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고복수(1)

by 상재
1362년 8월, 탐라의 카치(목호) 초쿠투부카, 석데리비스 등이 탐라성주 고복수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10월, 탐라 사람들이 원나라에 예속되겠다고 청했다. 원 황제는 문아단부카를 탐라만호(耽羅萬戶)로 삼아 다스리도록 하였다.

<<고려사>> 권40, 공민왕(恭愍王) 11년.




1.


아버지는 어릴 적부터 나를 '바투르'라고 불렀다. 대국의 말로 장군이라는 뜻이란다.


나는 어머니가 지어주신 이름 ‘탐노(耽弩)’가 더 좋았다. 탐라의 사내라는 뜻인데, 어머니는 내가 언젠가 탐라를 지키는 당당한 대장부가 될 거라며 기대하곤 하셨다.


동이 트기 전 어머니가 허벅을 지고 용천수 물을 길러 해안가로 내려갈 즈음, 아버지는 반대로 산을 오르셨다.


가끔 잠에 취한 나를 깨워 등에 업고 올라갔는데, 아버지 발에 밟히면서 피어나는 새벽녘의 풀냄새가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오름 너머로 해가 기웃거릴 때쯤 중산간의 넓은 초지에 도착하면, 수십 마리의 말이 벌써부터 풀을 뜯다가 아버지와 나를 발견하고 시큰둥한 표정을 짓곤 했다.


그것이 괜히 얄밉고 심술이 나서 볼을 부풀리면 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빗을 쥐여주었다.


하릴없이 말빗을 쥐고 갈퀴와 몸통을 쓸어내면 진드기가 어찌나 많은지 빗에 다닥다닥 붙어 털어내는 게 고역이었다.


그러고 있으면 곧 초 삼촌과 석 삼촌이 올라왔다. 진짜 삼촌은 아니고 아버지와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는 이웃 아저씨였다.


동네 아저씨 아주머니더러 별다른 호칭 없이 삼촌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나도 그리 부르는 것이었다.


두 삼촌은 내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고 말 편자를 확인했다.


아버지는 일이 진행되는 걸 가만히 살피다가 말을 골라 타고 초지를 크게 한 바퀴 뛰어 돌곤 했다.


그러면 두세 마리의 말이 뒤에 붙어 함께 뛰어다녔는데, 참으로 멋있는 광경이어서 아버지를 졸라 말에 올라타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던 것이 어느 날부터인가 말을 달리는 일이 내 몫이 되었다. 석 삼촌과 초 삼촌은 그런 나를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곤 했다.


나는 말을 달리는 것에 익숙해지자 두 삼촌이 부리는 묘기를 곧잘 따라 했다.


갈퀴를 단단히 붙잡고 말 등에서 몸을 옆으로 완전히 뉘어 달리는 것은 허벅지의 힘을 대단히 필요로 했다.


석 삼촌은 고작 여섯 살인 내가 따라 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나는 일주일 만에 해내었다.


이후로도 달리는 말 위에서 한 바퀴 돌아 매달렸다가 다시 제대로 올라타는 법과 몸을 돌려 거꾸로 타는 묘기를 익혔다.


석 삼촌이 부리는 묘기 중 가장 어려운 것은 갈퀴를 잡지 않고 두 손을 자유롭게 둔 채로 방향을 조종하는 것이었는데, 몇 날 며칠을 연습해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뜻대로 되지 않아 심통을 부렸더니 초 삼촌이 몰래 귀띔을 해주었다.


“가고 싶은 방향으로 눈을 돌리거라.”


비결은 바로 시선에 있었다. 말은 워낙 예민해서 시선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나의 의지를 눈치채고 방향을 바꾸었다.


간단한 원리였지만 막상 성공하자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말은 참 섬세한 동물이었다.


석 삼촌은 나를 완전히 인정하면서 호탕하게 웃더니, 말 위에서 칼 쓰는 법과 활 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아버지는 석 삼촌에게 아직 배울 나이가 아니라며 말렸지만, 석 삼촌은 오히려 아버지를 타박했다.

“바투르라고 부르지만 말고 별명에 걸맞은 대우를 하시오, 형님.”


“잘 싸우면 뭐하겠나? 데리비스, 나는 탐노가 싸울 일 없게 키우고 싶네.”


“또 그 소리요? 언제는 그 북방의 장수처럼 키우고 싶다 하지 않았소? 송헌(松軒)이랬나?”


