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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 Sep 23. 2022

독서교육 전문가가 말하는 대로 다 해봤더니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

친구는 돌 전후쯤 내 아이를 보고 천재라고 했다. 아이는 책 제목만 얘기하면 엉금엉금 기어가서 그 책을 찾아서 뽑아왔다. 책장을 넘기며 내가 읽어주는 억양과 몸짓 그대로 흉내 내며 옹알이로 독서했다. 돌이 한참 지나도 걷지 못했는데, 책을 읽어 주겠다고 하면 허겁지겁 뛰듯이 기어 왔다. 친구의 말대로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클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이가 21개월 되던 때에 복직을 했다. 그 후 4년 넘게 나는 아이의 최소한 생존을 위해서만 존재했다. 끼니를 겨우 챙기고, 열나면 응급실에 데려가는 그런 엄마 말이다. 그 죄책감 때문인지 자연관찰, 과학, 인성, 위인 등 각 연령에 적합하다는 전집을 구입하는 데에 야근 수당을 쏟았다.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직장맘의 막연한 제스처였다.


아이가 8살이 되던 해에, 두 번째 육아휴직을 냈다. 마침 그때 송재환 선생님의 <초등 1학년 공부, 책 읽기가 전부다> 와 전안나작가님의 <초등 하루 한 권 책 밥 독서법>를 읽은 직후였기 때문에 배운 내용을 아이에게 적용해 볼 생각에 설레었다. 드디어 함께 책을 읽고 독후 활동을 하며, 잠자리 독서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생활을 하는 것인가! 다시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어놓고 복직하는 거야!


웬걸, 아이는 책을 읽어주면 한 문장도 집중하지 못했다. 내 말을 계속 끊어 먹고 똥과 방귀 드립만 했다. 구석에서 기어코 특이한 일러스트를 찾아내,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했다. 낭독이 좋다고 해서 시켜 보니, 몇 줄 떠듬떠듬 읽다 못하겠다고 울었다.


뭐가 문제일까 싶어서 엄마표 독서교육 강의를 꾸준히 듣기 시작했다. 거기에서 8살 내 아이의 실제 독서 수준이 5~6살 정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림에 대한 관찰력은 뛰어나다는 것도 알았다.


아이 수준에 맞는 유아 그림책을 빌려다 주기 위해 도서관 셔틀을 했다. 서른 권 정도 빌려오면 그중 다섯 권 정도는 좋아했다. 독서교육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말한다. 도서관에 같이 가서 아이가 고르게 하라고, 계속 데리고 가다 보면, 만화책만 빌리다가 더 이상 볼 게 없으면 동화책 읽는다고, 정기적으로 서점 가면서 만화책 한 권 사주면 동화책 한 권 사는 조건을 걸면 된다고, 부모가 먼저 책 읽는 모습을 보이라고.


아이는 도서관에서 귀신, 유머 만화책만 고른다. 볼 게 없으면 본 걸 또 본다. 흔한 남매 10권을 8회독 하는 아이다. 데려가고 싶어도 이제 따라나서질 않는다. 서점에서 동화책을 함께 사 오면 동화책은 늘 버림받는다. 이 고비를 넘기겠노라며 <초등 책 읽기에 날개를 달아줄 대박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붙은 동화 전집이 보이면 바로 사다 날랐다. 성공률은 반도 안 된다. 부모가 책 읽는 보습을 보여주라 해서 열심히 책만 읽었더니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책 읽으니까 심심해, 나 게임 조금만 하게 해 줘."


여전히 독서를 엄청 좋아하는 아이는 아니다. 그냥 책을 거부하지 않는 정도? 지나치게 심심할 때 책을 보지만, 두꺼운 동화책은 아예 거들떠도 보지 않는 딱 그 정도. 작년에 내가 복직한 이후로, 티브이와 게임 맛에 푹 빠진 아이는 다시 책을 멀리하게 되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밤마다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새로운 방법을 발견했다. 현직 초등 교사의 말이다. "책을 읽어주시다가 딱 덮으세요. 내일 아빠(엄마)가 읽어줄게. 절대 너 혼자 읽지 마. 그러면 아이가 읽어달라고 조릅니다. 그러다 몰래 가져가서 막 읽습니다."

책을 딱 덮으면 아이가 정말 조른다. "한 챕터만 더 읽어줘, 제발!" 안 된다고 하면, 꾹 참고 책을 치운다. 인내력이 눈부신 아들이다.


문제는 다음 날 되어, 다음 챕터를 읽어주겠다고 하면 단번에 거절하는 것이다. "어젠 재미있었는데, 오늘은 읽기 싫어졌어." 이건 아니다 싶어서, 한 번에 책 한 권을 끝까지 다 읽어주기로 했다. 어떤 책은 200페이지가 넘기도 한다. 복식호흡이 되지 않아 생목으로 읽기 때문에 물과 도라지 진액으로 중간중간 목을 달래준다.


아주 훌륭하진 않지만, 책을 읽어줄 때 집중하는 정도가 나아지고 있다. 건성으로 듣던 아이가, 이젠 자꾸 단어의 뜻을 물어본다. "엄마, 그윽한 게 뭐야?" 어휘력이 부족한 나는 그윽하게 실눈을 뜨며 대답한다. " 그으으흐흑한 거. 알겠지?"

"엄마, 잔인한 게 뭐야?" 나는 잔인하게 노려보며 대답한다. " 아주 좌아안인한 거. 알겠지?"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와 함께 사전을 찾아보세요. ' 물론 나도 색색깔깔 삽화가 예쁜 어린이 국어사전을 구비해 두었다. 하지만 사전을 자주 여니, 아이는 짜증을 낸다. "모르면 그냥 넘어가자." 나 같아도 책 읽다가, 맥 끊기면 신경질이 날 듯하다.


이런 식으로 책을 읽어 주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고학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부도 안 하면서 무슨 책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또 꼰대처럼 라떼 시전을 할 수밖에 없다. 어릴 때 책의 스토리에 빠져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 내 아이만 할 때는 대문을 나설 때마다 기대했다. 동화 속에서처럼 부자 할아버지가 '사실은 네가 나의 손녀딸이다.'라고 말하며 나타날 거라고. 엄마가 서점에서 몇 권씩 사다 주시는 책이 부족해서 반복해서 읽었다. 가본 적도 없는 전라도 산골로 가출해 사서 고생하는 꿈, 프랑스 해변에 가서 해 본 적도 없는 수영을 하는 꿈, 브라질에 가서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나 속 마음을 털어놓으며 우는 꿈을 꾸었다. 큰고모가 물려준 위인 전집은 너무 오래된 책이라 온통 '읍니다'라고 되어 있었지만 몽땅 읽었다. 나도 위인들처럼 인류애를 쫓으며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착각을 했다.


결론은 이름을 떨치기에는 돈도 명예도 없는 어른이 되었다. 인류애는커녕 하나 있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나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 채 살고 있지만, 어릴 때 책 속으로 숨어들던 황홀한 경험은 물려주고 싶다. 현실인지, 책 속인지, 꿈 속인지 구분도 안 되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청소년기까지도 말도 안 되는 꿈을 매일 꿀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 도망가고 싶어져 방황하고 울다가 책이라는 도망갈 구석을 떠올렸을 때 얼마나 큰 위안을 얻었는지. 아이도 그 경험을  해볼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에, 최대한 많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정말 누구 닮아서 이렇게 책을 싫어하는지 모르겠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우리 아들은 엄마 닮아 책 좋아하네.'라고 말한다. 오늘도 책을 주문하고, 읽어주고, 자녀 독서 관련 강의를 찾아 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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