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을 못해서 인생이 피곤해진 분들을 위해
거절은 나를 지키는 힘이다
살다 보면 우리는 수없이 많은 부탁을 받는다. 회의가 끝나기도 전에 “이거 같이 해줄 수 있어요?”라는 요청이 날아오고, 지인에게서 “잠깐만 시간 좀 내줄래?”라는 메시지가 쏟아진다. 때로는 가족조차 “네가 좀 대신 맡아주면 안 되겠니?”라며 기대를 건다. 문제는 그 모든 부탁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의 시간과 에너지가 조금씩 소진된다는 점이다.
거절은 관계를 끊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거절은 나를 지키는 힘이다. 스스로의 경계를 분명히 하지 못하면 결국 원치 않는 약속에 묶이고, 남의 기대를 채우느라 내 삶은 점점 공백만 늘어난다. 단호하지만 따뜻하게 거절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도 건강하게 지켜낼 수 있다.
거절을 할 때 가장 흔한 실수는 변명처럼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면 오히려 설득당할 여지를 남긴다. “안 됩니다”라는 단호한 말은 차가워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간단한 이유를 담으면 충분하다.
- “이번 주는 다른 일정을 이미 맡아서 시간이 되지 않습니다.”
- “내부 규정상 제가 처리할 수 없는 일이라 양해 부탁드립니다.”
짧지만 구체적인 설명으로 상대방이 더 이상 당신을 귀찮게 하지 못하도록 하자.
상대의 부탁이 권한 밖이라면 정중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사실 권한 밖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권한 밖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쉬운 방법이 없다. 이때 유용한 표현이 있다.
-“이건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상급자와 상의가 필요합니다.”
-“저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합니다.”
이런 문장은 개인적인 이유로 거절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조직적 맥락에서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기 때문에 상대가 쉽게 납득한다. 납득이 되지 않더라도 여러분이 거절을 할 명확한 명분이 되어 준다.
거절을 곧바로 단절로 만들지 않으려면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 곧바로 단칼에 거절해버리면 상대방이 굉장히 무안해할 수 있다. 상대방이 100을 부탁했다면 10 정도를 들어주는 것이다. 100만원을 빌려달라는 친구가 있다면, "내가 요즘 상황이 어려워서. 10만원밖에 못 빌려줄 것 같아."처럼 당신이 주고도 아깝지 않을 돈을 빌려주면 된다(어차피 대부분 못 받을 테니).
- “오늘은 어렵지만, 다음 주라면 시간을 낼 수 있습니다.”- “제가 직접 하기는 힘들지만, 관련 부서를 연결해드릴 수 있습니다.”
대안은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고,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가는 다리가 된다.
거절은 언제나 상대의 기대를 꺾는 행위다. 그래서 “당신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메시지를 먼저 전하면 훨씬 완곡해진다.
-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일정상 어렵습니다.”
- “말씀하신 상황이 얼마나 급한지 이해합니다. 다만 제가 지금 당장은 대응하기 힘듭니다.”
공감의 문장은 거절을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현실적 제약의 공유’로 바꿔준다.
거절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상대를 탓하는 뉘앙스다. "아니 왜 그런 걸 나한테 물어봐?"라는 당신의 내면의 소리가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서는 안 된다. 내면에서 자꾸 아우성이 올라오더라도, 관계를 좋게 이어나가고 싶다면 “내 상황 때문에 어렵다”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 좋다.
- “제가 아직 준비가 덜 돼서 이번에는 힘듭니다.”
- “제가 맡은 일이 많아 지금은 여유가 없습니다.”
같은 문장이라도 표정과 억양에 따라 전달은 달라진다. 무표정하게 “힘듭니다”라고 말하면 냉정하지만, 미소를 띠며 “이번에는 제가 여력이 안 되네요, 이해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면 부드럽게 느껴진다.
"아이고야... 못 도와드려서 정말 안타깝네요."라는 식으로 정말 마음을 쓰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면 더 좋다.
거절은 훈련이 필요하다. 작은 부탁에도 “이번에는 제가 도와드리기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면, 점차 큰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자기 경계를 지킬 수 있다. 특히 평소에 거절을 못해서 어려움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아주 작은 것부터 거절해보자. 거절은 나를 지키는 행위이다. 상대를 돌본다는 이유로 나에게 소홀해서는 안 되니, 나의 에너지와 여력부터 챙겨보자.
맺음말
거절을 잘하는 사람은 차갑지 않다. 오히려 자신과 상대 모두를 존중하는 태도로 대화를 이끈다. “제 선에서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라는 한마디는 무책임한 회피가 아니라, 권한과 한계를 분명히 밝히는 성숙한 태도다. 거절은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