“사내가 되어 그만한 기상을 가졌으면 한 것이지, 누가 싸움을 말했나?”


“그럴 거면 뭐 하러 바투르라 부르오? 하여간 이랬다저랬다…….”


어른들의 이야기라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말을 달리면서 활을 쏘는 일이 매우 신나고 즐거웠을 따름이었다.


가끔 초 삼촌이 따로 불러서 ‘꼬리잡기’ 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두 사람이 일정 거리를 둔 상태에서 말을 타고 상대의 꼬리를 잡는 놀이였다.


초 삼촌은 오름 뒤에 숨어서 몰래 정상까지 달린 다음 빠른 속도로 내려와 나의 꼬리를 잡았다.


나는 아직 힘에 부쳐서 오름을 쉽게 오르지 못했지만, 초 삼촌은 내가 몇 살만 더 먹으면 자기가 질 거라며 격려해 주었다.


나는 아버지와 삼촌들에게 많은 걸 배우고 익혔지만 때로는 삶이 단조롭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럴 때쯤이면 아버지는 어떻게 알았는지, 나를 데리고 동아막(東阿幕)엘 갔다.


우리가 사는 서아막(西阿幕)에서 동아막까지는 꽤 먼 거리였지만, 나는 긴 거리를 아버지와 단둘이 걷는 것이 좋았다.


조 삼촌은 동아막의 천호장이었는데, 아버지에게 만호 형님, 이렇게 부르며 깍듯이 대했다. 이어서 서아막엔 별일 없지요? 라고 묻곤 하셨다.


나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를 좋게 대하는 조 삼촌이 좋았다. 자쿠구순, 그게 조 삼촌의 이름이었다.


일과는 매일 같이 반복되었다. 오전 일을 마치고 집으로 내려오면, 물을 길어 오신 어머니가 다시 나갈 채비를 하셨다.


내가 챙겨온 말총을 건넛마을로 가져가려는 것이었다.


말총은 말 꼬리털인데, 길이가 세 뼘이나 되고 촉감이 뻑뻑했다.


오전에 말을 달리고 나면 다시 빗질하며 뽑혀 나온 꼬리털을 조심스레 모았다.


생각 없이 하다가는 털이 끊어질 수도 있어서 신경을 좀 써야 했다.


그렇게 모아온 말총을 건넛마을에 가져가는 이유는 모자를 만드는 장인(匠人) 할머니들이 모여 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 함께 가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름 모를 꽃을 따다가 어머니 허리춤에 몰래 매달곤 했다.


나중에 그것을 발견한 어머니가 ‘탐노, 탐노야’ 하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무척 즐거웠기 때문이다.


장인 할머니들은 내가 모아온 말총을 유독 좋아했다. 길이가 충분하고 채집 과정에서 상하지 않아 질기다는 이유였다.


할머니들은 각기 총모자, 망건, 탕건을 만들었다.


나는 그 분류를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다만 총모자 만드는 할머니가 가장 안쓰러웠다.


망건이나 탕건은 말총만 가지고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석 달이나 걸려 만든 물건을 관아에 바치고 나면 남은 동안 개인적으로 모자를 만들어 팔았다.


하지만 총모자는 대나무로 만든 양태와 엮어야 비로소 갓이 되었다. 총모자 할머니는 그래서 아무리 총모자를 열심히 만들어도 값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는 모양도 세 할머니 중 가장 궁핍했다.


그것이 안쓰러워 어머니를 따라 건넛마을로 가게 되면 총모자 할머니에게 줄 말총을 일부러 가장 좋은 것으로 챙기곤 했다.


그러면 할머니는 무심하게 감주(甘酒)를 슬쩍 내어주셨다.


좁쌀을 쫄쫄 달여 달콤하게 만든 귀한 음식이어서 할머니도 한 번 끓이면 매우 아껴 드시는 것이었다.


나는 감주를 맛볼 때마다 총모자 할머니를 더욱 잘 챙겨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를 눈치챈 망건 탕건 두 할머니가 괜히 심술을 부렸지만, 나에게 못되게 굴수록 점점 질이 나쁜 말총을 받게 되어 곧 그만두었다.


그런데 내가 아홉 살이 될 무렵, 두 할머니는 참으로 불쌍한 꼴이 되고야 말았다. 사달이 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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