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 다문화 전쟁

소설 <신궁:이성계를 죽여라> 쓰기에 앞서

by 상재

1.

살다 보면 심장이 뛰는 아이디어를 만날 때가 있다. 그것이 현실적인지와는 별개로, 아이디어만으로 사람을 설득시키고 몰입하게 만든다. '무한동력'과 같은 아이디어가 그렇다. 과학 법칙에 위배되는 실현 불가능한 아이디어이지만, 가슴을 뛰게 만들고 사람을 도전하게 만드는 마성의 매력이 담겨 있다.


늘 이성으로만 살아가지는 않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문명화된 사회를 살아가면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 행위를 배워왔으나, 사람은 언제나 합리적이지는 않다. 무의식의 영역에는 이성보다 앞선 감성의 영역이 분명 존재하고, 직관적인 선택을 우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역사 공부는 어떤 사건과 현상에 대해 적합한 근거를 대며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해 내는 훈련의 과정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이란 늘 필연적이지는 않아서, 때로는 우연과 우연이 만나 굉장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한다. 왜 요즘에도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지지 않는가.


2.

영국 출신의 역사학자 로렌스 스톤(Lawrence Stone, 1919~1999)은 전통적인 역사학 방법론에 회의적이었으며, 인접 학문의 방법론을 끌어들여 상당히 도전적인 역사연구를 시도하였다.


그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 교사로 활동하던 당시, 동료 역사학자들로부터 방법론적 오류를 지적당하며 학계에서의 입지를 잃었다. 이후 미국 프린스턴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사회과학 또는 인류학의 연구 방법론을 역사 연구에 접목하였다. 수치화된 데이터와 통계를 바탕으로 분석하는 과학적 연구 방식으로, 사회의 거시적인 경향성과 일련의 법칙을 도출해 내는 연구 틀로서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연구 성향과는 반대로, 그는 서술의 역사(Narrative history)가 부활하고 있음을 목격하고 학계에 보고했다.


서술의 역사, 즉 '이야기체 역사'란 과학적인 통계보다는 특정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서 인물들의 생각과 행동 양상을 추정하는 방식이다. 데이터가 부족한 중세 이전의 역사 연구에 특히 사용되는 방식으로서, 다분히 관념적이기 때문에 과학적 분석과 통계를 중요시하던 물질론적 연구자들에게는 대단히 편협한 방식으로 여겨진다.


그가 이야기체 역사의 부활을 이야기한 바탕에는, 통계와 같은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역사 모델이 역사 사건에 대해 만족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자기반성에 기인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매우 우연적이고 즉흥적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합리적인 분석만으로는 역사와 그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군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거시 모델과 통계 분석에는 또 하나의 치명적 약점이 있는데, 다수에 속하지 않는 소수에 대한 설명이 매우 소외된다는 측면이다. 사회에서 비교적 소수라 하더라도 그들의 행동양식이 사회에 기여하고 영향을 끼치는 바가 분명히 있을 텐데, 사회과학적 역사 모델에서는 경향성을 설명하느라 그러한 부분을 쉽게 놓치고 만다.


3.

역사 연구의 방법론을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이것이 우리가 삶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최근 사회가 글로벌 다문화 사회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 본래부터 다양하다는 측면에서 다문화를 긍정적인 태도로 받아들일 것인지, 혹은 사람의 생각과 가치관이란 어느 환경 혹은 사회에 의해 교육받으며 형성된다는 경험적 측면에서 새로운 집단의 이주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경계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여러 학문 계열에서 논쟁하고 있는 주제인데,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가 존재하는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고민하게 되는 이유는 이것이 우리 사회의 갈등을 유발하고 심지어는 부추기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민과 사회적 합의 없이는 평화로운 삶을 구축하기 어렵겠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이다.


4.

최근 인문학계에서 이러한 갈등을 타계하고자 다양한 개념을 개발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모빌리티(Mobility)', 즉 '이동성'이라는 개념이다. 이동성이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려는 목적이 있는데, 그 이해의 대상 중 하나가 '국가'이다.


우리는 국가를 선택해서 태어난 적이 없는데도 국가라는 정체성에 강하게 얽매여 있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란 본래 여기서 저기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런데 국가 간의 이동이 어째서 제한되는가? 인간이 인간의 이동을 제한할 권리가 존재하는가?


