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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Aug 19. 2021

직장맘 답지 않은 마음으로

글도 삶도 주제파악 안됨


 육아휴직 기간 동안 직장맘의 한계를 잊고 지낸 바람에 복직을 앞두고 머리가 아프다. 

 

휴직 동안 아이는 차량 운행이 안 되는 학원이나, 집에 내가 있어야 하는 개인 레슨을 받았다. 휴직 때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은 허영심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있을 때 아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해주고 싶었고, 무엇보다 코로나 일제 검사로부터 안전한 수업을 하고 싶었다. 이제 이 수업들은 밤 시간으로 옮겨야 한다. 보통 야근을 하지 않는 남편에게 저녁 수업 일정을 알려주며 부탁을 했다. 이런 걸 부탁할 때마다 ‘우리 아이’가 아닌 ‘내 아이’인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남편에게 공격적인 말투를 바꿔보고자 부탁을 하는 말투를 연습 중이다.) 지금 하는 일정들을 밤으로 일부 옮기고 나니 낮 시간이 많이 빈다. 내가 있었더라면 종이접기 하고 놀이터만 가도 하루가 부족한데 낮이 갑자기 길어진 기분이다.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 학원을 추가하려니 교육비가 만만치 않다. 경력, 자아발견, 비전을 위하여 복직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복직을 하는 것인데 이게 맞는지 혼란스럽다.




 육아휴직 전까지 친정엄마께서 육아를 해 주셨다. 아픈 엄마를 볼 때마다 가슴에 바위 덩어리 하나가 있는 느낌이다. 그 느낌을 살려서 낮 시간을 채울 학원을 알아보았다. 제일 처음 태권도 학원을 등록했다. 관장님과 사범님의 열정과 인성, 거리두기 가능한 적절한 수의 원생, 학원과 화장실의 안전한 위치를 보고 선택한 것은 역시 주제넘는 결정이었다. 직원들이 거의 시청 앞, 커다란 트램펄린이 있는 태권도장을 선택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그곳은 사범님들이 많고 도장이 넓어서 아이들을 늦게까지 ‘보육’해줄 수 있다.


 직장맘들은 보통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공부방, 영어학원을 보낸다. 태권도 학원은 위에 설명했듯이 보육을 위하여 보낸다. 피아노 학원과 공부방은 주 4~5회나 갈 수 있고 원하는 시간에 갈 수 있어 스케줄 짜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영어학원은 하루 수업이 2~3시간이므로 시간을 많이 때울 수 있다. 하지만 피아노는 이미 개인 레슨을 하고 있다. 교과와 영어공부는 나와 집에서 조금씩 천천히 하며 자기 주도 학습을 꿈꾸고 있다. 마스크 쓰고 하루 종일 학원을 가는 것도 안쓰러운데 재미없는 공부 학원을 벌써 보내고 싶지가 않다.




 이쯤 들으면 누가 들어도 슬슬 짜증이 날 것이다. ‘뭐 어쩌라고?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아이 교육에 관심 없다고 친구들에게 늘 혼이 나는 내가, 아이 교육에 이렇게 욕심이 많은지 몰랐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잠시 다녔던 바둑학원에 다시 가고 싶다고 한다. 학원에 문의를 했더니 폐원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제저녁에는 아이 스케이트보드 강습을 해 주시는 강사님께 좋은 소식을 들었다. 코로나 이후로 수강생이 늘었는데, 올림픽 이후로 더욱 늘어 본업을 관두셨다고 한다. 함께 손뼉 치고 기뻐한 것이 생각나 괜스레 마음이 무겁다. 오늘 연락드린 바둑학원 원장님은 코로나로 인해 폐원을 하셨다니, 코로나 발생과 함께 바둑학원을 그만둔 나도 한몫한 것이다.


 바둑학원마저 못 가게 되자, 학교 안에서 할 수 있는 방과 후 활동과 태권도 학원이 끝나면 친정엄마에게 부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하루 종일 ‘학원 돌리기’에 제일 반대하는 분은 친정엄마니까 더 좋아하실 것이란 합리화를 한다.




