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나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다. 한 번은 슈퍼맨의 영화를 보고 나도 그와 같이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람에 펄럭이는 슈퍼맨의 망토가 그를 날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망토를 구하기 위해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구석에 엄마가 무언가를 감싸 놓은 자줏빛 보자기가 보였다. 손으로 보자기를 들고 나오려고 했지만 꽤 무거웠다. 이내 보자기가 감싼 물건이 좌우로 흔들거리더니 쓰러졌다. 보자기 끝을 잡고 마루로 끌고 나왔다. 나는 조그마한 손을 사용해 매듭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너무 세게 묶어놓은 터라 쉽게 풀 수 없었다. 젓가락을 가져와 매듭 사이로 집어넣어도 보고 숟가락을 사용해 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고 보자기를 잡고 마루 끝으로 가져왔다. 예전에 나의 집은 한옥이었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1970년대만 하더라도 한옥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방문 앞에 마루가 있었고 마루 밑에 신발이 있었다. 신발이 놓여 있는 곳은 대부분 돌로 되어있었다. 내가 보자기를 잡고 마루 끝으로 가져간 것도 바로 이 이유에서였다. 나는 힘차게 손으로 보자기를 밀었다. 순간 꽤 둔탁한 소리가 나며 보자기 사이로 무언가 흘렀다. 정확히 그 당시 그것이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보자기를 두른 뒤 온몸이 끈적한 것으로 보아 꿀이나 조청 같았다. 팽팽했던 보자기가 힘을 잃은 듯 느슨해졌다. 나는 마루 밑 돌에 걸터앉자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보자기 밑 돌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한참을 실랑이을 한 끝에 매듭이 풀어졌고 그 안에는 도자기 조각들과 끈적한 액체가 뒤엉켜 있었고 용암이 흐르듯 천천히 흘러내렸다. 나는 양쪽 보자기 끝을 잡고 힘차게 일어섰다. 도자기 조각들이 돌과 부딪히면서 여러 소리가 들렸다.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하늘을 날 수 있는 보자기를 얻어서 좋았다. TV에서 보던 슈퍼맨의 망토를 지금 내가 가졌다는 만족감과 그와 같이 날 수 있다는 설레임이었다. 끈적거린 손으로 양쪽 보자기 끝을 잡고 목에 둘렀다. 그리고 매듭을 만들어 목에서 보자기가 떨어질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 동네에 제법 큰 바위가 있었는데 , 날기 위해서는 높은 데서 뛰어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줏빛 보자기를 두른 체 신이 나서 바위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달려가는 내 뒤로 보자기는 펄럭이며 빨리 날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바위 위로 달렸던 터라 가뿐 숨을 몰아쉬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내 몸과 날개를 받쳐주었다.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바위 위에서 뛰어내렸다. 새들처럼 날아 엄마에게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내 바람과 달리 보자기는 내 몸을 하늘로 데려가 주지 않았다. 이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에 떨어졌다. 머리가 울렸다. 눈앞이 흐려지더니 머리 뒤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보였다. 피가 나자 덜컥 겁이 났다.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아파서 나온 눈물이 아니었다. 슈퍼맨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흘린 눈물이었다. 나는 피 묻은 보자기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어릴 적 나의 바람은 상처만 남기고 사라졌다. 가끔씩 내 뒤통수에 생긴 상처를 만질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바위에서 희망차게 뛰어내렸을 때의 호기심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편한 것만 찾다 보니 사라졌다. 어느덧 내 나이 40 후반에 들어섰다. 어릴 적에 아버지는 내가 하는 일이 성이 안찰 때마다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네 나이였을 때 산에 가서 나무를 지고 땔감을 나르고 했어".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지금 세대가 바뀌었어요". 수시로 듣는 그 말이 어릴 적에는 너무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자신이 열심히 살았다고 말한 건 아니었을까? 어느덧 그때의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보니 나도 열심히 살아온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호기심을 잃어버린 자부심은 나에게 공허함을 안겨주었다. 열심히 살아도 마음 한편에는 늘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부자든 가난하든 삶은 다 똑같다는 말에 공감한다고 말하고 위안을 삼았다. 현실에 안주하고 내가 가진 것에 빼앗기거나 없어지지 않길 바랬다. 누군가 내 영역에 침범하거나 상처를 낸다면 선의로 다가온 사람이더라도 멸시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내 청춘인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 중반을 보냈다.
