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이런 사람 꼭 있다

내가 미워한 사람들

이런 사람 없는 직장은 대한민국에 없다(1)

돌이켜 보면 어느 부서에 발령받아, 어떤 직원과 만나 일을 하든 난 늘 모든 직원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꼭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 하나씩 있었다. 막상 또 사이가 안 좋았다고 표현하면 그분이 비웃을 수 있다. 그들은 날 의식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들은 내가 아닌 위 분들을 의식한다. 하느님은 공평하구나 싶다. 위 분들의 비위를 잘 맞추는 특정인에 대한 사회성을 부여한 대신, 일머리는 주시지 않았다.

어느 자리든 일을 하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고, 안 하려 해도 한도 끝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해도 야근을 하는 사람과, 야근을 하지 않는 사람으로 갈리는 것이다. 나는 업무 기준을 세워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의 기준 없이 모든 일을 다 하며 야근을 자주 하는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자기 일이 얼마나 힘들고 많은지 칭얼댄다. 보통 오래 있어도 2년 반이면 발령이 나는데, 그 기간 동안 전임자도 하고 전 전임자도 하던 일을 그렇게 못마땅해 하는 건 무능력을 과시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고해야 할 것과,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분류할 줄 안다. 그리고 보고해야 할 것을 안 해서 혼나는 나 같은 사람이 있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보고해서 윗분들의 이쁨을 받는 그들이 있다. 아무래도 보고를 많이 해야 일을 많이 하는 줄 아는 상사가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점심시간은 늘 업무의 연장이 돼버리고 만다. 밥 먹으며 틈새 공략으로 업무 얘기를 하면, 팀장님은 그걸 무시할 수 없어 먹는 내내 함께 얘기한다.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싶다. 먹고살자고 일하는, 아침도 굶고 출근한 생계형 워킹맘은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일한다. 그들 때문에 입맛 없어져서 점심을 대충 먹고 나면 배고파 죽겠단 말이다.

난 그들을 대놓고 폄하하고 무시하기도 했다. 그들이 위 분들께 인정받으니까 싫은 거 아니냐고? 맞다. 그들이 일도 잘 못하는데 상사에게 미움까지 받는다면, 난 측은지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을 미워하는 티를 내자, 팀장님들은 날 얄미워 하는 티를 내셨다. 그들의 업무를 떼어서 내 업무 분장에 붙여 주셨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리석었다. 그냥 팀장님 안 보실 때만 미워할걸.

팀장이 되고 나니,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티를 내며 일하는 직원이건 알아서 잘 하는 직원이건 별 의미 없다. 팀장이란 자리는 일 많이 하는 직원이 누군지 그냥 보이는 자리였다. 조용히 일 잘하는 직원을 이뻐할 수도, 일 어필에만 힘쓰는 직원을 미워할 수도 없는 자리였다.

드디어 누굴 미워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구나 하며 만족한지 만 8개월이다. 누굴 미워한다는 것은 쓸데없이 고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니까. 그러나 개 버릇 남 못 준다고, 팀원을 못 미워하니까 옆 팀장님을 슬금슬금 새로운 인물이 내게 나타났으니...

이런 사람 없는 직장은 대한민국에 없다(2)

사장님과 팀장들과 회식을 하면, 거의 그분의 팀 업무 얘기가 주가 된다. 결과적으로 사장님은 그 팀 업무의 소소한 부분까지 알게 된다. 매일 그 팀장님을 안쓰러워하던 동장님은, 7월에 다른 곳으로 발령 나 떠나시면서 우리 팀원 한 명을 그 팀으로 보내길 권장하셨다. 내 기준으로는 상도에 어긋나는 요구였다. 무슨 이런 진상 민원인보다 더 진상이. 직급과 나이 상관없이 어딜 가나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의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본인이 제일 힘들다는 걸 호소하며 혜택을 얻으려고 하니 말이다.

내가 직원일 때는 그렇게 어필 잘 하는 직원들의 업무를 떠안아 하면 그만이었다. 이제 팀장이 되니, 나 스스로 해결이 안 되고 팀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첫 경험이었다. 결론적으로 팀원 교체는 피할 수 있었지만, 인사 기간 내내 보이지 않는 갈등이 나와 그 팀장님 사이를 왔다 갔다. 이 일을 겪고 나니 그분의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기 시작했다. 얼마나 일이 많고 힘들기에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건지 자세히 지켜보았다. 예전에는 일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하시는 분이라 생각했다. 나쁘게 보기 시작하니 어디까지가 행정인지의 잣대 없이 저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은 부분이 많았다.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많이 와서 비상근무가 잦았다. 어느 금요일 밤 11시경 호우주의보가 발효되어, 부서 당 2명씩 비상근무 명령이 떨어졌다. 근무조는 아니었지만 혹시 호우경보로 변경될까 봐 신경을 바짝 쓰고 있었다. 호우경보로 변경되거나 실제 비상상황이 생기면 바로 출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새벽 1시경 호우주의보 해제 문자를 받고, 긴장이 풀린 채 잠이 들었다.

자다 중간에 깨서 핸드폰을 보니, 새벽 1시 반부터 부재중 전화들이 찍혀 있다. 비상근무는 해제되었지만, 배수 문제로 일부 지역의 가옥과 상가가 침수된 것이다. 관련 부서 과장님들과 배수 관련 기관 관계자에 이어 시장님까지 새벽에 나오시는 상황이었다.

팀장들 중 아무도 새벽 전화를 못 받았고, 그 팀장님만 전화를 받으셨다. 새벽 1시 반에 출근하여 현장을 확인하고, 물 청소와 준설작업을 준비하고 재난상황 보고서까지 신고하셨다. 뒤늦게 출근하여 그 팀장님과 교대하여 현장에 근무를 나갔지만, 내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어설픈 판단으로 호우주의보 해제만 믿고 푹 잔 것도 한심하고, 그 팀장님을 미워하고 있었다는 것도 창피했다. 그분 덕에 그날 새벽 비상사태를 큰일 없이 수습할 수 있었다. 이런 직원 저런 직원 다 있기에 이렇게 저렇게 업무가 잘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그 팀장님의 성실한 면만 보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마음먹은 이후로 그 팀장님의 좋은 점만 눈에 띈다. 내게는 굳이 만드는 일거리이지만 그분에게는 열정이며 긍정이었다. 힘들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기는 하지만, 경청하고 있으면 금방 웃음을 되찾으신다. 본인 업무와 고충에 대하여 위 분에게 말씀하시는 건 업무에 꼼꼼하게 대응하시는 그분의 스타일일 뿐이다.

이제 직장에 미워하는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누구를 미워하는 것도, 미워하지 않는 것도 내 자유지만. 누굴 미워하지 않는 것이 출근길을 덜 괴롭게 한다. 출근 길이 괴로울지 아닐지도 결국 나에게 달려있다.

어쩌면, 내가 직원일 때 싫어했던 직원들도 쓸데없이 싫어한 건 아니었을까. 그러지 않았더라면, 직장 생활 스트레스가 덜 했을까. 그래도 함께 일하는 직원을 미워하는 것도 한때다. 중간관리자로 승진하기 전에 마음껏 미워하고, 마음껏 경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