 어제는 아빠께서 복직 전 만찬을 제공하셔서 가족들이 모였다. 다녀오길 잘했다. 아픈 엄마를 보니 다시 정신이 들었다. 하루라도 엄마에게 온전한 휴식을 드릴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온 동네 학원을 돌아다녔다. 계획에도 없던 공부방과 바이올린 학원까지 상담을 받았다. 다행히 적절한 학원을 찾았다. 조금 먼 동네의 바둑학원이다. 오다가다 시간을 낭비하기도 좋다. 수업도 1시간 넘게 하고, 태권도 학원까지 차량 운행도 해 주신단다. 이런 계산만 하는 엄마가 미안하지 않도록 아이는 바둑알을 보며 눈이 반짝반짝해진다. 이 바둑학원 원장님께서는 우리 동네 폐원한 바둑학원 원장님과 각별한 사이라고 하신다. 소식을 물어보니,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 다른 회사에 취직을 하셨다고 한다. 그 연세에도 다른 커리어를 쌓고 싶어 하시고, 그럴 능력도 되시는 분이었다니 다행이고 행복해진다. 아차, 남 걱정할 때가 아닌데 또 주제 파악 못하고 12시간마다 기뻐하고, 걱정하고, 다행이라 안도하고 있다.


 주 1회 수업은 없다고 난감해하시는 원장님을 졸라서 등록했다. 소심한 내가 안 되는 걸 해달라고 하다니 이제 준엄마가 된 듯하다. 가까이 사시며 아이를 봐주시지 않는 것이 더 마음이 힘든 친정엄마, 아이가 하루 종일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걸 원치 않는 남편(이럴 땐 ‘내 아이’가 아닌 ‘남편의 아이’ 같은 묘한 느낌이 든다), 집에 잠시도 혼자 있기 싫어하는 아이. 나름 세 사람에게 공평한 결정을 했다. 그나마 홀가분해진 마음속에 조금 남은 찌꺼기를 털기 위해 남편을 부른다. 이런 쓸모없는 이야기를 다른 데다 할 순 없으니까.


 “오빠 오빠! 내 얘기 좀 들어봐. 만약 어머님이 주시기로 한 땅에 개발이 들어가거나, 오빠 주식이 대박이 나면 작은 도서관을 여는 거야. 워킹맘 자녀들이 월 이용료를 조금 내고 비는 시간 아무 때나 와서 책을 읽을 수 있어. 책도 많이 필요 없어. 괜찮은 그림책과 동화책, 고전 몇 권을 천천히 읽고 반복해서 보는 거야. 우리 아이처럼 3시간 정도 비는 시간을 부모 퇴근할 때까지 휴식하듯 독서하는 거지. 간식도 줘야 해. 워킹맘 아이들은 중간에 간식을 못 먹어서 배가 고프거든. 난 아이들이 안전하게 책을 읽을 수 있게만 해 주면 돼. 그런데 문제가 있어. 워킹맘들은 아이 픽업이 안 되니까 아이 픽업해줄 사람이 필요하고, 난 요리를 못하니까 아이들 간식 만들어 줄 사람도 필요해. 그럼 두 명이나 고용해야 해.”

“ 빵이랑 우유 정도만 주던가. 그리고 픽업은 하지 말고 그냥 이 동네에서만 해야지. 그런데 이 동네엔 워킹맘이 거의 없잖아. 수익구조가 안 나와.”

“그래서 내가... ‘만약’과 ‘개발’과 ‘대박’이라는 단서를 붙였잖아?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게 아니잖아.”

“응... 좋은 생각이네...”


 평소의 남편이라면 어마어마한 출산장려정책자금 중 이렇게 돌봄 공백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예산은 없는지 열을 올렸을 것이다. 나는 의학적 노산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둘째를 낳으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이 도시에 왜 맘 놓고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지 눈을 부릅떴을 것이다. 아들은 시의적절한 부부의 토론에 엄마 아빠 싸우는 거냐고 질문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날 그러지 않았다. 우리 가족 모두 예민한 시기이니까.




 방금 신청한 방과 후 수업 중 한 과목이 추첨에서 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획을 다시 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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