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계속된 왜구의 침략과 약탈로 인해 전 국토가 피폐해지고, 선량한 군민들이 죽어 나갔다.
그건 남쪽 변방의 섬 탐라(耽羅)도 예외가 아니어서 탐라의 성주, 왕자 등 토호 세력은 고려의 관리와 함께 왜구를 방비하고자 힘을 썼다.
1380년 8월, 왜적의 배 500척이 전라도 진포(鎭浦)로 침입해 들어왔다. 고려군은 최무선이 만든 화포를 처음으로 사용해 왜구의 배를 불태웠다.
왜구는 거의 다 죽었지만, 살아남은 왜적이 도망쳐 여러 마을을 불태우며 횡포를 부렸다. 고려군이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여 장수와 사졸 등 오백여 명이 죽었다.
1380년 9월, 이성계가 황산(荒山)에서 왜구와 격돌했다.
적장의 나이는 겨우 십 오륙 세쯤에 용모가 단정하면서 수려하고, 빠르고 날래기는 비길 데가 없었다. 창을 휘두르면서 돌진해 오니 향하는 곳마다 쪼개지고 쓰러져 감당할 수 없었으므로, 아군이 ‘아지발도’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하였다.
이성계는 그의 용맹을 아껴서 이두란에게 생포하라고 명하였지만, 두란은 아군의 피해를 우려하여 반대하였다.
이성계가 마침내 왜구를 대파하였다. 처음에 왜구의 숫자가 열 배나 많았으나, 겨우 70여 명만 살아남아 지리산(智異山)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