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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플브레이커 Jul 25. 2023

나는 왜 그와 결혼했을까?

내가 다른 것을 바라고 있나?

그를 만난 지 세 달쯤 되었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결혼하는 것은 기정사실화되어 있었다. 나는 장난으로 세뇌당해 눈 떠보니 결혼식장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애 경험도 많이 없고 많은 사람을 만나 본 것도 아닌데, 그리고 가끔 안 맞는 부분으로 힘들 때도 있는데 이렇게 결혼하는 게 맞나?라는 고민이 많았다. 그렇게 고민 중이던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부모님은 왜 결혼을 결심했을까?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했어?" " 그때는 아빠가 한방이 있을 것 같았거든. 가진 건 없지만 무언가 열심히 해서 이뤄 낼 것 같았어." 그 한방 때문에
아빠는 계속해서 사업을 시작했다가 망했다를 반복했고 그게 엄마의 삶의 발목을 잡았다. "그럼 아빠는 왜 엄마랑 결혼했어?" "아이들을 잘 키울 것 같았거든" 사실 엄마와 아빠는 할머니가 암 투병 중이실 때 중매를 통해 만났다. 아빠가 25살, 엄마가 23살 둘 다 결혼을 생각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위독하신 할머니 때문에 급하게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한창 놀기 좋아할 때 결혼한 아빠는 쉽사리 가정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고 이로 인해 엄마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는 엄마피셜)

가까이에서 평생 지지고 볶으며 사는 엄마 아빠를 보면서도 나는 왜 이 사람과 결혼이라는 이 힘들고 고된 길을 함께 걸어가려고 하는가?
사실 가장 큰 부분은 성실한 면이었던 것 같다.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던 그는 그 당시에는 일하는 만큼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를 만나지 못하는 평일에는 거의 특근을 하며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성실한 모습을 보고 '아 이 사람이라면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평생 나를 먹여 살릴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또 하나는 경제관념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을 그냥 펑펑 쓰는 것이 아니라 계획을 세워 관리하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입사 초기였던 나에게 통장 쪼개기, 소비패턴 익히고 지출 계획 세우기 등을 알려주었다. 또한 청약통장을 활용해서 그 당시 청주에서 인기 있었던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고 그 프리미엄을 결혼자금으로 보탰다. 그래서 우리는 양가 부모님의 도움 없이 결혼식 준비와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때는 셈도 빠르고 머리 회전도 빠른 나와 다른 그가 참 대단해 보였고 이 사람이랑 살면 손해 보며 살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해서 살면서 그와의 관계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다시 생각해 보곤 했다. 나는 왜 그와 결혼했을까? 돌아보면 아쉬움이 남는다. 평생 경제적인 문제로 힘들어하고 매일 싸우시는 부모님을 보면서 은연중에 그것이 나에게도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혼 후 그의 경제력과 경제관념은 나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신혼 초에는 내가 경제권을 가지고 관리를 했었지만 그의 요구로 각자의 수입은 각자가 관리하면서 우리는 공동생활비만을 공유하는 룸메이트 같은 관계가 되었다.

또 내가 그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부분 중 하나는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었다. 나를 만나기 전 그는 하루 한 갑 정도 피는 골초였지만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나를 위해 만나기 2~3일 전부터는 금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나에게 선언했다. 자기가 한 달에 담뱃값으로 14,4000원을 쓰는 데 1년 동안 금연하고 그 금액을 적금으로 부어서 주겠노라고 실제로 그는 금연했을 뿐만 아니라 1년 후 나에게 약속한 금액을 현금으로 주었다. 비록 결혼 후 두 달쯤 되었을 때 부부 싸움 중 다시 내 앞에서 피기 시작했지만..

사실 내가 배우자에게 제일 바란 것은 정서적인 지지다. 각박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며 그 사람만은 내 편이 되어주고, 내 생각을 공감해 주고, 나를 응원해 주기를 바랐다. 그러면 세상 누가 뭐라 하든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꽃 같은 20대 시절의 대부분을 좁디좁은 고시원에서 고시공부를 하면서 보냈지만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던 나는 그 당시 허탈감과 무력감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벌써 20대 후반인데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었고 그 가운데 가족들과의 갈등도 심했다. 물론 가족들도 나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마음에서 했던 말이었겠지만 그때의 그 말들로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생채기가 남아있다. 결국 나는 현실과 타협하여 법원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고 운이 좋게 바로 합격할 수 있었다. 어느 주말 그와 선유도공원을 걸으면서 문득 그를 테스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한창 결혼 이야기가 오가고 있던 중이었는데 혹시 결혼하고 내가 다시 사법고시나 법원행정고시 준비를 시작해도 괜찮은지 슬쩍 물었다. 잠깐 머뭇하던 그는 결국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실제로 시험을 준비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사람이라면 앞으로 나의 꿈을, 나의 인생을 진심으로 응원해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상견례 후 시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도 한 동네에 살아 우리 집 사정을 잘 아시는 시부모님은 혹시 집안 형편 때문에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던 거라면 부모님이 도와주실 테니 다시 공부를 해보라고 하셨다. 그냥 하신 말씀일 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감사했고 그리고 진짜 가족, 내 편이 생긴 것 같아 너무 든든했다.

또 한 가지 그 당시 그는 정말로 우리 집과 우리 가족들에게 잘했다. 처음 우리 집에 인사드리러 가면서 지금 엄마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으며 냄비세트를 준비한 그. 첫 만남에 냄비세트라니 특이하긴 하지만 실용적이라며 엄마도 엄청 좋아하셨다. 먹는 것에 진심인 그는 철이 바뀔 때마다 우리 집에  제철 음식들을 보냈고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 가족들은 모두 열광했다. 엄마 생신에는 그 비싸다는 민어를 준비해 온 일가친척이 모여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내가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모님께서 집 앞에 있는 작은 슈퍼마켓을 인수하려고 하셨다. 평생 남의 밑에서 일만 해온 엄마가 처음으로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다. 하지만 데이트할 때부터 빚을 극혐 한다는 그의 말에 쉽사리 손을 내밀 수가 없었다. 그렇게 벙어리 냉가슴만  앓고 있는데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가 먼저 이야기했다. 내가 공무원이어서 대출금리도 싸고 하니 부모님 가게 시작하실 때 도와드리라고.. 결혼하기 전부터 빚을 안고 시작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 빚이 우리를 위한 것도 아니고 부모님을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속 깊게 우리 집 상황을 이해해 주고 내 마음을 알아준 그에게 진심으로 고마웠다. 시부모님께도 미리 말씀드렸는데 그동안 부모님께서 이만큼 잘 키워주셨으니 보답한다는 생각으로 너희가 열심히 일해서 갚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진짜 눈물이 날 뻔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빚 때문에 결국 우리 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각자 수입을 관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
엄마 환갑 생신에 인사드리러 가기는커녕 전화 한 통 안 하는 그를 보며 그때 내가 알 던 그가 맞는지...

결혼생활로 마음이 힘들 때마다 법륜스님의 책이나 강연을 많이 들었다. 법륜스님이 말씀하시길 결혼할 때 성실함 한 가지 보고 결혼했으면 거기에 만족해야 하는데 좀 더 다정다감했으면 하고 다른 것을 바라서 마음이 힘들고 갈등이 생긴다고 하셨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나는 이 사람의 무엇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을까? 내가 그에게 다른 것을 바라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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