부, 경찰 등등의 온갖 공공기관을 통한 민원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깟 경환 한명 때문에 수 일을 망칠순 없기 때문이다.


경환이 반복적으로 오게 되면 굉장한 회의감과 피로감이 밀려온다. 


‘내가 고작 이런 환자 때문에 밤을 새고 있어야 하고, 저들은 값싼 진료비 내며 보험청구하겠다고 소견서 써달라고 하는 이 지독한 시스템의 문제를 모두 다 감내해야 하는가.’ 


자조감이 밀려올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래,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곳은 ‘응급실’이 아닌 365일 24시간 열려있는 의원이다. 그 중에 중환이 한명씩 끼워져 오는 곳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24시간 근무를 서보니 사람이 참 영악한게 마음이 편해지더라. 물론 말도안되게 후방추돌 슬쩍 접촉사고 났는데 입원시켜달라고 4명의 가족이 우르르 접수해서 보험금 타내고 합의금 타내려는 모습을 보면 ‘욱’할때가 있지만 그래도 최근은 이 ‘생각의 전환’을 통해  근무때의 마음속 불편함 정도는 꽤 많이 나아진 것 같다.

‘그래 저들도 오죽 아프니까 이 시간에 왔겠나…잘해주자’

‘그래 갈곳도 없어서 온건데 일반인 입장에선 얼마나 걱정되겠어 환자가 하루 100명오는 것도 아닌데 봐주자..’





이 생각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문제, 개선되지 않는 응급실의 상황을 자조적으로 바라보며 욕 내뱉을텐데, 어차피 그래도 바뀌는 건 하나도 없을것이라면 내 마음이라도 편한게 낫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실제로 또 좋기도 하더라.


세상사가 너무 올바르지 않는것 투성이지만, 그 세상에 적응하는 내가 싫지만 어쩌겠나 나라도 행복하게 살아야지.


조금 있다 또 한명의 환자가 응급실을 통해  들어온다.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어 우리애가 오늘 아침부터 열나는데 독감검사하러 왔어요”



“네 그렇게 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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