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가 간다

도포자락 휘날리고

by 이문웅

길가 질경이 마냥
버티다 버티다 가버린 여름
그 끝자락에
하얀 거품 입에 물고
길을 그가 간다.

칠십 인생 땅 파먹고
배고픔 나누며
다시 이 땅에 올 많은
생명을 위해 살던 그가

낭떠러지 절벽 끝에서
지푸라기 한 줌 부여잡고
버티다 버티다
삼백 열일곱 날을 끝으로
그가 간다.

생명의 싹을 심던
착한 농부가 살아온
척박한 아비들의 땅을
일구어 주겠다고
미래는 나아질 거라고
속사포 하얀 거품에
여린 몸뚱이 나뒹굴며
끝 내 참지 못하고
참지 못하고
그가 간다.

혹여
그의 살 갈기갈기 찢겨
여우들의 밥 될지언정
가는 길은 반듯하다.

쓸쓸하지 않을 그가
웃으며 그 길을 간다.
운동화도 안 신고
온몸 젖은 그가
도포자락 휘날리고
피 눈물로 웃으며
그가 간다.

keyword
이전 04화헤어진 밤