40대 중반이 들어서면서 호기심은 대부분 사라졌다. 내 미래의 모습보다 과거의 모습에서 안락함을 찾았다. "예전이 좋았어" "올해가 작년보다 매출이 시원치 않아" "작년에는 좀 더 쌌었는데" 라며 과거에서 현재의 위안을 삼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열심히 산 것에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찾아온 물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 물음은 그때에만 온 것은 아니었다. 20대에도, 30대에도 왔었고 40대에도 왔었다. 하지만 그때 물음의 해답은 '사람 사는 게 똑같지, 별거겠어"라는 식으로 애써 넘기곤 했다. 하지만 같은 물음에 40대 중반은 달랐다. 호기심이 있던 자리에 이미 걱정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걱정은 점점 커지고 불안과 후회가 자라나고 있었다. 걱정은 드디어 다른 감정의 영역까지 침범하기 시작했다. 별거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몇 날 며칠을 걱정으로 밤을 지새웠다. 속은 타들어가고 신경성 위염이 재발했다.
자영업을 하면서 한때는 열정적으로 살았던적이 있었다. 나만의 매장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고 이제는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될 것 같았다. 새벽 6 시에나와 저녁 8시에 퇴근하면서 부푼 꿈을 키웠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처음 생각과 달리 흘러가는 현실은 열정적인 나를 어느덧 부정적으로 변하게 만들었다. 인간관계도 부정의 나를 만드는데 한몫을 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사기를 치고 물건을 어뚱 한 물건으로 반품을 했다. 내가 아직 일에 익숙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몇몇은 그런 나의 틈을 보고 부정을 저질렀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나는 분노했다. 이미 지난 일이라서 어쩔 수 없지만 그들은 뻔뻔하게 내 매장에 들렀다. 그들이 매장에 오면 초 긴장 상태였다. 또 어떤 부정을 일으키지 않을까 봐서였다. 나갈 때까지 내 눈과 정신은 온통 그들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때도 세상일이 다 그런 거라며, 다른 이들도 그렇다며, 애써 위안을 삼았다. 몇 년이 흐르고 일에 능숙해 지자, 더 이상 부정을 하지 못해서였을까? 그들 스스로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어리석었다. 부정을 저지른 그들에게 왜 나는 당당히 할 말을 못 했을까? 아마도 그때 당시엔 그들이 소중한 고객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세상 뜻대로 움직였다. 해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며, 남들도 똑같이 사는데 왜 호들갑을 떠냐며 , 다그치던 세상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다 다시 찾아온 물음 앞에서 세상을 등지기로 결심했다. 호기심 많고 바위에 보자기 하나 둘러매고 뛰어내렸던 그 시절 아이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 순간 마음이 편해지면서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 매장을 둘러보고 마침 들어오는 친구에게 말했다. "매장의 반을 잘라 내 공간을 만들어야겠어" 친구는 잘 생각했다며
그동안 매장에 들어오면 가슴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나는 서둘러 물건들을 정리를 시작했다. 매장을 시작한 지 20년 만에 그렇게 내 매장은 나의 공간으로 바뀌어 갔다. 두 달 남짓 친구와 같이 공간을 꾸몄다. 커피머신을 가져도 놓고 여러 가지 소품과 함께 카페가 공존하는 매장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처음 찾는 손님들은 매장에 들어오려다 다시 밖에 나가 간판을 보고 들어온다. 매장을 꾸미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각나면 그날로 바로 실행에 옮겼다. 즉흥 여행을 하고 독서모임을 만들고 스피치 학원을 다녔다. 경매 강의를 듣고 부동산을 공부했다. 매일 팔 굽혀 펴기를 하고 산행을 하고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그렇게 작년 한 해는 나를 위해 살았다. 지금도 여전히 나를 위해 제빵을 만들고 꽃을 정기배송을 통해 매장을 바꾸고 있다.
삶은 누구나 주어진다. 삶이 남들과 똑같다는 말은 그저 먹고 자고 싸는 것뿐이다. 그런 이유가 삶의 위안이 되지 않도록 충분히 열심히 살아야 한다. 작년을 되돌려 보면 지금이 더 좋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시작해서 다행이었다. 더 이상 과거의 시절에 위안받지 않기위해 앞으로 내 삶은 지금의 시작이 더없이 다행이고 행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