돌고 돌아서,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까지도 '이동성'의 개념으로 접근하면 색다른 해답이 나올 수 있다.


즉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현실을 보수적인 측면에서 우려하기보다는 진보적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5.

우리 역사에서도 생각보다 다양한 민족의 이동이 확인된다. 고구려 주민들은 나라를 잃은 후 중국 땅으로 끌려가거나, 그대로 남아서 발해의 주민이 되거나, 혹은 남하하여 신라에 귀속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몽골족이 한반도로 대규모의 이동을 해왔으며, 조선시대에는 여진족의 이주를 적극 권장하기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이 남지 않아서 역사 연구로는 복원할 길이 막막하다. 때문에 문학의 힘을 빌어야 하는데, 이 또한 만만치는 않은 것이 역사가는 소설을 쓸 줄 모르고, 소설가는 역사를 잘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소설가들이 역사를 깊이 공부하고 그곳에서 인간의 삶을 찾아내어 이야기로 승화시키는 작업을 부지런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문도 든다. 역사가들은 왜 이야기를 쓰지 않는가?


6.

물론 소설을 쓰는 일은 매우 고난하고 어려운 작업이기에 역사가들이 쉽게 넘볼 수 있는 영역은 아니나, 문학적 완성도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역사가들도 '이야기'의 영역에서 충분히 시도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서 '소설'이 아닌 '이야기'라고 말하는 이유는, 문학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 소설가들에게도 매우 난해하고 어려운 일이기에, 비전공자인 역사가들에게 그러한 완성도를 요구하기는 다소 무리하다는 생각의 발로이다.


즉, 소설이 아닌 이야기로써, 혹은 역사를 대체하는 이야기체 역사로서의 '이야기'를 말함이다.


혹은 소설적인 장치와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거니와, 강렬하지는 않더라도 어떤 의미를 밝히고 독자로 하여금 약간의 감동이나마 느낄 수 있게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훌륭한 소설이라는, 나의 도전을 스스로 응원하기 위한 어쩌면 자기합리화로서의 '이야기'를 말함이다.



7.

'아지발도 탐라인설'은 역사가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주제임은 분명하다. 고려말, 규슈 지역의 일본 왜구를 이끌고 한반도를 침략하여 유린하다가 이성계에게 최후를 맞이하였던 왜구 해적의 수장 '아지발도'가 탐라 출신의 몽골인이었다는 가설이다.


세기초인 2,000년에 일본인 역사 학자 다카하시 기미아키(高橋 公明)에 의해 제기된 이 아이디어는 상식적으로 무리한 것이다.


규슈의 자존심 높은 영주들이 타국에서 온 장수를 우두머리로 모시고 목숨을 건 전쟁을 치른다는 설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되지 않는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그냥 그런 주장도 있다는 정도에 머무르는 가설이지만, 만약 우연에 우연을 거쳐 그러한 일이 실제하였다면 어땠을까?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보지 않는 이상 아지발도가 일본인이었는지, 탐라인이었는지, 몽골인이었는지 알 수는 없다. 그저 논리적으로 따져보았을 때 그가 일본인, 그 중에서도 지체 높은 천황 가문의 방계 귀족이 아니었을까 추정할 뿐이다.


그런데 만약 그가 정말 탐라 출신의 몽골인이었다면 현재 우리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있지 않을까? 그러한 역사로부터 우리가 배울 점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8.

이른바 세계화, 다문화의 시대이다. 인간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세계 곳곳에서 다문화 논쟁이 일어나고, 난민과 이민을 받느냐 마느냐로 현실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동성이 인간의 속성이라지만,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 좋은지 나쁜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외국으로 건너 간 재외한국인들이 차별받지 않고 대우받으며 잘 살았으면 좋겠고,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들이 문제를 일으킬까봐 두렵고 경계하는 모순된 나를 발견할 뿐이다.


몽골인 점령군으로서 탐라에 정착하여 살다가, 원나라가 멸망하며 난민 신세가 되어버린 탐라의 몽골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탐라 출신의 몽골인 아지발도는 어쩌다가 왜구 해적의 우두머리가 되었을까? 그는 어째서, 고려를 침략하여 유린하고 이성계와 싸우게 되었을까?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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