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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츠 Daltz Mar 28. 2023

나는 무명가수가 되고 싶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처럼, 막연했던 꿈.

좋아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창작을 하는 동안 나는 가장 행복했다. 그렇다고 해서 음악이나 글을 다루는 데 아주 특출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작업의 즐거움을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매니악한 성정, 그리고 아주 열정적이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꾸준히는 해나가는 적당한 성실함 정도가 나의 장점이었다. 


  그러니까 나의 작업물은 아마도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적당히 성실하게 만들어낸 모양새가 될 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타인의 그런 작품들을 사랑했으니까. 어린 시절에는 교실 뒤편 게시판에 붙어있었던 동급생의 어떤 그림이, 성인이 되고 나서는 우연히 지나칠 뻔한 작은 펍에서 흘러나왔던 한 무명가수의 노래가 그랬다. 일상을 흐르던 시간이 멈추고, 마치 사진이나 영화처럼 내 안에 기록되는 특별한 순간들이 있었다. 언젠가 내가 만들어내는 순간들 역시 그렇게 누군가에겐 특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피하고 싶었다.


  간혹 감상에 젖는 날이면 나는 예전에 마주쳤던 특별한 순간들을 가만히 더듬어 보곤 했다. 생생했던 감동은 여운을 담은 채로 미지근해져 있었다. 그건 또 그대로, 마치 잘 말린 꽃처럼 색다르게 예뻤다. 나는 그 여운을 음미하며 그렇게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어준 수많은 이들에게 감사했다. 그들의 이름은 처음부터 몰랐거나 대체로 더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게 좋았다. 그리고 언젠가 만들어낼 나의 순간에 함께해 줄 고마운 이들도 내 이름은 기억하지 말아주었으면 했다.


  나는 전형적인 회피형 인간이었다. 많은 이들이 나를 알게 되는 것은 무서웠다. 안정적으로 애착형성을 하며 자란 편아니었던 데다가 열 살 즈음 전학을 갔던 학교에서 꽤 심하게 괴롭힘을 당했던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지 싶다. 그리하여 한 반에 약 40명쯤이 같이 지냈던 고등학교 시절엔 일 년 동안 이야기를 제대로 나눠본 동급생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대학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사교적으로 지내보려 과한 노력도 해보았는데 결국 금방 지쳐버렸다. 그래도 자 다니기에는 고등학교 때보다 훨씬 편안한 환경이었으므로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졸업 전 학기에 조별 과제를 하다 만난 동기들과는 친분을 쌓기도 했다.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런 관계성을 다른 사회에서도 형성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알아낼 수 없었다.


  그러니까 무대나 매체를 통해 음악과 공연을 발표하면서도 유명해질 일은 없는 그런 직업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여전했다. 하지만 창작과 표현을 주로 하는 업계에서 유명해지지 못한다는 건 곧 반백수라는 거였다. 반대로 먹고살만해진다면 보통은 지나치게 유명해지면서 노출도에 대한 부담감을 그만큼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의 분야에서는 대기업부터 소규모 자영업까지 다양한 규모의 시스템을 찾아볼 수가 있었지만, 창작과 표현을 하는 분야에서라면 소시민적으로 먹고살면서 적당한 활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는 자리가 영 없어 보였다. 그런 현실을 극복할 만큼 나는 그릇이 크지 못했고, 굳이 억지로 내 그릇을 키우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내가 가진 작은 그릇조차도 아주 조심스럽게 채우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마땅한 직업명도 찾아내지 못한 내 꿈 비밀스럽게 묻어두었다. 물론 대학의 전공과는 관계없이 쭉, 음악과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고 있기는 했. 교복을 입었던 시절엔 피아노를 치며 떠오르는 멜로디를 MP3에 녹음하고 가사나 소설 따위를 연습장에 끄적였던 습관이, 시대가 변하면서는 작곡 프로그램으로 음악 파일을 만들어내고 포토샵을 써서 웹툰을 그리는 것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런 나의 창작 활동들을 알게 되면 누군가는 내가 조금 특이한 취미를 가진 것으로 생각했다. 또 누군가는 내게 사실은 가수가 되고 싶은 거냐고 묻기도 했다. 그것은 모두 어느 정도 맞는 말인 동시에 아주 틀린 말이었다. 그러한 창작 활동들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단순히 '취미'라는 이름을 붙여버리기엔 너무나도 무거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대중가수를 꿈꾼 것은 또 아니었다. 나는 늘 음악과 이야기를 함께 다루어왔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가수와는 결이 조금 다르기도 했고, 거대 자본을 기반으로 하는 기존의 대중음악 유통 시스템에 대해 거부감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창작의 방향성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에 단 한 번도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로 답이 없는 짓을 계속하고 있는 거였다. 우물쭈물 넘겼던 그들의 질문은 내 무의식의 가장 연약한 밑바닥 어딘가에 의뭉스럽게 고여 들었다. 그러다가 혼자서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엔가 문득, 아주 날카롭고 선명하게 의식 속으로 튀어 오르곤 했.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는 상태로 애매하게 살아가는 한 나는 계속 괴로울 것이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진. 너는 나중에 성공적으로 무명가수가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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