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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Sep 25. 2022

자전거를 머리로 배우면 생기는 일

내가 다 가르쳤다는 거짓말

 

나는 자동차 말고는 아무것도 탈 줄 모른다. 그렇기에 킥보드, 롤러스케이트, 인라인, 스케이트보드, 두발자전거를 섬렵한 아이를 볼 때마다 감탄스럽다. 아이의 영상을 찍어서 남편에게 보내고 생색을 낸다. “다 내가 가르친 거야. 알지?”

 틈만 나면 아이에게 운동을 가르치기 위해 애썼다. 겁이 많고 고집이 센 아이는 아빠에게 배우다 잘 안되거나 무서우면 화를 냈고 바로 포기하려 했다. 아빠에게 배우게 하는 것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택했다. 사돈만큼 어렵다는 아이 친구 엄마에게 연락해 인라인을 함께 타게 했다. 킥보드를 잘 타는 아이를 만나 음료수를 사줘가며 쫓아다녔다. 그것은 낯을 가리는 나에게 꽤나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다. 내 아이에게 운동을 가르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만난다는 죄책감도 함께 했다. 운동 잘 하는 친구들을 만나 하루종일 뺑이치고 나면 실력이 부쩍 늘었다. 자전거 실력은 일 년이  지나도 별 진전이 없었는데도, 매일 자전거를 끌고 나가 아이 옆에 슬그머니 두곤 했다.

 드디어 두발자전거 타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남편에게 보여주던 날, 남편은 내가 직접 가르쳐 주었다는 것에 대해 놀라워했다.  유튜브를 보고 두발자전거 타는 법을 머리로 익혀서 전달했다. 위험한 순간을 대비해 줄 자신이 없어서, 자전거 뒤를 잡아달라는 아이의 요구를 거절하고, 아이가 스스로 자전거 안장에 앉기만 해도 폭풍 칭찬해 주었다.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엄마의 말이 이해가 된다면서 두발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자전거에서 보조바퀴를 떼자 달리는 속도가 올라갔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위험하니 천천히 가라고 외치며 쫓아갔다. 운동 부족으로 숨이 차서인지, 여느 엄마들처럼 아이의 첫 두발자전거 주행에 감격해서인지 심장이 쿵쿵거렸다. 아기때부터 굼뜨고 대근육발달이 느리다는 지적을 받아도, 꾸준히 계속 하면 못 할 게 없다는 걸 현실에서 목격하는 순간이다. 엄마아빠 닮아 운동신경 없다는 소리를 평생 들은 나도 어쩌면 운동에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40대에 하게 될 줄이야. 그렇게 아이가 새로운 것을 하나씩 습득할 때마다 두려움을 함께 이겨냈다는 설렘으로 팔다리가 간질간질하다. 다음엔 또 뭘 배우게 할 지 빨리 찾아보라는 조급만 마음의 신호다.

 배움이란 것은 두려움만 없으면 누구나 가능하다. 그 두려움에서 헤어나는 것은 어릴수록 쉽다. 어릴 때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다. 위험하다는 이유나 경제적인 이유로 새로운 경험을 제지당하는 유년기를 보냈다. 하고 싶은 것을 못 하는 경험이 반복되면,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 시간과 정보의 부족으로 배우고 싶은 게 뭔지도 모르고 정신 없이 보냈다. 이제 무언가를 배울 시간과 돈은 생겼지만 나이만큼 두려움의 무게도 커졌다. 배우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시작하지 못한지 오래되었다.

 아이는 나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 감정을 되비추기도 하는 편이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보다 먼저 알아채고 그것을 거부한다. 아이도 나처럼 배우는 시기를 놓치고 두려움 때문에 시작하지 못하는 것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 어릴 때 배워두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아이가 배우고 싶어 하는 것들보다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을 가르치게 된다.

 이제는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힘들게 쫓아가지 않고 천천히 멀리서 뒤를 따른다. 점점 작아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아무리 반복해도 여전히 가슴에 온기를 채우는 동시에 울컥한 일이다. 아이는 횡단보도를 만나면 목을 쭉 빼고 나를 기다린다. 내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는 아이 덕에 아이가 자전거를 배우지 못하면 어쩌나, 타다가 다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조금씩 이겨내고 있다. 아이와 함께 이만큼 자랐으니 이제는 내가 새로운 것을 배울 용기를 낼 차례이다. 내가 무언갈 배우기 시작하면 아이가 배울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이 가슴을 꽉 채울 것이다. 머리로 배운 자전거가 나에게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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