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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Aug 04. 2021

지방공무원법 제51조 친절공정의 의무

권위적인 관공서에 한 맺힌 분들을 마주할 때

출산을 앞두고 면사무소 민원팀에서 근무한 적 있다. 얼굴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지금 어디서 열받아 오셔가지고, 저에게 화풀이를 하세요!!”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조용한 면사무소에 그 남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할 때는 고개 숙이고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내 자리와 가장 먼 곳에 위치한 면장실에서 면장님이 나오셨다. 뒷자리에서 팀장님께서 일어나더니 손을 꼭 잡으셨다. 그만하라고도 한 말씀 못하시는 면장님과 팀장님이 안쓰러워서 바로 입을 다물었다. 5급인 면장님, 6급인 팀장님, 7급인 주무관 모두 민원인 앞에서는 다 같은 을이니까. 임신 중이라 예민해져서 그런 것이라 생각할 직원들의 시선도 부끄러웠다.


 그 민원인은 나에게 업무를 보러 온 분이 아니었다. 다른 팀 담당자를 찾으며 두리번거릴 때 제일 먼저 눈을 마주치고 안내를 하려 했다. 그때 다짜고짜 그 직원을 어디다 숨겨 두었냐며 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돌아갈 때 면장님을 포함한 다른 직원들에게 사과를 하더니 나에게 다시 왔다.

 “내 화도 안 받아 줄 거면서 왜 어려운 공부 해서 이 자리에 앉아있어요. 민원대에 앉아 있으면 그런 건 받아줘야지.”


 동사무소 총무팀에 근무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민원팀 직원들이 바빠 보여 전화를 대신 받았다가 여성을 낮춰 부르는 모든 욕설을 계속 듣게 되었는데, 지금 떠올려도 뒷골이 저릿하다. 화가 난 까닭은 무인민원발급기에서 호적등본이 발급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그 당시엔 가족관계등록부가 아니라 호적부였고 무인민원발급기에서 발급이 되지 않았다.) 호적부 발급에 대한 내용은 법원 소관이었기에 그분의 다양한 욕설에도 반복되는 답변만이 가능했다. 그나마도 작은 목소리의 대답은 아무리 높여도 그분 목소리에 묻혔다. 욕설이 점점 심해지고 커지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욕 그만하고, 당장 동사무소로 오세요!!!!”


 옆 팀인 복지팀장님께서 뛰어오시더니 수화기를 빼앗았다. 동사무소 친절공무원 후보로 올라가 있는 네가 전화를 이렇게 받으면 어떡하느냐, 친절공무원 테스트 전화일 수도 있는데 무조건 참아야 한다고 하셨다.




 입장은 서로 달랐지만 면사무소에서 만난 민원인도, 동사무소의 복지팀장님도 내가 참아야 한다고 했다. 나름 억울한 상황에 수치스러운 말을 들은 일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참는 데는 이골이 났다. 게다가 운이 좀 좋은 편이라 격무부서에 근무한 적이 별로 없다는 걸 감안했을 때 다른 직원들은 나보다 더 격한 민원인을 만나고 험한 일을 겪었을 것이라 예상한다. 흔히 감정노동이라고 불리는 다른 직업을 가진 분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나처럼 민원인에게 목소리를 높이는 경험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 참을 것이다.


 그냥 참기 억울하니까 참아야 하는 근거를 찾아보자. 민원인에게 거친 말로 맞대응하는 것은 <지방공무원법 제51조 친절공정의 의무>와, <제55조 품위유지의 의무> 위반행위쯤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국민을 위한 투철한 사명 없는 직원들도 있으니, 친절해야 한다는 직업의식은 차치한다 치자. 그렇다면 법령 위반에 따른 징계처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참아야 할까?




 직업의식도 못 챙기고 기대 없이 들어간 첫 직장이었지만, 그동안 보지 못한 세상을 체감하자 열심히 하고 싶었다. 전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만 보였는데, 일을 시작한 후에는 신체적, 경제적, 정신적으로 힘들고 아픈 사람을 매일 보았다. 시청이나 사업소에 일할 때보다는 면사무소 두 군데 일할 때 특히 그랬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하는 마음과 ‘솔’톤의 목소리를 장착한 강사님의 CS교육이 유행하던 시절에도 배운 대로 한 적은 없었다. 그저 약자에게 권위적이지 않고 공정하게 대하고자 하는 나만의 공식을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부서장님께서 특히 잘 해드리라고 말하는 분에게도 사소한 것 하나 더 해드린 적 없다.(이건 어쩌면 삐딱선 타는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친절할수록 더욱 과도한 성의를 요구하는 분들을 여러 번 겪은 후부터는 딱 내가 정한 기준만큼만 친절하려고 절제하며 일했다. 그렇게 냉정했음에도 친절공무원으로 추천해주시고 홈페이지에 올려주시는 민원인들도 계셨다. 그럴 때마다 죄송한 마음에 초심을 잃고 있는 자신을 반성했다.     


 때로 내 기준에서 벗어나 더 친절하고 무조건 화를 참는 경우가 있는데, 더 많이 아파 보이는 분들을 만날 때다. 물리적으로 병이 나거나 정신적으로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분들은 이미 화로 뒤덮인 채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하지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기시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사회적 약자의 분노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려 애쓴다. 취약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그들을 그저 안타깝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물론 무조건 참은 날은 꼭 술을 먹고 자야 한다.) 그들의 진단서나 일기를 본 것도 아니면서 주관적인 판단으로 더 아픈 분이라 판단하는 것이니 억울한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나이가 많아지고 직급이 올라갈수록 민원인을 직접 응대할 일이 줄어든다. 의욕 가득한 후배들이 나보다 몇 배 친절하게 힘든 민원을 상대하고 퇴근 후에 술을 먹는다. 어떤 날은 민원인에게 같이 소리를 지르고 복도 구석에서 울기도 한다. 그런 후배들에게 나의 주관적 기준을 대입하여 도움을 주기가 힘들어진다.


 더욱 불합리하고 살기 힘들어지는 사회 속에서 아픈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일까. 방문하는 분들을 마주하며 이젠 누가 마음이 아프고 안 아픈지 구분하기도 힘이 든다. 법에 허용되지 않는 것을 요구하기 위해 큰소리 내는 민원인도 늘고 있다. 그 모든 분들에게 무조건 친절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픈 민원인만 많아진 것이 아니라 물리적 또는 심리적 병을 가진 직원들도 많아졌다. 아픈 후배 직원에게 친절을 강요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저 누군가의 목소리가 커져 사무실이 시끄러워진다면 평소에 아무리 열심히 해도 순식간에 일 못하는 직원이 되어버린다는 고리타분한 조언만 해준다.




 <지방공무원법 제51조 친절공정의무>를 다시 정독해본다. 「공무원은 국민, 주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친절하고 공정하게 집무하여야 한다.」

 ‘봉사자’는 공무원이 국민에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는 의미다. 법의 테두리만 벗어나지 않는다면 기꺼이 도와드려야 하는 위치에 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거기까지다. 공무원 개인의 존엄성을 침해받으면서까지 그들의 상처 치유를 위해서 분노를 받아주는 봉사를 하기에는 개인마다 감당할 수 있는 마음의 크기가 다르다. 그럼 나는 그렇게 아픈 민원인들과 직원들을 걱정할 만큼 마음이 크고 건강한가? 아니, 나도 그렇지 않다. 그 크기가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그냥 약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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