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지 않은 채로, 음악 공연을 잔뜩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싶다. 라는 꿈은 어쩌면 스타가 되고 싶다는 것보다도더 비현실적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했었다. 기획부터 대본 쓰기와 작곡까지 모두 직접 한 공연을 무대에 올린 다음, 무대에서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싶다. 라는 세부사항까지 추가해놓고 나면 더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소심한 데다가 다소 염세적이기까지 했다. 기성 시스템의 문을 두드리는 것도, 스스로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것도, 하고싶지않았다. 그런나에게 공연을 '잔뜩'할 기회는 주어질 리가 없었다. 아주 가끔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대도 대부분은 출연료가 없거나 아주 적었다. 그러니까 생계유지가 될 만큼의 수입을 얻기는커녕 연습실 월세와 음원 제작 비용 등의 지출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방구석에서 혼자 음악이나 공연을 만들어내는 것만큼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과연 내가 만들어낸 것들을 사람들에게 선보일 기회가 생길지는 미지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그 사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어서 나는 현실과 동떨어진 나만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작업에 더욱 몰두하였다.의식적으로 마음을 식히려 노력할 때마다는 그나마 건전한 취미와 비슷한 모양새가 되었다. 그러나 대체로는 사회생활을 방해하는 나쁜 습관 같기만 했다.그렇게 즐겁고도 외로운 작업과 함께, 십 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흘렀다.
놀랍게도, 꿈은 이루어졌다. 코로나로 인한 집합제한이 드디어 풀리기 시작했던 2022년가을부터는 공연 의뢰가 제법 많이 들어왔다. 9월 중순부터 12월 중순까지는 일주일에 5,6일씩 공연을 했다. 휴일 없이열흘 동안 연이어공연을 한 적도 있었다. 매일매일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돌아다녔다. 하루에 이동하는 거리가 200km 안쪽이라면 그래도 양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공연을 하지 않는 시간에는 문의 전화를 받아 제안서와 견적서를 보내고, 공연을 의뢰한 공기관들로부터 요청받은 다양한 서류들을 작성했다. 출연진들의 출연료를 지급하며 각종 세무신고도 해야 했고, 지속적인 홍보를 위해서는 영상 편집과 후기글 업로드도 놓치면 안 됐다. 이동 중인 차 안에서도 노트북을 켜고 일을 하다 보면 목, 어깨, 허리가 늘 뻐근했다. 잠이 아쉬워질 정도로 바쁜 일정이었다.
예전에는 그토록 절실하게 꿈꾸었던 일들이어느새 꽤익숙한 업무가 되어 있었다.문득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물론 어떤 일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는 익숙해지기 마련이란 걸 안다. 또 나는 지나치게 해이해지지않으면서 지나치게 예민해지지도 않은 채, 건강한 긴장감을 유지해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강렬한 아쉬움이 그 모든 이성적인 사고를 압도하였다. 내가 사랑하는 이 직업의 모든 순간을 최대한 생생하게 즐겨내고 싶었다. 그동안 간절한 마음으로 꿈을 꿔왔던 시간이 참 길었으므로, 그 꿈을 이룬 지금이 가볍게 흘러가버리는 게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영원히 처음과 같은 신선한 감동을 만끽할 수는 없더라도 그 빛깔이 성숙해져 가는 매 순간마다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존재할 거다. 그 순간들을 기록하며 나는 익숙함을 늦추고 현재를 보다 농밀하게 감상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한다. 그러는 중에,나와 같이 소심한 마음을 다잡으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울림이나마 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